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뜨겁게 만듭니다.
지금 이 시간은 浩兄 씨를 꼭 만나고 싶은 마음에서, 보고 싶은 마음에서 편지를 쓴답니다.
오늘은, 요즈음은 나의 생활이 기쁨으로 일관된 행복한 시간이 되고 있습니다.
4명의 친구에게 편지를 왕창 받고 너무너무 기뻐서 엉엉 울어버렸어요. 얼어붙은 가슴을 녹여주는 뜨거운 눈물은 주님이 주신 행복한 눈물이었어요. 기도하고 영롱한 눈망울을 텅 빈 방 안으로 들여보내고, 가득가득 사랑으로 충만한 편지를 그들에게 보냈답니다. 그들이 있기에 난 가난해도 행복하답니다. 그들이 나를 기억하고 사랑해 주니, 나는 기쁨뿐이랍니다. 세상이 온통 아름답기만 하답니다.
친구들은 7명 내에서 항상 편지가 옵니다. 그들을 제외하면 별로? 그들 역시 모든 감각에 예민해져 있고, 생(生을) 알고 싶어 하고 진지했답니다. 그들이 그렇게 젊음을 만끽하고 즐거운 시간을 갖고 있듯이, 저 역시 그런 내 인생을 꿈꾸었답니다. 하지만 현실은 나의 꿈을 묵살하고, 외롭고, 고독하고, 무서운 서울로 나를 옮겨놓고 말았답니다. 그들처럼 나도 배우고 구김살이 없기를 나는 어렸을 때부터 갈망했는데, 중도에 주님을 더 꼭 붙잡지 못함이 나의 아픔입니다. 그 모든 것을 능히 하시는 주님을...
실현 불가능, 나는 거의 폐인(廢人)에 가까우리만큼 위험한 사람이었답니다. 내 인생을 공부만 하면서 살려고 했답니다. 사랑 따위는 모두 필요가 없다는 듯이. 그것은 야망(野望)이 너무 많은 여자로 만들었고, 자신을 잃어가게 만들었답니다. 모든 것의 노예가 된 셈이죠.
딱딱하고 불필요한가요? 하지만 저는 오늘처럼 내 마음을 당신 앞에 열어본 적은 없어요. 사랑은 뜨겁게 만듭니다. 모든 것을. 이제는 사랑만 한다면 나는 가진 게 없어도 좋으리. 살아있는 모든 생명을 사랑하고, 사랑하며 주님께 영광을 돌리리. 나 하나를 희생할 줄 아는 참사랑을 배우리.
당신을 주님은 어찌하여 나 같은 죄인에게 보냈을까요? 주님은 내가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어떻게 아셨을까요? 왜 지금까지 그냥 버려두지 못했을까요? 생각해 보니 나는 괴로움 중에 하나님을 갈망했던 것 같아요. 자신의 모습이 거울에 비친 것이 두려웠나 봐요.
이해타산을 따지는 게 아니라, 나는 마음이 얼어버렸습니다. 사랑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것과는 먼 곳에서 지냈습니다. 그래서 浩兄 씨가 답답해했을 겁니다. 옛날의 내가 다시 된 셈입니다. 고3~1978년은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변모시켰습니다. 주님만이라도 사랑한다면, 내 친구들만이라도 사랑한다면, 부모, 형제들만이라도 사랑한다면 그런 후에는 죽어도 외롭지 않으리.
왜 정(情)은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갈까요? 광주에서 정말 살고 싶답니다. 사막의 이곳이 아니라 나를 사랑해 줄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다시 한번 사랑하고, 사랑을 받고 살고 싶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난 살아갈 수 있답니다. 하나님을 위해 살면서... 나 혼자도 슬프지 않을 겁니다.
이런 承弟를 사랑해 줄 수 있어요? 浩兄 씨!
감사합니다.
1979.01.09. 承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