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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사랑이 거봉 Jan 10. 2024

평창올림픽 소회

1박 2일의 평창올림픽

내 평생에 우리나라에서 언제 또 동계올림픽을 볼 수 있겠느냐는 생각에 주말을 이용하여 콤팩트하게 실외와 실내경기를 다 보고자 진부와 강릉으로 출발하였다.


개막식의 여운을 안고 토요일 오후 청량리역에서 외국 친구 두 명을 이끌고 고속철도에 탑승하자 1시간 만에 진부역에 도착.


KTX는 편했지만 좌석은 매우 비좁았다. 게다가 남자 둘이서 외투를 입고 앉으면 꽉 끼었다.


진부역에서 셔틀버스는 5분 간격으로 자주 운행되었으며 자원봉사자들과 지역주민들의 대응은 훈련이 잘 되어 있었다.


티켓도 없이 현장 구매를 노리고 갔는데, 예상대로 현장에서 구입은 가능하였으나 가장 싼 좌석은 없고 중간급이나 비싼 좌석만 구매가 가능하였다.


좌석 확보 후, 진부에서 50년 된 부일식당을 들러 산채정식과 메밀 막걸리로 저녁식사를 마쳤다. 외국 친구들은 막걸리가 맛있다며 얼굴이 빨개지도록 건배를 외쳐댔다.


하지만 밤늦게 길게 늘어선 대열 따라 삼엄한 검색대를 간신히 통과하여 스키 점프장에 가보니 A석은 너무 춥고 차가워서 도저히 좌석에 앉지를 못한다. 입석인 B석과 아무 차이가 없고, 또 B석에서 A석을 자유로이 들락거려 통제가 전혀 이뤄지지도 않았다. 비싼 표를 구입한 의미가 전혀 없었.


야간에 보는 스키점프는 바람의 영향으로 여러 차례 중단되어 자정이 지나서야 나게 되었다.


미국 방송사 NBC의 횡포로 시차를 맞춘 건지는 모르겠지만 혹한 속에서의 한밤중 경기는 선수나 관중이나 자원봉사자나 우리 모두에게 과연 20만 원이나 주고 볼 만한 가치가 있었는지 의문이 들었다.

 

환상적인 스키점프 노멀힐은 98미터 이상을 날아가는 조인(鳥人)들의 강심장에 감탄하며 양말 두 겹을 신고 핫팩을 붙인 발이 동상에 걸리지 않았음을 감사해야 할 정도의 혹한 속에서 손이 굳어 사진도 못 찍었지만 판타스틱! 그 자체였다.


일본 선수들이 여럿 결선에 진출한 것에 비해 우리 선수는 1명만이 점프했고 성적도 저조했다. 하정우의 '국가대표' 영화를 떠올리며 기대하면서 보았지만, 우리나라는 저변확대가 급선무로 보였다.


자정을 넘어 진부에서 강릉으로 이동하여 간단히 요기를 한 후 숙소를 찾아 핫팩을 꼭 손에 쥐고 잠을 청했다. 

올림픽 특수로 강릉 일대의 일반 숙박업소가 모조리 선예약이 되어 방이 없었기에, 대회 직전에야 가까스로 양해를 구하고 빌린 처가 쪽 친척집을 숙소로 사용했다. 처 사촌동생 4인가족은 친정에 가서 자고, 우리에게 아파트 전체를 사용하도록 배려해 줬으니 큰 신세를 지고 말았다. 역시 강원도 처가의 인심은 알아줘야 한다.


외국인 친구들은 한국 가정의 친절에 경의를 표하고, 고맙다는 편지를 자필로 써주었다. 호텔비에 준하는 숙박비와 애들 용돈을 봉투에 넣어두고 나왔다.


일요일 아침에는 강릉 아이스아레나로 향하여 피겨스케이팅을 보러 갔다.


팀 이벤트는 단체전이어서 아이스댄스 여자 싱글쇼트와 페어프리였는데 현장 구매로는 일반석은 없고 35만 원이나 55만 원짜리가 있었다. 너무 비싸서 표를 살까 말까 망설였지만 친구들도 지금까지 피겨를 현장에서 직접 본 적이 없고, 나 역시 앞으로도 이런 경험은 쉽지 않으리라 예상하여, '그래 평생에 한 번이지!'라는 생각에 비자카드로 질러버렸다. 그런데 그 비싼 티켓을 사서 들어가 보니 일반석은 몇 자리 배정되어 있지도 않았다.


춥지 않은 실내경기이자 고급스럽고 우아한 피겨는 순식간에 나를 신분상승시켰다. 

러시아와 미국, 캐나다, 이태리, 일본의 응원 함성은 정말 열정적이었다. 

우아한 자태를 뽐내는 선수들의 율동은 차라리 학(鶴)의 향연으로 느껴졌다.


얼마나 운동신경이 좋고 연습을 많이 했으면 다리가 한일자로 천장을 향하고, 몸이 꽈배기가 되고, 공중에서 몇 바퀴나 회전하고도 사뿐히 얼음판에 내려앉는지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칼날 스케이트화가 얼음을 긁어대는 서걱서걱하는 소리가 지금도 귓전을 스친다.


여자 피겨 세계 1위 러시아 선수의 연기는 역시나 세계 최고였다.

점프의 높이, 회전수, 착지, 예술성...

김연아의 시대에 뛰었던 선수들도 눈에 띄어 연아에 대한 갈증이 느껴졌지만 4년 뒤의 최다빈을 기대해 본다.


인간의 한계는 과연 어디까지인가?

담력, 강심장, 유연성, 운동신경, 섬세함, 예술표현력, 눈부신 점프와 사뿐한 착지까지... 스포츠와 예술의 조화로움 가득한 장면에 한시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 모든 능력을 다 갖춘 국가대표 정예끼리의 대결은 인류의 대잔치이고 축제이자 거대한 지구촌 운동회였다.


우리 어릴 때의 운동회가 동네 사람들이 다 모여 함께 어울리는 한마당이었듯, 올림픽 또한 그것의 글로벌 버전에 다름 아니었다. 


북한 응원단을 보지 못해 못내 아쉬웠지만, 실내외 경기를 다 경험해 보았다는 자긍심이 충만하였다.


2년 뒤 2020년에는 도쿄올림픽, 또 2년 뒤 2022년에는 북경 동계올림픽이다.

바야흐로 극동아시아의 저력이 느껴지는 스몰 글로벌(Small Global) 시대가 왔다고나 할까.


그 와중에 용하게 버티고 있는 대한민국은 한다면 해내고야 마는 민족이고, 막상 닥치면 더 잘하는 우수한 민족임을 실감하였다.


잘 차려진 잔치를 빛내고 있는 자원봉사자들의 미소와 희생정신은 나를 감동시켰다. 혹한임에도 열심히 봉사하는 그들을 만날 때마다 '정말 수고하십니다!'라는 말이 입에서 절로 나왔다.


기회가 왔으니 강원도로 뛰어가라~

보고픈 경기를 현장 구매로도 볼 수 있다.

그 순간 평생 잊지 못할 감동의 장면에 주인공이 되어 있을 것이다.

당신의 열정에 불을 붙이시길~~~


- 2018년 2월 12일


*이미지: 네이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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