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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들 Nov 27. 2023

내 작은 숨소리를 들어보세요 (2)

浩兄 씨를 사랑하는 거랍니다

내 작은 숨소리를 들어보세요 (2)




귀엽게 생긴 浩兄 씨!     

承弟가 귀엽게 생긴 浩兄 씨라고 하는 것은 약간 어리다는 생각이 내포(內包)된 것입니다. 22세의 모든 남자를 어리게 보는 것이지, 특별히 浩兄 씨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그래요. 承弟도 모든 걸 하고 싶어요. 사랑, 연애, 결혼…. 주님의 뜻 안에서 거하길 원해요. 전에 浩兄 씨는 이렇게 얘기했죠. ‘이해타산(利害打算)은 전 싫어요’ 하면서 마치 제가 이해타산을 따지는 사람인 양 썼더군요. 承弟는 화가 났죠. ‘도대체 어떤 생각을 하고 살기에 承弟가 그런 얘길 듣지?’ 하면서 그런 여자는 남자에게 어쩜 천박한 인상을 보이는 것일지도 모를 일인데, 화가 나지 않겠어요? 어떤 사람에게도 그런 생각을 받고 싶진 않아요. 이해타산이 뭐죠? 지금 그 상태를 사랑할 수 없다면 그것은 이해타산이겠죠. 承弟는 지금의 浩兄 씨를 사랑하는 것이지, 교대생을 사랑하거나, 돈을 사랑하거나, 미모를 사랑하거나, 국민학교 교사를 사랑하지 않아요. 浩兄 씨를 사랑하는 거랍니다.


      

그렇게 인간을 사랑하게 되면 모든 것을 생산해 내는 겁니다.


주의 뜻 안에서 모든 것 구하면 됩니다. 그렇다고 인간적인 것을 떠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죠. 무한한 인간의 머리와 지혜로 모든 것 누리고 우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열거해 보면, 이 세상을 살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우린 열심히 일해야만 그것을 이용합니다. 돈이 있으면 우리는 현실을 채울 수 있습니다. 아늑한 집도, 땅도, 옷도, 빵도 해결해 줍니다. 하지만 이들을 위해 우린 살지 않습니다. 적어도 ‘承弟’만이라도 주님의 뜻에 어긋나지 않게 모든 고통과 슬픔을 참고 주님께 가도록 살고 싶어요. 주님께 모든 것을 바칠 때,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믿지 않는 모든 인간에게도 ‘모든 부귀, 영화를 허락하신 주님이신데 우리일까 봐요?’ 하지만 주는 그의 모든 것이 헛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떠난 부귀, 영화는 헛된 것입니다. 그리고 거지가 있는데 어찌 잘 살겠습니까? 나의 돈이 어디 있겠어요.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이지, 내 것이 어디에, 무엇이 있겠어요. 우리의 육신까지도….          



교사라는 직업!
교육을 받음으로써 인간은 신과 가깝게 접할 수 있죠.
우리 인간은 교육을 받지 않으면 안 되죠. 그래서 교육은 곧 사명입니다.


점점 악해지는 인간은 교육이 흔들리고, 교사의 지위가 하락하고 그 직업을 무시하는 신과 점점 멀어지는 처사를 행하고 있는 거죠. 그래서 承弟 ‘교사라는 직업을 제일 큰 직업’이라고 생각하는 한 사람이랍니다. 머리가 나쁘거나 게을리 공부해서 원하지도 않는 사대(師大)를 택한 사람이 많아요. 그들은 하나같이 직업에 회의를 느끼고, 이직하거나 흔들리고 있으니 올바른 교육관이 설 리가 없지요. 한 가지 浩兄 씨는 스스로 원했던 직업을 가질 수 있다는데, 承弟浩兄 씨를 가깝게 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돈에 집착하여 마음이 항상 좁아지고 초조한 생활을 하지 않을 폭넓은 마음을 갖고 있으면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거죠. 이 모든 것은 인간적으로나, 하나님의 뜻에서나 사랑하는 면입니다. 죽음에 종지부를 찍는 모든 사람은 초조하고 불안하고 무서워서 돈을 산더미처럼 쌓고, 집을 철조망으로 둘러싸고 초조와 긴장 속의 혼미한 심령은 크게, 작게, 숨 가쁘게 헐떡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아도 초조와 긴장을 해소할 수 있고 평온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承弟는 모두 준비된 사람을 찾지 않아요. 그런 사람은 나에게 부담을 주니까요. 주님이 허락하신 사람이라면, 새롭게 모든 것을 창조하는 거랍니다. 거기에는 이해타산이 게재되지 못하죠. 마음의 평온이 없을 땐, 주님의 뜻이 아님을 우린 빨리 알고 처신해야 할 것입니다. 承弟 당신이 몇 번 보내준 편지만으로도 만족해하고 기뻐하는 바보라는 걸 알아주세요. 다만 한 가지 보고 싶어서 쩔쩔매는, 안타깝다는 생각은 지배적이니까. 그냥 바보는 못되죠.           



浩兄 씨!

承弟는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합니다. 아무도 사랑하지 않아도 외롭지도, 고독하지도 않을 겁니다. 하지만 인간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생각은 이기적인 생각이죠. 浩兄 씨, 承弟는 나에게 사랑을 베푸는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다시 돌려주고, 인간 모두에게 헌신할 수 없다면 한 사람에게라도 모든 것 바쳐 사랑할 것입니다. 그것은 그 큰 사랑인 만큼 나는 항상 심각한 모습으로 표출됩니다. 어떤 때에는 제 자신이 결단성이 없어 보이거나, 소심해 보이거나, 이기적으로 보이거나, 깍쟁이로 보이거나 하는 여러 가지 모양으로 나타나는 것 같아요. 하지만 서둘지 않고, 급한 성을 내지 않고 온유한 성품에서 확고한 각오를 할 것입니다. 그것은 시일의 문제이며, 많은 것을 배우고 익힌 후라면 알게, 모르게 우린 어떤 확정을 할 수 있을 겁니다.      


앞 전 편지 끝부분에 ‘노력하고 싶지 않으면 잊어주세요’라는 말이 있을 겁니다. 화나서가 아니라, 진실입니다. 어쩜 浩兄 씨가 호감이 간 말이 된다면, 承弟는 쉽게 잊어버릴지도 몰라요. ‘어쩜 내가 그런 사람을 사랑하려 들다니’ 하면서 자신을 채찍질할지도 몰라요. 그러나 承弟浩兄 씨가 될 수 없듯이, 浩兄 씨도 承弟와 똑같은 마음이 될 수 없을 겁니다. 하지만 끊임없이 동일지점에 도달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사랑이 아닐까요? 어쩜 하나의 사랑이란 단어 속에 오가는 편지는 얽힌 내용이 많군요. 어쩜 浩兄 씨에게는 承弟의 모든 것이 빗나간 것 아닐까요? 순전히 빗나갔네요. 조금은 빗나가고 말았네요. 어휴, 정말이지 하나같이 없군요. 어쩌다가 이렇게 됐지.          



浩兄 씨!

믿음을 갖게 되어 흐뭇하지만, 사랑을 차지하지 못하게 된다는 얘기가 무슨 얘긴지 모르겠군요. 빗나간 浩兄 씨 생각이라고도 말할 수 없죠. 이건 근본을 모른 것이니까. 구정 땐 내려갈 수 없어요. 21일, 오빠가 결혼했기 때문에 친지들을 만났고, 내려간다 해도 차표 때문에, 며칠 동안 안달 부리는 고통도 지겹거든요. 쓸쓸한 것은 똑같으니 여자도 고향에 가지 못하고 지내는데, 남자인데 담대해야 하지 않겠어요. 내 작은 숨소리를 들어보세요. 쓸쓸하지 않은 浩兄 씨의 밤이 될 것입니다. 다음에 재미있는 얘길 하죠.


건강과 모든 면에 주님이 함께하시길 기도합니다.           



1979.01.22. 밤 10:15 承弟


(p.s) 너무 긴 글이 되어 죄송해요. 약간 지저분하죠. 고등학교 시절, 노트 정리처럼. 꾸역꾸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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