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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사랑이 거봉 Jan 10. 2024

분실물

소지품 분실, 그 원인은?

얼마 전 즐거운 저녁 독서모임이 있었습니다.

시집을 읽고서 감상을 토론하는 자리였는데, 멤버들이 다 감성이 풍부해서 풍성한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그런데 헤어지고 2호선 전철을 타니 온통 검정 옷의 남녀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어서 간신히 손잡이를 잡고 버티며 갈아타는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어요. 좀 피곤하더군요.


버스 정류장에도 대기하는 줄이 길게 늘어섰는데, 탑승해서 보니 운 좋게도 한자리가 비어 있어서 앉아수가 있었습니다.


따뜻한 온풍을 느끼다 술기운에 잠이 들었는데 깨어보니 집 근처 정류장이었어요. 얼마나 내리는 사람들이 많은지 허겁지겁 뒤를 따라 내리다 보니 카드가 꽂혀있던 핸드폰이 손에 없는 거예요.


뒤에서 사람들이 밀쳐대니 머뭇거리다가 욕을 얻어먹을 듯하여 일단 내리고 나서 주머니를 뒤졌는데 핸드폰도 없고 친구가 선물로 준 성탄절 기념 도넛 박스도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야 알아챘지요.


아뿔싸! 버스에 두고 내렸네!


곧바로 집에 들어서자마자, 게임에 몰두하고 있던 아들에게 교통앱으로 내가 탔던 버스가 어디쯤 가고 있는지 확인부터 시키고, 아내를 앞세워 차를 몰아 버스 뒤를 쫓기 시작했습니다.


간신히 종점에 이르자 막 정차하는 버스를 발견하고 올라 타니 다행히도 기사님 옆 도넛 박스에 핸드폰이 들어있는 채로 발견되었습니다.


기사님은 '운이 참 좋으시네요!'라고 말씀하셨고, 나는 아직도 양심이 살아있는 그 순간의 기쁨을 만끽하였습니다.


아내로부터는, 지금까지 술에 취해 물건을 놓고 내린 적이 몇 번이냐며(핸드폰, 가방, 안경, 우산, 지갑, 쇼핑백 등등) 꾸중을 들으며 귀가했지만, 부끄러운 상습범은 전혀 변명할 여지도 없었습니다.


특히 연말연시 모임이 잦은 시기에 밖은 춥고 대중교통수단은 내부가 따뜻하여 쉽게 잠이 들곤 하는데요...

이럴 때 조심해야 합니다.


한 번은 지하철 좌석 위에 신발이 든 쇼핑백을 깜빡 놓고 내렸는데 다음날 근처 역에 문의하니 분실물 센터를 알려줘서 찾아갔던 적이 있습니다.


미안해서 박카스 한 박스를 들고 갔는데요, 습득물이 창고에 가득 차있었고 종류도 가지가지여서 눈이 휘둥그레진 기억이 납니다.


다행히도 제가 탔던 지하철 호선과 시간대, 앉았던 칸을 기억해서 진술했더니 10분 만에 찾아주더군요. 고마워서 얼른 박카스를 드리고 도망치듯 나왔던 기억이 있습니다.


또 어느 해는 송년회 끝나고 집에 가는 노선버스를 탔는데, 차 안이 따뜻해서 안경에 김이 서리길래 손가락에 안경테를 걸친 채로 바로 잠이 들었습니다. 


거의 집 근처에 다다를 무렵 잠에서 깨었는데 눈앞이 흐릿해서 얼굴을 만져보니 안경이 없지 뭐예요.


아~ 이런!


곤히 잠든 사이에 손가락에서 안경이 빠져나간 거지요.

기사님이 얼른 내리라고 재촉하여서 일단은 내렸는데, 앞이 잘 안 보이더군요. 또 하는 수 없이 집에 전화해서 차를 앞세우고 버스를 뒤따라 갔는데, 막 종점에 정차한 차 바닥을 아무리 둘러봐도 없더군요.


다음날 날이 밝았을 때 다시 가서 습득물로 발견됐는지 확인했지만 끝내 발견되지 않았어요.


나름 비싼 돈을 주고 맞춘 안경이었고 공식 사진을 찍을 때마다 썼던 최애(最愛) 안경이었기에 지금도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택시나 전철, 버스에 놓고 내린 우산은 부지기수라 셀 수가 없습니다.

우산의 경우는, 보통 아침에 비가 내렸는데 오후나 저녁에 개었을 때 많이 잊어버리죠.


제일 큰 충격은 현금과 카드가 다 들어있는 지갑을 잃어버린 기억입니다. 이것도 음주 중 양복 겉저고리에 넣어둔 채 잃어버렸는데요, 주변에 소홀했던 방심이 부른 결과이고,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는 본인 과실입니다.


앞으로는 술을 끊던지 모임을 하지 말던지 해야지 원...


집안 식구들에게 폐만 끼치는 가장은, 가족에게 걱정거리로 취급되어 면목이 없습니다.


핸드폰을 못 찾으면 이런 글도 쓰지 못하고, 뜬눈으로 밤을 새워야 하고... 또 새로운 스마트폰을 사면 다시 앱을 깔아야 하고...  비번도 다시 설정해야 하고, 그 많은 금융기관의 본인 인증을 다시 받아야 하고... 생각할수록 아찔합니다...


이제 점점 더 나이를 먹어가는데, 외출할 때마다 소지품 관리에 신경이 쓰입니다.


예전에 아버지가 '키카폰'을 외우시던 기억이 납니다. 외출 시에 열쇠와 신용카드, 핸드폰을 꼭 챙겨야 한다는 의식을 일깨우시던 단어였는데, 이제는 제가 키카폰을 중얼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미지: 네이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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