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은 이미 할아버지가 되어 있다. 벌써 손자손녀들과 놀이터에 나가거나, 아이들의 재롱을 영상으로 찍어 자랑하는 모습은 낯설면서도 부러움의 대상이다.
“너는 손자를 언제쯤 볼 수 있겠니?” 친구들의 물음에 나는 그저 멋쩍은 웃음으로 답할 수밖에 없다. 내 자녀들은 결혼은커녕 이성교제조차 관심이 없다. 그들에게 결혼 이야기를 꺼내면 마치 다른 시대의 유물처럼 나를 바라본다.
나는 과연 잘못된 기대를 품고 있는 것일까? 생물학적으로 할아버지가 되고 싶은 마음은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유전자의 연속성, 가문의 계보, 그리고 더 넓게는 삶의 또 다른 순환을 보고 싶어 하는 욕구는 본능적인 바람이다. 하지만 요즘 젊은 세대에게 결혼은 더 이상 필수가 아니다. 그들에게 결혼은 선택의 영역이며, 때로는 부담이자 거부하고 싶은 전통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아이들이 왜 결혼에 관심이 없는지 물어보면 답은 대개 비슷하다.
“결혼하면 경제적으로 너무 힘들 것 같아요.” “자유롭게 살고 싶어요.”
혹은 “굳이 해야 할 이유가 없잖아요.”
그들의 말은 이해가 되면서도 내 입장에서는 아쉽다. 나는 결혼이 단순히 책임과 의무만이 아니라, 삶을 함께 나누는 행복한 동반자가 될 수 있음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하면, 돌아오는 답은 “아빠 세대는 그렇겠지만, 요즘은 달라요”라는 말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아이들에게 억지로 결혼을 강요할 수도 없다. 나의 바람이 그들의 삶의 방식과 충돌해서는 안 된다. 부모로서 나는 그들의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서 올라오는 이 답답함은 어쩔 수가 없다. 친구들이 손자 자랑을 할 때마다 나도 모르게 부러움이 가슴 깊이 밀려온다.
하지만 이제 생각을 조금 바꿔보려 한다. 손자가 없는 내 삶이 반드시 불완전한 것은 아니다. 아이들이 행복하다면, 그 자체로 나의 삶도 행복한 것이 아닐까? 물론, 여전히 아이들이 누군가를 만나 사랑하고, 새로운 가족을 꾸리기를 바란다. 그것이 그들 스스로 선택한 길이라면, 그때의 행복은 더 크고 진정한 것이 될 것이다.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 단순히 생물학적 할아버지가 되는 것인지도 돌아보았다. 아이들이 결혼을 하지 않더라도, 나는 그들과의 관계 속에서 이미 부모로서 충분히 사랑받고 있다. 그 사랑과 유대가 이어지고 있다면, 손자가 없더라도 나의 삶은 여전히 풍요롭다.
아이들에게 결혼의 필요성을 설교하는 대신, 그들이 각자 행복한 길을 찾도록 지지하려 한다. 그리고 만약 그 길에 사랑과 결혼이 있다면 그저 감사할 것이다. 언젠가 손자를 바라보며 미소 짓는 날이 올지도 모르지만, 그날이 오지 않더라도 괜찮다. 결국, 중요한 것은 아이들의 삶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생물학적으로 할아버지가 되고 싶은 마음은 자연스럽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만나는 꼬마들이 너무 귀여워서 안아주고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나 삶은 항상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이제는 아이들의 선택을 존중하며, 지금 가진 것에 감사하는 법을 배워야 할 시간이다. 아이들이 나름의 행복을 찾아가고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내가 바라는 가장 큰 기쁨이 아닐까.
*이미지: 네이버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