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인간에게 무조건 복종하고 있답니다.
오늘은 회사 상사께서 일감을 하도 많이 주어서(‘명령불복종자는 처단한다’라고 엄포를 놓음) 야근해야 하는데, 교회에서는 찬송가가 들리고, 배고파서 못 견디게 되니, 겨우 1시간밖에 연장할 수 없었어요.
시골 사람들은 심한 가뭄 속에서 비를 기다릴 때 아주 절박함으로 그 심중(心中)을 채우게 되지만, 그 만족을 채우는 단비는 무감각의 상태, 필요로 하는 농부는 비에다 인사라도 하고 남을 거예요.
浩兄 씨 편지가 왠지 고맙게만 느껴집니다.
承弟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죠?
아침에 일어나서 거의 건너뛰어 넘는 식사 후, 직장에 가서 나는 그 모든 인간에게 무조건 복종하고 있답니다. 아마 내가 자유스럽게 살려하는 것이, 그들의 구속에서 벗어나는 것이, 결코 그들보다 그 지위나 학벌이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러한 현상이 일어날 거예요. 결국은 이제 마음 좀 상하지 말고 그냥 우직스럽게 보이듯 살기 위한 것이랍니다. 나는 사람에게 복종하는 일은 아주 못 참는 고통이었지만, 교회를 통한 지금의 생활은 아주 영혼의 쉼을 알고 있기 때문이에요.
아주 속물 인간적으로 나 자신을 위해 돈을 번다면, 더욱 활기가 찼을지도 모르겠어요. 지금의 나는 주위 가까운 사람이 내 도움을 필요로 할 때, 고통스럽게 다니는 직장 생활일지라도 아낌없이 돕고 있어요. 지금은 말괄량이 여동생 공부시키는데 아마 내 돈이 쓰인다고 생각하니 약간은, 아니 매우 흐뭇한 일이에요. 그래서 결론은 난 노처녀가 될 것 같군요.
남들이 볼 때, 나는 매우 평온한 모습이라 평을 해요. 그리고 항상 ‘뭐가 그렇게 좋니?’라는 소릴 늘 들어요. 내 마음 깊은 곳은 항상 외롭고 고독하지만, 나와 눈이 마주치는 사람들에게는 항상 미소를 짓는 거예요. 내가 웃는 것은 혼자 길 가다가 생각 끝에 웃는 것인데, 초면에 길거리의 사람들이 가끔 오해할 행동이죠. 그래서 너무 마음속으로 모든 것을 혼자서 해결하고, 생각하고 남에게 말로 ‘나는 어떻다. 외롭다. 어쩌다’ 하지 않기 때문에, 아주 현실에 가까운 꿈을 많이 꾸곤 해요.
피아노 연주는 어쩜 나에게 꿈이었을 거예요. 어렸을 적부터 피아노와 오드리 헵번이 즐겨 입던 통 드레스와 아담한 정원이 있는 집을 그렸는데, 현실의 생활에서 피아노 치는 것은 아마 다른 곳으로 쏟아져야 할 나의 정력이 피아노에 쏟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요. 꾸준히 쉬지 않고 하고 싶어요. 그리고 큰 집을 갖는 것은 아주 힘든 일이군요. 그래서 꿈에서 깨어난 나는 아주 쓸쓸한 미소를 띠고 맙니다.
‘어떻게 하면 지금의 浩兄 씨 텅 빈 마음을 조금이라도 채울 것인가?’ 생각하지만, 항상 나의 끝은 별로 큰 영향력은 없으리라 믿어요. 1978년 1월 9일 졸업해서 2월 9일 상경한 나는 4월 5일까지는 아마 지금의 浩兄 씨가 갖가지 망상에 빠져있는 것과 똑같은 상태였으리라 생각해요. 결국 나를 붙잡아 주는 것도 지금의 생각으로는 소속감을 느끼지 못해요. 아주 거만한 생각 같지만, 학교에다 온전히 모든 것을 걸었던 생각이 갑자기 절름발이가 되어 어색하게 묶어지는 자신이었기 때문이죠. 현실과 사회는 개척자만이 살아남는 곳이지, 안일하고 어떠한 꿈이나 환상 속에서 자기만의 세계 속에 꿈처럼 산다는 것은 나태해져 버리는 처사일 겁니다. 한때는 회피하고 싶어서 피난처를 생각했지만, 결국 물고기는 물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어요.
그 많은 시간을 하나하나 장식하고 있겠지만 그 틈에도 당신은 천장을 향해 멍하니 쳐다보는 행동이 있을 거예요. 머지않아 당신을 몸담아줄 직업을 가질 때, 아주 정력적으로 온갖 정성을 쏟으리라 생각을 해요. 당신은 그 안에서 슬픔이든, 기쁨이든, 무언가를 잃어가든 새로운 것을 체득하는 아마 가장 가까운 것이 될 거예요. 거기에서 완전히 자유롭게 되는 것이 곧 몸과 마음을 바쳐 온갖 것을 쏟는 것일 거예요. 결코 초조 속에서 생활하고 있지는 않으리라 믿어요. 그것은 浩兄 씨는 강한 사람이니까요?
承弟는 다소간 浩兄 씨가 나에게 쓰는 편지가 현실적이었으면 해요.
나 자신이 너무 어떠한 것을 너무 환상 속에서 펴나가기 때문일 거예요. 浩兄 씨의 정신세계는 조금 깊어졌지만, 감춰진 현실은 상상뿐이에요. 그것은 어떠한 판단을 내려 함부로 글을 쓴다는 것은 어쩜 자존심 상할지도 모르니까요. 겉으로 봐서 좋은 집에서 살아보니까 아무런 그것에 대한 만족감은 없네요. 주인집을 의식하지 않아서 편하긴 하지만, 성격일지 모르지만, 외부의 치장은 나를 절대 기쁘게도, 슬프게도 하지 않거든요. 사회에 나와서 남의 집에서 산다는 것은 괴롭기는 하지만, 나는 결국 이렇게 아마 남의 집에서 살 신세가 아닌가 상상이 되고 있어요. 그래서 익숙하게 길들이고 있어요. 나는 항상 괴롭더라도 우선 이해해요. 내가 아쉬워서 남에게 의탁하는 것이니까요. 처음에는 이런 곳에까지 자존심을 내세워 나른 괴롭게 했지만, 불필요했어요. 내가 살고 있는 세상에 권태와 짜증을 느낀다는 것을 잘 이해하겠어요. (1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