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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el May 22. 2019

본인의 불감증을 털어놓을 수 있나요

IDGTF 행사를 마무리하며

더블린에서 와서 처음으로 봉사활동가로서 참여한 행사인 인터내셔널 더블린 게이 시어터 페스티벌(IDGTF)이 지난 19일 막을 내렸다. 중간에 뱅크홀리데이를 끼고 2주간 진행됐으며 그동안 열 편이 넘는 작품을 무료로 봤다. 봉사활동을 하면서 정말 친한 관계까지 만들진 못했지만 아이리쉬들을 알아갔고 취업 활동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레퍼런스 레터도 받았다. 마지막 날 밤 올해 페스티벌의 막을 내리는 갈라 행사에는 나랑 친했던 봉사활동가들이 대부분 오지 않아서 행사가 끝나고 술을 마시지 못했는데 apart from that 뭔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가장 좋았던 연극을 꼽자면 딱 두 편을 꼽을 수 있다. 하나는 레즈비언 커플의 잠자리 문제를 다룬 미국 작품인 Obligatory Scene과 본인의 발기부전과 불감증에 대해서 덤덤하게 풀어가는 호주 작품인 The Measure of a Man이다.


두 편 모두 두 번째 주에 본 작품이다. 첫 번째 주에 본 작품들도 기억에 남는 작품들이 몇 있지만 이 두 작품에 비하지 못할 것 같다.


Obligatory Scene은 딱 마지막 상영 때 운 좋게 볼 수 있었다. 두 번째 주에는 내가 배정된 시간이 별로 없었고 그래서 굳이 연극을 따로 보러 극장에 가지 않았는데 우연히 팜플렛에서 어떤 내용인지를 읽고는 꼭 봐야겠다고 생각을 하곤 보게 됐다. IDGTF(http://www.gaytheatre.ie) 홈페이지에 소개된 글은 이렇다.


"Rape culture has contaminated women’s sexuality and intimate rituals. Is it too late to change; can it be done romantically? Grad students Vivey and Dru are living together in a committed relationship. Vivey’s assignment triggers an argument over sexual colonization and … the lack of sex in their relationship. Deeply in love and self-assertion, they struggle between the “Obligatory Scene” of a break-up or a sexual stalemate. The couple searches for radical transformation and promise of healing."


미국 대학생인 비비와 드류는 동거하고 있는 레즈비언 커플이다. 드류는 어릴 적 겪은 성폭행 때문에 트라우마가 있어서 섹스를 두려워 한다. 반면 그의 파트너인 비비는 섹스를 좋아하고 드류에게 더 즐거운 경험을 주고 싶어한다. 연극은 비비가 세익스피어의 '말괄량이 길들이기'를 학교에서 연출해야 하는 데 대한 불만을 표출하면서 시작한다  여성 혐오적 서사를 담고 있는 '말괄량이 길들이기'를 연출하게 된 비비는 이런 작품을 연출해야 된다는 사실에 불 같이 화를 내는데 드류는 조금 이성적으로 다가가며 '첫날밤 페트루치오는 충분히 그럴 수 있었음에도 카타리나를 강간하지 않았다'고 말하며 이 작품에 대해 서로 다른 시선으로 이야기를 한다. 연극은 섹스리스에 있는 두 사람의 이야기로 이어지고 내용은 더욱 심도 깊어진다. 성폭행 트라우마를 겪는 드류와, 섹스를 더 하고 싶어하지만 그렇지 못해 욕구불만에 빠진 비비는 결국 헤어지는 순간까지도 마주하지만 조금씩 서로를 이해하는 방향으로 연극은 끝이 난다.


극중 비비는 페미니스트로 나오는데 '말괄량이 길들이기'가 여성 혐오 서사라며 반대하면서도 성폭행 트라우마를 겪는 본인의 애인인 드류를 이해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점은 꽤 눈여겨 볼 부분이다.  


내가 이 작품을 인상 깊게 본 이유는 레즈비언 커플 사이에서 자주 회자되는 섹스리스를 다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주인공이 모두 여성이기 때문이다. 이번 행사 작품은 대부분 주인공이 남성이다. 봉사활동을 진행하면서 친해진 사람들도 모두 게이다. 난 여성들이랑 더 친해지고 싶었는데 봉사활동에 참여하는 성비도 남성이 더 많았고 같이 일을 한 사람들도 대부분 남성이었다. 내가 팜플렛에서 이 작품을 보곤 꼭 봐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작가부터 감독, 배우 모두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조명도 여성이 했다. 그리고 실제로 연극 자체도 재미있고 흥미진진했다. 갈라 나이트 때 연극 중간 부분을 잠깐 선보였는데 영상으로 찍었다.



사실 이 연극이 좋았던 다른 큰 이유가 있는데 주인공 비비 역을 맡은 배우 Carli Rhoades가 예쁘고 멋있었기 때문이다. 갈라 나이트 때 연단에 잠깐 서서 대기업들이 프라이드 행사를 마케팅 수단으로 이용하면서 참가자들의 비용 부담이 높아져 저소득층의 행사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것을 역설하기도 했다. 마케팅 수단으로 쓰지만 실제로 퀴어에 도움이 되는 일은 하지 않는다면서. 이 이야기를 들으며 삼성과 현대차를 떠올렸다. 처음에는 '뉴욕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모두들 아실거라 생각합니다'라고 말해서 도대체 무슨 일인지 몰라서 나중에 어쩌다 친해진 보스턴에서 온 캐나다인 관객이랑 같이 가서 물어보니 알려주더라. 본인 사이트(https://www.carlirhoades.com/)도 있고 실제로도 LGBT 액티비스트라고 했다.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멋진 분. 우린 친구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대화를 더 하지 못했다.


The Measure of a Man의 주인공이자 연출자 Gavin Roach. (사진 출처: https://www.outinperth.com)

두 번째 연극은 The Measure of a Man. 이 작품은 두 번이나 봤다. 이 작품은 주인공이자 연출자인 Gavin Roach가 본인의 실제 이야기를 풀어간다. 주제는 발기부전과 불감증이다. 본인이 처음으로 자신의 성기 사이즈를 재본 것은 12살 때였다고 말하는 것으로 극을 시작한다. 본인의 사이즈가 평균 남성 사이즈보다 높다며 본인도 평균 이상의 사람이라고 말하는데 여기서 기준은 on the flop이다. On the flop은 '발기하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 극 초반부에서 'on the flop'을 강조하는데 그 이유는 본인이 발기가 되지 않는 몸이기 때문이다. 내 피너스 사이즈가 평균보다 높다는 것이 나를 보통 이상의 사람으로 만들어준다는 말도 사실은 피너스 사이즈에 따라 자신의 자존감과 존재 자체를 결정 짓는 남성 문화를 비꼬는 것으로 들렸다.


이어진 극에서는 어린 나이 때 처음 누군가의 피너스를 만진 경험부터 발기되지 않는 본인의 피너스 때문에 겪은 슬픈 이야기들을 풀어나간다. 무엇이 '정상 남성'을 결정하느냐라는 질문과 '정상 남성성' 자체에 대해 문제 제기를 던진 좋은 작품이었다.


나중에 Panti Bar에 가서 잠깐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내가 연극이 너무 좋다고, 실제 이야기냐고 물어보니까 그렇다고 답해줬다. 그러면서 나에게 말했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까. 사람들은 불감증에 대한 이야기를 피하는데 그러고 싶지 않았다." 주류의 관성에 균열을 준 이 작품이 매우 훌륭했다.


내년에도 행사에 올 수 있을까. 그때 난 아마 아일랜드에 있진 않을 것 같다. 그래도 기회가 된다면 다시 와서 지금 알게 된 사람들이랑도 인사하고 뒤풀이 자리에 가서 더 이야기도 많이 하고 그러고 싶다. 6월이면 프라이드 주간이 다가온다. 그때도 봉사활동을 꼭 하고 싶다. 갈라 나이트 마지막에 Seasons of Love를 부르며 끝나는 영상으로 오늘 브런치 한 조각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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