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선들 seondeul Nov 21. 2022

온전한 힘으로 물살을 가를 수 있다면

가을의 일기

https://brunch.co.kr/@chocowasun/105

https://brunch.co.kr/@chocowasun/107





온전한 힘으로 물살을 가를 수 있다면

12월을 앞둔 가을의 끝자락. 인생의 큰 일로 느껴지는 두 가지, 운전과 수영을 동시에 해결했다. 훑어보며 일기 내용에 거의 수영 아니면 요가 뿐이라 놀랐다. 엄청난 운동인은 절대로! 아니고, 종이 인간의 펄럭거림 일지이자 무늬만 태릉인의 애처로운 기록지라고 생각해주면 좋겠다.


가을 일기의 묶음 끝에 쿠키를 붙일 수 있다면,

쿠키1)지금은 자유형과 배영을 뿌시고 평영을 노리고 있다.
쿠키2)그리고 밤의 외곽도로 주행과 깻잎 주차도 가능하다.

엄청난 변화이자 멋진 사건!







매일의 시간들을 둥글게
이상한 오기
나에게 맞는 틀
온전한 힘으로 물살을 가를 수 있다면
작은 행복들로 꽉꽉 채우는 가을
영원히 설레게 하는
눈물 콧물 토를 지나
찌릿! 연결되는 그 순간들 위해







2022.8.23. 화 /43


오늘부터 처서이므로 가을 일기로 칭하겠다. 가장 사랑하는 계절! 요가도 다녀오고 일이 있어 걸어 나갔다 오기도 했는데 햇살의 농도가 튀김에서 중탕 정도로 견딜만해졌다. 그래도 목 뒤가 번들거려 씻어야 함. 시원하게 페퍼민트 오일을 바르고 늦은 일과를 시작한다.


일상을 고르게 굴리기 위해 애쓰는 편인데 가끔 이러한 변주도 좋다. 다시 매일의 시간들을 둥글게 빚어봐야지.






2022.9.5. 월 /45


오늘은 일기를 쓰지 않을 수 없는 날이다. 인생 첫 수영 수업이 있었기 때문이다. 진지한 수영장에 태어나 처음 가봤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얼굴을 담그는 것은 불가. 세부에서 스킨 스쿠버를 실패하고 스노클링을 한 옛 일기를 떠올리게 했다. 한 시간 동안 온몸을 떨며 파들 거리다가 오만 오천 원짜리 샤워를 하고 나왔다. 긴장하느냐고 뒷목이 뻐근했고, 수영장의 가장자리를 꽉 잡느냐고 오른팔이 아팠다.


나와서 카페에서 따뜻한 차를 마시며 좀 울었다. 한심 앤드 부족. 왜 내돈내산으로 이렇게 고생하는지. 수영하지 못한 채로 살아온 여태까지의 인생, 괜찮았잖아? 그러나 이번에 그만하면 영원히 다시 도전하지 않을 것 이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가보자. 이상한 오기가 치밀다.


유튜브로 폭풍 공부를 시작했다.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대야에 물을 비장하게 받았다. 물안경을 끼고 귀까지 모든 머리를 다 담그는 것에 성공했다. 물 공포증에 대한 심각성을 전혀 몰랐고, 나는 아마 얼굴 전체를 물에 넣는 잠수 공포가 있었나 보다. 여태까지 발이 닿지 않는 깊은 바다에서 하는 스노클링이나 수영장에서 튜브를 타고 노는 것은 매우 괜찮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당황스러웠다.


하루 종일 코도 빠져있고, 극도의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수영을 배우겠다고 결심한 후부터 물에 빠지는 꿈을 꾸기 시작했는데, 배운 후에는 위염의 전조 증상이 느껴진다. 뭐 하나 그냥 얻어지는 게 없다. 선생님이 이것만 이겨내면 더 멋지게 하는 사람도 있다고 하니, 그 사람을 롤모델로 극복해 나가는 과정이라 생각하자.


물을 극복하는 일지를 적어보겠다. 내일의 내가 남은 수업을 환불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무사히 잠수도 익히고 떠 있는 것도 시도해보길. 물 따위 나를 막을 수 없다! 네.. 무서워요... 그림 그리러 오는 친구들에게 매번 ' 인생은 도전!'이라고 주문을 걸어주는데, 이제는 나에게 이야기할 차례다. 도전이다, 내일 잘 다녀오자.






2022.9.7. 수 /46


수영 이틀 후. 가위눌림, 다래끼, 욱신거리는 귀를 안고 요가를 다녀온 날. 오랜만이라 어색했지만 이내 안정이 되었다. 세상에, 무섭지 않은 운동이 있잖아?


전혀 몰랐던 물 공포증을 이겨내는 중인 스스로에게 치얼스! 여하튼. 이 사건은 다음 주까지 지속될 예정이기에 남은 소감은 아껴두도록 한다. 하나 남은 자스민 향을 피우고 화창한 날씨가 들어올 수 있게 문을 열어두었다. 하던 것을 잘 해내는 하루가 되자. 붕 뜬 이 기분을 가라앉히기. 일단 다음 주까지 수영 걱정은 보류, 야호!






2022.9.15. 목 /47


상큼한 오후를 시작. 날씨가 좋아서 야외 수업이 이어지는 중이다. 오전 시간을 온전히 요가와 수영에 쏟고 있다. 규칙적인 생활에 만족이 높다. 나에게 맞는 틀이다.






2022.9.23. 금 /48


어제는 저녁에 먹은 와인 한 잔에 뻗어 정말 꿀잠을 잤다. 수영이 많이 부담인지 매일 꿈을 꾼다. 마당에 수영장을 만들거나 물에 빠지는 등등... 극복할 날이 올까. 이런 마음의 짐, 정말 기억도 안 나게 오랜만이다. 주차는 쨉도 안 될 만큼 괴롭다. 꼭 해야 하는 것도, 시키지도 않았는데 나서서 고통을 즐기는 꼴이라니! 허 참. 스스로를 이상하게 여기면서도 묘한 승부욕에 불타는 중이다. 올해 말쯤, 온전한 힘으로 물살을 가를 수 있다면 기쁘겠어! 그걸 향해, 올해 남은 100일을 달린다.






2022.9.27. 화 /49


평화로운 화요일 오후. 운전을 하고 요가를 갔다가 커피를 사서 돌아왔다. 하, 놔 참. 어른 같네.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수영이 너무나 큰 스트레스라...(규민이는 나한테 너무나 큰 사람이라...) 운전은 그냥 넘어간다. 슬픈데 기뻐^^... 그림 그리러 온 학생과의 대화. 아직도 도전할 것이 많다! 맞아, 헤쳐나가는 거지! 인생은 도전!






2022.9.28. 수 /50


작년에 시작한 이 일기장도 이제 끝 페이지를 향해 얇아져간다. 꽃범의 꼬리, 백일홍, 버들 마편초, 맨드라미와 약간의 방아꽃, 천일홍이 가득 담긴 항아리를 두고 쓰는 일기. 황량한 마당도 곧이다. 실컷 먼 곳의 풍경을 담아본다. 할 일들을 잘 해내고 있는 요즘.


오늘 날 행복하게 한 건, 맛있는 파스타, 시원한 커피, 뱀 물고 와 사고 친 버터, 완성되어가는 자수, 요가 근육통과 저녁으로 예약된 꽃게. 작은 행복들로 꽉꽉 채우는 가을이 되길!






2022.10.11. 화 /52


지난 주말에는 나를 영원히 설레게 하는 해리포터의 공연이 있었다. 오케스트라와 함께하는! 아즈카반 편이었고, 8월부터 기다렸는데 드디어 영접했다. 망토와 넥타이, 목도리를 하고 열심히 관람했고, 아주 많이 행복했다. 오랜 시간 좋아하는 것이 있고 바래지 않게 닦아나가는 과정을 누릴 수 있어 기쁘다. 좋아하는 노래를 크게 틀고 일기를 쓰며 내년에 있을 불의 잔도 손꼽아 기다려본다. 단잠과 김밥, 수영도 함께 했던 시간들을 잘 밀며 또 앞으로 나아간다.






2022.10.19. 수 /53


정신을 차리니 어느새 가을의 중간.






2022.10.26. 수 /54


가을의 행사들을 하나씩 뿌시는 중인 요즘. 바쁠 때 오히려 더 많은 것을 해낸다는 사실을 실감 중이다. 라일락, 감국, 구절초로 인해 차분하고 또 화려한 가을의 색감을 만끽하는 중. 좋아하는 음식, 커피, 티브이, 저녁 식사, 운동, 일.. 잘 해내고 있다.






2022.11.1. 화 /55


2와 1 뿐인 날짜! 오전엔 수영장 물 실컷 마시고 오후 내내 아-무것도 안 하다가 몸을 일으켜 나왔다. 이렇게 쉬는 날도 있어야지! 어제 책을 읽다 너무 재미있어서 못 끊었다. 매우 늦게 잔 여파라 생각한다. 아니 갑자기 외계인이 나오는데 어떻게 덮어요! 평온한, 아직 한가로운 일주일을 보내는 중이고 지난 주말엔 눈물의 여정이었다. 현미에서 한 거니 전을 드디어! 별 감흥 없이 전시를 보기 시작했는데,






2022.11.2. 수 /56


까지 쓰고 수요일 오후. 아침 5시 반에 일어나 공포 영화 뺨치게 무서운 밤 운전을 하고 새로운 수영장에 다녀왔다. 운전과 수영을 동시에 처리해서 운전이 상대적으로 편안해지는 매-직! 금방 적응하고 신나게 물놀이. 장족의 발전이다. 무려 '신난다'니. 눈물 콧물 토를 지나 즐기는 지경까지 왔다. 당연히 지금도 허우적거리지만... ㅎ


요가 선생님의 말처럼 일어나지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하지 않는 하루가 되길. 수영과 요가를 하고 나오는 길에 너무 개운하여 깃털 같은 가벼움을 느꼈다. 많은 일이 있었는데 아직 2시다. 남은 하루 아자! 전시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일기에서 마저 하도록 하겠다...






2022.11.8. 화 /57


지금은 화요일 저녁. 나미의 노래를 배경으로 부드러운 옷을 입고 일기를 쓴다. 오늘은 특별히 순서를 바꿔 요가-수영을 다녀왔다. 갈길이 멀고 배울 점이 많아 기쁘게 생각하기! 도장을 깨는 재미가 있는 것이지. 같은 레인에서 연습하던 할머니께서 한 번도 쉬지 않고 내내 도는데 너무나 물개 같고 멋졌다. 그런 날을 기다리며! 몇 달 전 만해도 오열 앤드 인생의 고비였는데 새롭다 새로워. 이제 못할 게 없어!


일찍 일어나는 것도 생각보다 그냥 적응이다. 아침이 기니 하루가 길다. 드디어 해 뜨는 것에 맞춰 생활하는 진정한 시골인이 되는 건가. 좀 더 나아지는 스스로의 모습이 마음에 든다. 천천히여도, 조금씩 나아가기. 살랑 살랑이라도 발차기를 멈추지 않으면 나아간다. 숨도 잘 고르며, 언제나의 할 일 들로 가자.

+) 전시 얘기 자리가 없어 다음 장의 나에게 미루겠다.






2022.11.10. 목 /58


전시회 얘기를 마저 해보자면... 이중섭의 작품들은 워낙 유명해서 여기저기서 봐온 .  기대보다는 드디어 거니 전을 본다는 마음으로 서울의 국립현대미술관에 가게 되었다. 밤에  술관은 색다른 차분함 속에 잠겨있었다. 하지만 사람은 정말 바글바글. 대학생 때만 해도 사람이 없고 시원해서 자주 갔었는데 말이다.


작은 엽서 화부터 시작해서 어두운 전시실의 은지화를 보게 되었다. 가족에 대한 그리움, 아이들을 보고 싶은 마음으로 그린 그림들... 문득 확 다가와 눈물이 났다. 좀 부끄러워서 마스크 속으로 몰래 닦았다. 오열할까 봐 차마 자세히 보지 못하고 나왔다. 처절한 마음이 와닿았던 순간이었다.


같은 그림도, 노래도, 책도 전류가 통하는 때가 따로 있다. 책과 티브이를 보면서는 내로라하는 울보인데, 전시를 보며 운 것은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릴 때여서 오래 기억에 남을 듯하다. 찌릿! 연결되는 그 순간들 위해 다른 것들도 부지런히 흡수해야겠다고 생각한 가을밤이었다.


+)주말을 눈물의 여정이라고 칭한 이유는 거니전 이후에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를 보고 또 한 번 오열했기 때문이다. 두 가지의 일이 하나처럼 여겨져, 마음 깊이 좋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