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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사랑이 거봉 Jan 07. 2024

해프닝 그리고 교훈

어느 과음한 겨울날의 추억

지난 겨울날, 오랜만에 회식이 있어서 한잔 했다. 코로나19 시국이 길었던지라 그동안 자제했던 알코올 욕망을 억제하지 못해 폭탄주를 쏟아부었다.


아직 집으로 가는 버스가 있는 시간대라 노선버스에 몸을 실었는데 눈을 떠보니 웬 고속도로 주변에 있는 차고지였다.


젊은 버스기사가 얼른 내리라고 하는데 아뿔싸 손에 있어야 할 핸드폰이 없네.

기사랑 함께 아무리 버스 안을 뒤져봐도 핸드폰이 보이지 않는다.


종점이 집 근처인데 미처 자고 있는 나를 발견하지 못하고 깨우지 않은 채 하남 IC 근처 종점까지 오게 하다니...


기사가 야속했지만 핸드폰의 행방이 더 중요했다. 뒤지고 뒤져도 깜깜한 탓인지 술 탓인지 행방이 묘연하다.

신용카드도 끼어있는데 큰일 났다.


시계는 12시를 향해가는데 택시도 눈에 띄지 않는 외진 곳이다. 하남시라니? 도대체 여기가 어디란 말인가?


간신히 버스기사 핸드폰으로 집에 이 상황을 전하니 마누라의 책망이 거세다. 평생 들어도 모자랄 꾸지람을 듣는다.


기사의 도움으로 콜택시에 전화해서 어찌어찌 집에 오니 새벽 1시오밤중에 신용카드 정지시키고 일단 잠을 청한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버스회사에 전화부터 걸고 CCTV를 볼 수 있냐고 물으, 먼저 경찰서에 신고부터 하란다.


일단 출근부터 하고 보자.

전화기가 꺼져있지 않고 신호는 가고 있으니 누군가가 훔친 것 같지는 않다.


통신사에 의뢰해서 위치를 추적하니 양재역 근처에서 강남역 방면으로 핸드폰 위치가 움직이고 있다는 정보를 알려준다.


그래? 얼른 버스회사에 확인하니 마침 어제 그 버스가 같은 노선의 그 위치를 달리고 있었다.


부리나케 회사를 나와 다른 버스를 타고 교보빌딩 근처로 가서 다시 돌아올 그 버스를 기다린다.

일각이 여삼추!


이십여 분을 기다리니 그 버스가 다가온다.

버스에 올라타고 어제 앉았던 자리 근처를 두리번거리니 핸드폰이 보이지는 않는다.


버스기사가 왜 그러냐고 묻길래 잃어버린 핸드폰을 찾는다고 하니, "아! 그거 어떤 승객이 습득해서 주고 갔어요."라며 핸드폰을 보여주고 이 핸드폰이 맞느 확인을 한다.


금도끼냐 은도끼냐... 우화가 생각난다.

버스기사가 산신령이로구나.

얼른 맞다고 대답하니 핸드폰을 건네준다.


구사일생으로 천군만마를 내 품에 안은 장수의 심정이 이럴까?

집 나간 자식이 금의환향한 경우의 아버지 맘이 이럴까?


얼른 통신사에 가서 잠금을 해제하고 나니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매일 아침에 올리던 네이버밴드 글은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도 되지만...


만약에 핸드폰을 분실했다고 치자.

은행등 금융업무에, SNS로 연결된 문자, 밴드, 카톡, 라인, 등등은 어찌할꼬?


이메일 확인을 위해 타는 목마름으로 훑어보는 구글이나 다음, 네이버 등 포털사이트...???

핸드폰 새로 사는 비용도 그렇고...

지워졌을 사진과 글들은...???

으음... 아찔하기만 하다.


- 교훈 -


폭탄주는 석 잔만 하자.

추운 날 벌벌 떨다 따뜻한 버스에 타면 바로 자게 되니 눈을 부릅뜨거나 알람을 활용하자.

잠시도 손에서 떼어놓지 못하는 핸드폰에게 휴식을 주자.

이제는 집중력도 시력도 악력도 떨어졌음을 인정하자.

게다가 술실력까지도...


간밤의 악몽에서 깨어나게 해 준 습득자와 기사님께 감사드린다.

아직도 이 사회에는 정직한 사람들이 많고, 오히려 내가 더 때 묻지 않았을까? 반성도 해 본다.


덕분에 아래와 같은 친구의 글도 발견했다.


OOO 안녕~

근 3년간 매일 아침 읽던 밴드의 포스팅이 없으니 좀 허전하구먼.

뭔지 모르지만 혹시 사람들에 대한 실망이 컸던 모양일세.

위로가 될지 모르지만 내가 시와 노래 한곡을 올렸네.

자기한테 주고 싶어서.

한번 읽어봐 주게.

항상 활기찬 그대를 보고 싶구먼~~~^^


그래, 이 글을 보내준 그대야말로 진정한 친구일세!


이 해프닝을 소중한 추억으로 간직하기로 하고 얼른 일터로 복귀하였다.


*이미지: 네이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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