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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들 Dec 27. 2024

참새반 아이들과의 종업식

참새반 아이들과의 한국어 여행이 끝났다

참새반 아이들과의 한국어 여행이 끝났다.


지난 9월 30일부터 12월 26일까지 60일간 쉴 새 없이 달려온 한국어 집중교육을 마치고, 아이들은 이제 소속 학교로 되돌아가게 된다. 오늘이 마지막 날인 줄 아는지 첫 시간부터 들뜬 아이들, 꽤 어수선함으로 여지없이 수업 분위기를 망가뜨린다. 수업에 집중하지 않고 실실 웃어댄다. 평소와 전혀 딴판이다.


    

한국어 공부했던 소감을 발표하게 했다. 


이제 겨우 한국어가 눈앞에서 어른거리는 아이들에게 수료 소감을 말하라는 것은 무리일 수 있겠다. 과제를 내주었더니 이게 웬일일까? 번역기를 이용해서 자기 생각을 한국어로 왔다. 제법이다. 자기 소회를 한국말로 하려고 번역기를 이용하다니. 나는 아이들의 소감문을 보며 어색한 표현을 수정해 주었다. 수료 소감을 잘 말할 수 있을까? 노파심에 소감문을 인쇄해 주었다.          


한국어를 제일 잘하는 강*해는 인쇄물을 보지 않고 읽겠다고 한다.     

안녕하세요. 강*해입니다. 저는 디딤돌학교에 있는 모든 것이 좋습니다. 한국어를 많이 배웠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어서 좋았습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평소 고집부리며 그림 그리기에만 몰두했던 다*엘은 잘 읽는데, 너무 눈 가까이에 종이를 댄다. 글자가 안 보일 것 같다. 종이를 멀리 떼어 주지만 다시 눈앞이다. 읽는 소리도 점점 작아져서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다.

안녕하세요. 김다*엘입니다. 우리에게 한국어를 가르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간식 고마워요. 식당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엘레*노라는 수준이 높다. 소감도 제일 많다. 나름대로 감정을 많이 담았다.     

안녕하세요. 김엘레*노라입니다. 나는 디딤돌학교에서 한국어 읽는 법을 배웠습니다. 한국어 쓰는 법도 배웠습니다. 한국어 공부하는 방식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디딤돌학교는 매우 아름답고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습니다. 선생님들도 훌륭합니다. 한국어를 가르쳐 주어서 감사합니다.          


알렉*드라는 수업집중도가 제일 낮고 한국어 이해도가 떨어져서인지 소감이 아주 짧다. 소감 내용도 단순하다. 잘 읽을 수 있는데 의욕이 없다.      

안녕하세요. 김알렉*드라입니다. 우리에게 한국어를 가르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식당에서 맛있는 음식을 주시고 참치와 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유*아는 받침 있는 한국어를 못 읽는다. 그래도 소감을 적어온 게 대견하다. 내가 읽어주며 따라 읽게 했다.    

안녕하세요. 유*아입니다. 한국어를 가르쳐 주어서 감사합니다. 간식 주어서 감사합니다. 맛있는 점심을 주어서 감사합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오늘은 특식이다. 햄버거, 감자 칩, 치킨 튀김, 음료수를 주었더니 모두 행복한 얼굴로 소스를 찍어가며 맛있게 먹었다. 아이들이 고맙다고 말한다. 고마움을 표현하는 건 공통의 감정인가 보다. 5명의 아이 모두 한국말로 고맙다고 하니 작은 감동이 몰려왔다.          



아이들에게 상장도 주었다. 아이들의 특징을 담아 상장을 정해 문구를 썼다. 다*엘에겐 번뜩번뜩상, 유*아에겐 두루두루상, 엘레*노라에겐 차분차분상, 알렉*드라에겐 하하호호상, 강*해에겐 빨리빨리상을 주었다.      

위 어린이는 항상 번뜩번뜩 빛나는 생각을 하며 한국어 공부에 열심히 참여하여 다른 이들에게 모범이 되었으므로, 위 어린이는 두루두루 꼼꼼히 주변을 챙기며 한국어 공부에 열심히 참여하여 다른 이들에게 모범이 되었으므로, 위 어린이는 하하 호호 잘 웃고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며 한국어 공부에 열심히 참여하여 다른 이들에게 모범이 되었으므로, 위 어린이는 차분차분 성실한 자세로 한국어 공부에 열심히 참여하여 다른 이들에게 모범이 되었으므로, 위 어린이는 빨리빨리 생각하고 행동하며 한국어 공부에 열심히 참여하여 다른 이들에게 모범이 되었으므로 이 상장을 줍니다.          



이제 종업식의 막바지, 참새반의 지난 생활 사진을 PPT에 담아 감상했다. 


나만의 느낌일까? 아이들의 눈가 위에 촉촉한 이슬이 맺히는 것 같다. 아이들에게 완연한 서운함이 있는 걸까? 침묵이 흐른다. 유쾌하게 웃기도 해서 괜찮았다. [동요] 「“넌 할 수 있어”라고 말해 주세요」를 부르며 종업식을 끝냈다.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시간이다. 딴 별 아이들은 모두 배꼽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선생님, 감사합니다’ 말하며 인사했다. 나도 답례했다. 센터 문을 나서기 전에 센터 선생님들께도 인사했다. 오늘따라 딴 별 아이들에게는 공손함이 있었다. 진지함도 있었다.      


버스정류장에서 아이들을 배웅했다. 아이들은 버스를 탔고 나는 손을 흔들었다. 우리는 그렇게 60일간의 한국어 여행을 끝내고 헤어졌다. 부디 딴 별 아이들이 학교로 가면 한국어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한국 아이들과 조잘조잘 대며 행복하길 바란다.


그런 바람이 통했을까?

벌써 아이들이 한국어로 말하는 소리가 메아리쳐 오는 것 같다. 행복 미소를 함빡 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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