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낸편지함

결심 혹은 다짐

by 선들 seondeul

열한 달이 지난 지금에서야 파일들 사이에서 발견함.

다시 못 찾기 전에 붙여 넣는 11월 29일의 편지.




결심: 행하기로 확실하게 마음먹다.

어떻게 하기로 자신의 뜻을 확실히 정함. 또는 그 입장이나 내용.

다짐: 어떤 일을 반드시 행하겠다는 굳건한 마음가짐.

이미 한 일이나 앞으로 할 일에 틀림이 없음을 단단히 강조하거나 확인함.



11월 29일 화요일


안녕 친구야


믿기지 않게도 지금 시간은 오전 여덟 시 반이 조금 넘었고, 여기는 도서관이야.

첫 도서관의 날이 이렇게 지나가고 있다.


아직은 조금 멍한 기분과 낯선 분위기뿐이지만

머지않아 익숙하게 이곳에 앉아있을 나인 걸 알아서 무덤덤해지는 것 같다.


회사를 다닌지도 벌써 세 달이라는 어마어마한 시간이 흘렀어.

느닷없이 수시로 대학에 붙어버린 고3 때처럼,

너무너무 쉬고 싶다고 무조건 쉴 거라고 떵떵거리며 내려온 지 반년 만에

회사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어. 친구들은 모두 학교에 다니고,

빠른 졸업에 이르게 시작하게 된 회사생활은 (이제는 알겠지?) 예상과 걱정 사이야.


하루하루 어른이 되어가고 있음을 피부로 느껴.

이제 이 생활도 조금은 적응이 되었다고, 세 달쯤 지나니 바쁘게 보내던

하루의 틈 사이사이로 온갖 걱정과 한숨이 베어 나오기 시작했어.


500원이 아까워 사 먹지 못했던 달달한 음료수,

보상처럼 기념일에 가던 예쁜 가게의 음식들,

고민하다 결국 사지 못했던 편의점의 맛있는 맥주들.

필요 없을 거라며 사지 않았던 꼬마전구,

용돈을 쪼개어 모은 시집과 빌려보던 책들.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게 퇴근길에 서점에 들러 사고 싶게 된 시집을 모두 살 수 있어.

볼이 시리던 어느 날 아침에는 플라밍고 모양의 꼬마전구를 보자마자 주문했지.

가격을 보지 않고 먹고 싶었던 맥주를 사들고 집에 가는 길에

문득 버스 창문에 비친 내가, 어른의 모습인 거야.


돈은 그냥 벌리지 않아. 나의 무언가와 맞바꿔야 해.

젊은 날의 하루하루, 말랑말랑한 생각, 햇볕을 쬐며 읽는 책, 마당을 가꾸는 시간,

느타리 봉의 낮, 친구들과의 약속, 떠나고 싶을 때 떠나는 여행을

안정적인 회사생활, 그리고 월급과 맞바꾼 거야.


맞바뀐 생활은 얼마가 남았는지, 통장 잔고를 생각하지 않고

먹고 싶고, 사고 싶었던 걸 아끼지 않아. 너무나도 편안하고 빨리 익숙해져서

불편해야 하는 다른 생각들도 설탕물에 빠져버린 것 같아.


그래도 이렇게 시간을 만들면 되는 거니까!

고민이 고민으로 끝나지 않고, 이렇게 실천하게 되었다는 사실에

나를 너무 칭찬해주고 싶다.


소중한 아침시간 야무지게 잘 쓰는 다선이가 되길.

또 편지할게 친구야! 나는 이만 출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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