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시금치인 섬초는 전남 신안 도초도·비금도에서 품종 개량된 시금치를 부르는 말이며, 10월 말에서 익년 3월까지 사면에서 불어오는 해풍을 맞고 한겨울 추위 속에서 눈, 비, 서리를 맞고 자란다. 잎이 두껍고, 건강에 좋은 단백질, 지방, 탄수화물, 섬유질, 철분, 비타민A, 비타민C, 게르마늄, 천연 미네랄이 풍부하다. 또한 일반 시금치에 비해 길이는 짧고 연보라 뿌리 색으로 식감이 좋고 특유의 단맛이 일품이기에 온 국민의 밑반찬으로 최고의 사랑을 받는다.
내 고향 도초도, 섬초의 겨울은 희망이다.
주민들은 섬초 씨앗을 뿌리면서 행복한 희망을 심는다. 섬초는 가락동 농수산물 시장에서 일반 시금치보다 2~3배 고가(高價)로 경매되기에, 섬초를 팔아 1년 동안 넉넉히 생활하고 자식들 뒷바라지하며 사람 노릇도 폼(form) 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리라. 대체로 주민들의 평균 소득도 높지만, 해마다 평균 1억 원 이상 버는 젊은 사람들은 섬초 부자가 된다. 이러니 주민들이 섬초 농사에 전념하며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
금년에도 나는 고향에 간다. 어머니와 막냇동생이 행복 희망을 키워가도록 섬초 농사를 도와주기 위해서이다. 아침 8:00 수원 집에서 출발하여 오후 6:10 고향 집에 도착했으니, 무려 8시간 10분 걸렸다. 만만(漫漫)한 고향 가는 길, 고향은 역시 포근한 어머니 품처럼 따뜻하게 맞이해 주었다.
그런데 이를 어쩌나?
2024 도초도섬시금치 겨울은 혹독했다.
평균 기온이 2~3도 높아진 고온 현상과 잦은 비로 인해 섬초는 그만 힘을 잃었다. 다 키운 섬초, 나날이 커가는 섬초, 이제 막 크려고 아기싹을 떼어낸 섬초가 무참히 빛을 바랬다. 자연재해 앞에서 성장을 멈추고 누렇게 떠가는 섬초를 보며 주민들의 마음도 누렇게 타들어갔다. 논밭을 갈아엎은 후, 새 씨앗을 파종했다. 하지만 연일 내리는 비는 그마저도 소망을 꺾어버렸다.
그나마 물 빠짐이 좋은 밭의 섬초는 비 피해를 꿋꿋이 이겨내었다. 고마웠다. 이렇게라도 섬초 수확을 할 수 있어 씨앗값은 건지려니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새떼의 공격을 받았다. 식물 열매를 섭취하는 수십, 수백 마리의 직박구리가 무리 지어 새카맣게 날아와 시금치를 사정없이 쪼아 먹었다. 산 밑의 밭은 거의 폭격을 맞은 듯이 섬초를 초토화시켰다. 주민들은 이제 새떼와의 전쟁을 해야 했다. 처음에는 새떼를 쫒으려고 큰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녔다. 어림없었다. 직박구리는 오히려 사람들을 놀리듯이 우회해서 날아다니다가 또 내려앉아 섬초를 뜯어먹었다. 그래서 주민들은 새떼를 쫒기 위해 허수아비 세우기, 연 날리기, 그물 씌우기, 새총 쏘기, 폭죽 터뜨리기,...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했다. 하지만 마음껏 날아다니며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니는 직박구리를 물리치기 힘들었다. 나이 든 어르신들은 새떼가 다 자란 섬초 뿌리까지 쫓아먹는 걸 보며 망연자실했다. 너무너무 안타까운 현장이었다.
하지만 경천동지(驚天動地)할 사건이 발생하였다. 지난 2월 15일, 2월 16일(2일 간) 서울 가락동 시금치 야채 경매 시장에서 시금치 8kg 1박스 경매 낙찰가가 최저가 1,000원에 낙찰되었다. 주민들은 40여 년의 시금치를 출하하며 처음 있는 일이라며 도저히 이런 낙찰가는 있을 수 없다고 했다. 하필이면 시중 섬초 가격은 고공행진을 하고 있고, 1월에 도초섬시금치 8kg 1박스 도매가 경매 낙찰가가 12만 원~15만 원을 호가하여 경이로운 낙찰가를 기록했는데, 1,000원이라니. 더군다나 고령의 할아버지할머니들이 엄동설한에 시금치 1박스를 포장하기까지 3시간 정도 힘들게 작업해야 하는데, 공판장의 만행, 횡포(?)는 무참히 섬주민들의 희망마저 앗아가 분기탱천(憤氣撑天)해야만 했다.
하지만 나의 고향, 도초섬시금치는 최고의 시금치이다.
서울 가락동 시장의 횡포로 인한 8kg 1박스 1,000원의 경매 낙찰가는 섬주민들의 소박한 마음에 커다란 생채기를 남겼다. 분노한 청년 주민은 검찰, 경찰 수사를 촉구하며 도초섬시금치 야채 경매 만행에 대해 국민권익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에 국민신문고 민원을 냈다. 답답함을, 부당함을, 억울함을 하소연하는 당연한 아우성이리라.
글머리를 다시 '내 고향 도초도는 <시금치 중의 시금치>인 섬초 생산지이다'로 되돌린다.
나는 확실히 안다. 비록 자연재해로, 새떼의 공격으로, 경매 시장의 횡포로 좌절했지만, 도초섬주민들은 꿋꿋하게 일어설 것이다.도초도 주민들은 물론이고 관내기관단체와 뜻있는 지역자생단체에서 더욱더 합심하여 최고의 시금치, 도초섬시금치를 가꿔 나아가길, 고향을 사랑하는 출향민의 한 사람으로서 간절히 응원해 본다.그래서 내년 이맘쯤에는 도초도 논밭에서 파랗게 출렁이는 희망 가득한 행복 섬초를, 제 값을 받고 안면 가득 함박 미소 짓는 주민들의 모습을 꼭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