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부터 늦봄까지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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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얼마 전 읽은 보물 같은 책, <바다의 선물>의 한 구절로, 해돋이 조개를 통해 재발견되는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던 중 나온 문장입니다.
그 미소, 그 행동, 그 관계는 현재라는 즉각적이고 순수한 허공에 매달려있다. 지금, 여기라는 바로 이 지점에. 바닷바람 속에서 저 높이 균형을 잡고 떠 있는 갈매기처럼.
매 계절 묶는 일기들을 정리할 때가 왔다. 가끔 펼쳐보는 일기장은 나의 일터에 둔다. 화실에 있는 몇 개의 책장 중 하나에 말이다. 혼자 있는 시간이 오면 꺼내 드는데, 아무렇게나 펼쳐있는 다이어리와 달리, 다른 책들과 함께 그림자처럼 잘 숨겨 두는 이유가 있다.
그림 그리러 온 친구들 중 탐방하기 좋아하는 아이들은 번쩍번쩍 나타나 이곳저곳을 잘 후벼낸다. 그러한 취미를 가진 한 친구에게 어느 날, 잘 꽂아둔 나의 일기장이 제물이 되었다. 날씨에 대해 구구절절 적어놓은 한 구절을 소리 내어 읽었는데 펼 의미 있는 내용도 아니었지만 아주 머쓱한 것이 느긋하게 움직이는 나를 잽싸게 일기장을 낚아채게 하였다. 어릴 적 선생님에게 검사받기 싫어서 다른 일기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여전하다.
이곳에 올리는 것도 적당히 보여주기 좋은 부분만 편집하여 올린다. 차마 글자로 남기기 잉크와 종이와 펜을 쥐는 힘이 아까워 적지 않은 구질구질한 마음들이 훨씬 많다. 그럼에도 2년째 별일 없는 지금들을 묶어 올리는 이유가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 나의 지금, 여기라는 바로 이 지점의 이야기들을 나누고 싶은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자주 일기장을 들춰보기 좋아하는 나를 위해서다.
버지니아 울프는 미래의 자신을 위해 평생 일기를 써왔다. 그처럼 출판이 되어 먼 나라의 사람에게 읽히지 않을지언정, 단 한 명의 독자일 나를 위해 이번에도 사진과 함께 지난 일기들을 남겨둔다. 즉각적이고 순수한 마음들을 그저 적어내는 것만으로도 시원해질 때가 많다. 또 묶어보며 다시 읽으면 굳이 적어둔 그 글자만이 선명한 과거로 느껴진다.
녹아들기 전에 좋은 것들은 잘 걸러 적어두고, 그러기 위해 스스로와 주변을 자주 살펴보도록 한다. 그로 인해 위의 책에서 말한 '나 자신의 평화', '생활의 간소화', '내면의 고요', '창조적 활동'이 꾸준하고 깊게 이루어지길 응원한다.
지금, 여기라는 바로 이 지점에
2021.12.17. 금 /69
정신없이 흘러가는 하루하루! 3주 만에 쓴다. 연말을 맞아 올해의 다짐, 내년의 계획. 모두 점검해 봐야겠다. 이렇게 한 해도 가는구나!
2022.1.14. 금 /1
작년에 쓴 69개의 일기를 뒤로 하고! 새로운 해의 일기가 시작되었다. 연말 연초 바쁜 (사실 그렇게 별 일도 없었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니 이제야 일기가 생각났다. 마음을 털어놓을 일도, 복잡할 일도 없었던 평안한 시기였기에 잊었나 보다. 여전히 비슷한 일상과 생각, 식사를 누리고 있다. 그 안에서 찾는 크고 작은 성취를 통해 기쁨을 놓치지 않으니 더 바랄 것이 없다.
새해에는 많이 읽고, 부지런히 기록하고, 깊게 사유하길. 무엇보다 건강하길. 이 모든 것들을 위해 반복해야 하는 작은 일들을 기꺼이 해내자고 다짐해본다. 다시 틈틈이 매일을 기록하며 선명하고 두터운 시간의 밀도를 만들어보자!
2022.1.18. 화 /2
날짜를 잘못 본 줄 알고 달력을 넘길 때 버벅거렸다. 믿기지 않는 군! 세상에. 일기장의 종이가 차가워서 손이 시리다. 언제 따뜻해지려나! 다가올 봄을 손꼽아 기다리며 긴 호흡으로 추운 것도 견뎌본다. 그래도 코 끝이 시원하고, 머리가 띵한 바람이 불고, 따뜻한 국물이 기꺼워지는 겨울이 있기에! 다른 계절이 소중하다.
2022.1.19. 수 /3
예고했던 폭설이 쏟아지는 중. 오전엔 시원하게 아쉬탕가를 하고 왔다. 피니쉬 시퀀스에서 되지 않던 아사나가 자연스럽게 되었다. 정말 한 개씩! 느리지만 완전한 내 것으로 되고 있다. 뿌듯한 마음이다. 게을러질 것 같은 순간에 그 기분들을 떠올려야지.
눈이 오는 기념으로 첫눈에 관련된 시집을 꺼냈다. 오늘도! 평온한 하루.
2022.2.9. 수 /6
늦은 출근 후 천천히 여는 하루. 오전엔 시원하게 아쉬탕가를 다녀왔다. 식물에 관한 책을 조금 보고, 그림책도 훑어보았다. 그림을 다시 꾸준히 그려보려고 결심했다. 다른 사람들의 작품을 볼 때마다 심장이 조여드는 이 느낌이 조금은 괴롭다. 그리하여 정말 사랑한다며 유익하지 않다. 링 위에선 이런 기분이 없을 줄 알았는데 평생을 함께해야 하는 감정인가 보다. 그래도 그리고 쓰고 읽는 인간이길. 반짝반짝한 창작 사람으로 지내길 바란다. 긴 연휴 끝에 얻은 건 쉼의 결말! 작년 가을에 스케치해둔 자수를 시작했다. 올해 안에 끝내보자.
2022.2.18. 금 /7
좋은 공기와 좋은 음식, 적당한 산책의 에너지로 한 주를 잘 보내고 있다. 벌써 금요일이라니! 눈이 와서 아직 겨울의 끝이 실감 나지 않지만, 새로운 것을 할 마음이 든다. 움트는 이 마음을 소중하게 키워나가야지. 그리고 늘! 하던 것은 잘 해내기. 꾸준히, 성실하게, 더 나은 방향으로.
2022.2.22. 화 /8
세상에. 오늘 날짜가 완벽한 대칭이다. 이럴 수가. 갑자기 오늘이 특별하게 느껴진다. 여독으로 늦은 오전까지 푹 잠을 잤다. 나와서 청소를 하고 좋아하는 노래를 크게 틀었다. 하나씩 할 일을 해나가는 평화로운 루틴의 시작이다. 톡톡 튀는 날들을 지탱하는 조용한 하루들의 소중함을 느낀다. 평범한 것도 잘 닦고 돌보는 사람이 되기 위해 나아가는 중!
2022.3.18. 금 /11
일기에 날짜를 쓰며 올해가 2022년임을 기억한다. 풀리는 날씨에 부슬부슬 물방울이 맺히더니 찬기가 돈다. 아직은 히터를 트는 날씨. 요 며칠 잠을 잘 못 자서 묘하게 피곤한 상태다. 잘 챙겨 먹어야지.. 졸려 죽겠는데 왜 잠이 안 올까. 잠에 집착하게 된다. 다시 평온의 사이클을 타게 되면 꼭 일기에 축하의 글을 적어야지.
2022.3.25. 금 /12
벚꽃이 피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이렇게 또 봄이다. 화요일 하타요가에서 라자카포타 자세를 선생님의 도움으로 성공하였다. 발끝과 뒤통수가 닿다니! 살면서 상상해본 적 없는 일이다. 멋져... 하지만 그 여파로 정말 역대급! 필테, 헬스에서 등 조진 날에도 느끼지 못했던 역대급의 근육통이 있었다. 자려고 누울 때부터 요상했는데 아침에 눈을 뜨니 누가 등만 두들겨준 줄 알았다. 목 뒤, 등, 엉덩이, 허벅지 뒤쪽까지 어쩜 이렇게 딱! 몸의 뒷면이 아픈지. 금요일인 지금, 무사히 회복되어 다행이다.
2022.4.7. 목 /14
집 뒤쪽의 산이 점점 희어지고 있다. 무척 커다란 벚나무들이 모여있는데, 만개하고 등나무 꽃도 피면 산이 희끗희끗 해진다. 곧 아카시아 향기와 산비둘기, 딱따구리 소리가 문 안으로 기꺼이 찾아올 때다. 소식지를 잘 마무리하고 출근했다. 긴 겨울 끝에 귀한 계절! 틈을 내어 시간을 만들어 만끽하길.
2022.4.12. 화 /15
바라보기만 해도 아름다워서 행복해지는 야생화 화분을 옆에 두고 쓰는 일기. 늦저녁의 시원한 바람과 미리 피워둔 향, 시원한 오일까지. 모든 것이 꾸며놓은 일상 안에 꼭 맞다.
주말에는 피크닉 다녀오고, 앞뜰도 열심히 봄맞이를 했다. 중노동에 다리에 근육통이 느껴져도 뿌듯한 기분. 무언가를 돌보는 행복이 이토록 크다. 그리고 식물은 미래를 약속하게 하여 좋다. 다른 곳에서 얻지 못하는 감사함이다.
어제는 꽃비를 맞으며 산벚꽃의 꽃잎이 융단처럼 깔린 산길을 걸었다. 얇은 바람막이를 입고 살짝 더운 정도의 좋은 날씨. 저녁과 오늘 아침에 요가도 다녀왔다. 선생님 말씀. 결과보다 과정의 나를 살펴보아라. 완성된 자세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곳으로 향하는 길이 중요하다. 호흡하며!
2022.4.14. 목 /16
평화롭게 일상을 보내는 중인 요즘. 비가 와서 히터를 다시 켜는 날씨지만 공기가 차갑진 않다. 오전 요가, 혹은 잠. 점심 만들어먹고. 커피 먹고. 일하고. 좋아하는 티비 보며 저녁 느긋하게 먹고. 따뜻한 이불 속에서 잠드는. 일상의 사이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