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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사랑이 거봉 Jan 06. 2024

장수의 비결은?

97세 회장님을 여의고 느낀 소회

나는 영원히 나이를 먹지 않을 줄 알았다.

큰아버지 고모 삼촌들이 60대라고 하면 저 먼 나라 이야기인 줄 알았고, 설마 내가 그런 나이를 먹는다고? 생각했다.

나는 영원히 살 줄 알았다.

그러나 인간은 영원불멸하지 않다.

진시황도 세종대왕도 노무현도 DJ도 YS도 전두환이나 노태우도 죽었다고 느꼈을 때 나는 그것조차 그들만의 이야기이고, 나는 영원히 살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제약과 관련된 일을 직업으로 삼아 모든 인간의 생로병사는 누구에게나 적용되며 거기에 일정 부분 역할을 하고 있는 의약품의 역할알게 되었다. 기본적으로 약은 일단 몸에 들어가면 이물질이고, 체내에 들어가서 약효를 발효함과 동시에 수많은 부작용이 반드시 발생한다는 입사 초기의 교육이 떠오른다.

질병에 걸리면 필수불가결한 이물질이 의약품인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인간은 장수와 불로에 집착하고 약에 의존하는지 생각해 본다.


감기 하나 걸려도 한 알만 먹으면 낫는 약은 아직도 없다.

제약기업은 천문학적인 연구비를 투자해서 신약을 만들어 내고, 그것의 효과를 마케팅하며 연구개발비에 투자한 돈을 회수하려 안간힘을 쓴다. 그러나 수 조 원을 벌어들이는 약이라 해도 단 한 방에 질병이 완치되는 약이란 아직도 없다.


내가 30여 년을 모셨던 우리 회장님은 90세를 넘겼어도 약을 좋아하지 않았다.

약학과 의학을 전공하셨던 분인데도 아이러니칼 하지 않은가 말이다.

의약품 전문가이니 약을 제일 잘 아는 분이 약을 선호하지 않다니...

회장님은 오히려 약물의 부작용을 염려할 뿐 어디가 아파도 선뜻 약을 복용하려 하지 않는다.


그 수수께끼는 간단하다.


그분의 지론은 평소에 섭생을 잘해서 일정 수준의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 건강이지, 약을 먹을 지경까지 몸을 망가지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흔히 장수비결로 꼽히는 규칙적인 운동을 한다거나, 친구가 많다거나, 백년해로의 배우자도 없다.

운동도 싫어하고 친구들은 벌써 타계했고 배우자와도 25년 전에 사별했다.


비결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소식하기: 아무리 비싼 레스토랑에서도 고기 다섯 점에 된장찌개로 끝.

식초 즐겨 먹기: 웬만한 무침은 식초를 찍어 먹음.

숙면: 졸리면 바로 잠을 자기. 억지로 잠을 쫓지 않음.

음주: 술을 가까이 하기는 했으나 과음하지 않았음. 폭탄주는 석 잔까지.

자세: 절대 서두르지 않고, 절대 무리하지 않기.

치아관리: 90세까지 본인 치아를 사용, 의치도 없고 틀니도 없었다.

사고방식: 우유부단하긴 했지만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자세 유지.

공사: 철저한 일과 사생활의 분리.

젊은이들과 어울림: 주말에도 번화가를 가보고 패션의 기준은 중년에 맞춰 있지 노년의 패션이 아님.

젊은 직원과 눈높이를 맞추었고 젊은이들을 곁에 두고 늘 어울리고 살았음.


결론은 생활습관과 사고방식, 평소의 섭생에서 해답을 찾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건강했던 분이 백신을 5차까지 맞았음에도 올 4월에 코로나19에 걸려 고생하였다. 그 후유증으로 폐렴과 함께 연하장해가 오고, 운동부족으로 걷지를 못 하더니 덜컥 쓰러지셨다.

3개월간 입원과 치료를 지속하시다 지난 주말 97세를 일기로 영원히 타계하셨다.

부랴부랴 빈소를 마련하고 부고를 통지하고 해외에서 자식들이 오고, 화장터까지 동행하여 임종까지 마무리하였다.


나에게는 제2의 아버지 같았던 회장님은 영원히 떠났으나 그의 가르침과 영혼만큼은 가슴속에 새기도록 한다.


이제는 그를 극복하고 초월하는 일만 남았다.

삶의 자세, 인간관계, 인맥관리, 인품, 의료에 공헌하기, 젊은이들과 어울림, 장수 비결 등, 노력해서 극복해야만 한다.


나에게 큰 산과 같은 분이었지만, 임종 전에는 가는 뼈마디에 살이 약간 달라붙어 있고, 인공호흡기로만 연명하던 힘없는 노인이었다.


입관할 때 마지막 모습을 보니, 투병을 위해 투여한 수액제와 항생제 등 약독이 퍼져서 몸이 20kg 정도 부어 있었다. 얼굴도 퉁퉁 부어올라 원래의 모습을 모를 정도였다.


화장하고 유골이 나오기까지 1시간 20분.

잔인하게 유골을 믹서기로 분쇄하는데 당 10초.

한 줌의 재가 되어 작은 상자에 들어가면 끝.

아, 인생이란 한 줌의 재로 가는구나...


그런데도 우리는 매일매일 무엇을 위해서 그리 허둥지둥 살고자 하는지...

아직도 밀도 높은 긴장된 삶을 살아야만 하는지...


깊어가는 가을날에 상념에 잠겨 본다.


2023년 10월  8일


*이미지: 네이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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