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Km의 미래를 걷다!
EXPO 2025 오사카에 다녀오다!
딸 만나러 일본에 간 김에 하루 시간을 내어 오사카 만국박람회(EXPO)에 가봤다. 뜨거운 5월 하순, 나는 거대한 미래의 사회에 다녀왔다. 그 화려하고 두근거리는 구조물 속을 걸었다.
내가 방문한 목적은, 다양한 국가의 전시관을 둘러보며 미래의 생활과 새로운 기술을 즐기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가까운 일본에서 개최되는 점도 작용했다.
방문 전 예약 시스템은 비교적 괜찮았으나, 1 사람이 2명 몫으로 돈을 지불하고 QR코드를 발행했는데 검색대에서 1명은 제지당했다. 또 후덥지근한 날씨가 아침부터 힘들게 해서 장마철이나 한여름 방문객들은 일사병이 우려되었다.
하루 종일 걷고 사진도 많이 찍었다. 한 컷으로는 다 담기지 않는 풍경, 몇 초마다 바뀌는 화면, 그리고 움직이는 사람들이 인상에 남았다.
셔틀버스를 운행하는 서문 입구로 가자 이른 아침부터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전 세계에서 모여든 사람들로 인산인해였다. 흡사 거대한 인종전시장을 방불케 했다.
공항과 같은 수준의 검색대를 지나자마자 눈에 들어온 건 거대하고 촘촘한 목조 구조물, 회장을 둘러싼 2Km의 '그랜드 링(Ring)’이었다.
전시관들을 원형 링으로 연결한 이 구조물은 사람들을 유유히 그 안으로 이끌었다. 마치 미래의 숲길을 산책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링을 둘러싼 잘 정비된 인공 화단들은 그 길을 더욱 평화롭게 만들었다. 강철도, 유리도 아닌 나무로 만든 이 구조물은 미래가 반드시 차갑지만은 않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듯했다. 철저히 일본스러웠다.
링을 따라 걷다가 내려가서 보는 인기 있는 파빌리온(전시관) 앞에는 기본 30분 이상의 대기 줄이 있었다. 자원봉사자들은 땀을 뻘뻘 흘려가며 줄 세우기에 바빴다. 어떤 곳은 1시간 반도 넘게 기다려야 했기에 음료수와 양산은 필수품이었다. 물론 모자도 필요하였고, 거기에 인내력은 필수였다. 간혹 국적을 불문한 새치기 얌체족도 눈에 띄었다.
일본의 시그니처 파빌리온에서는 생명을 주제로 미래와 모험, 증거, 놀이터 등이 있어서 방문하고자 했으나 시간상 들어가 보지 못했다.
자국의 일본관이나 기업관 같이 인기 있는 곳들은 사전예약제 시스템이 적용되어 들어가기가 어려웠고 현장에서 줄이 짧은 헬스케어 파빌리온만 입장하였다.
국가 전시관에서는 미국관의 경우 대기 시간만 90분이어서 아쉽게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평일이었음에도 대부분의 전시관은 현장에서 줄 서고 인내심으로 만나는 시스템이었다. 관람 시간은 평균 15~20분. 입장하는 데 진이 다 빠지는 30도를 웃도는 더위와 습한 날씨 속에 체력은 순식간에 바닥을 드러냈다. 그럼에도 기억에 남는 전시관들이 꽤나 있었다.
중동의 카타르와 아랍에미리트 전시관은 ‘오일 머니’로 치장한 흔적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 속에는 사막을 넘은 자연과 환경에 대한 철학이 스며있었다. 사막의 이미지를 걷어낸 그들의 현재는 생각보다 더 푸르고 진지했다.
iPS 재생세포를 다룬 헬스케어관, 그리고 미래의 로봇 기술을 보여주는 첨단관, 적십자사와 같은 국제기관관도 눈에 띄었다. 일본은 이 박람회를 통해 자국의 산업과 기술을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아프리카나 섬 제도 국가 등 약소국을 묶어 하나의 파빌리온으로 곳곳에 조성한 Commons관도 눈길을 끌었다. 인원이 많은 단체 그룹은 대기 시간이 짧은 그곳에 관람객을 풀어놓았다.
유럽과 아시아, 북미의 전시관 중에는 외관 자체가 하나의 예술작품 같은 곳이 많았다. 안에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 외관만 바라봐도 예술성이 느껴졌다.
일본 애니메이션을 테마로 한 건담(Gundam) 관은 거대 로봇과 기술이 어떻게 현실과 연결되는지를 상징처럼 제시하고 있었다.
박람회를 걸으면서 느낀 건, ‘미래’는 누구에게나 정답이 다르다는 것이었다. 각국은 자신들이 꿈꾸는 내일을 전시관 하나에 담았고, 관람객들은 그것을 잠시나마 들여다보는 기회를 얻고 있었다. 분명한 공통점은 그 누구도 과거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는 점이다.
무더위와 장시간 기다림, 인산인해 속에서도 기억에 남는 장면들이 있었다. 그 기억 속에는 낯설고 새롭게 다가온 ‘미래의 조각’들이 들어 있었다. 기술은 외형과 스크린 속에만 있지 않았다. 현대적으로 조성된 조각상과 구조물, 친환경 휴식터, 곳곳에 심어진 나무와 걷는 길 위에 있었다.
링 위를 걷다가 맘에 드는 전시관으로 내려가서 둘러보니 금세 만 오천보를 넘어섰다. 그만큼 미래를 다녀왔다고나 할까.
나는, 세계가 꿈꾸는 내일의 편린들을 하나씩 밟고 지나온 셈이다.
'오사카 EXPO 2025'에서 링 위를 걷다 보면 어느 순간, 다른 세계가 나를 향해 말을 걸기 시작한다. 언어도 다르고 색감도 다르지만, 그 안에는 공통된 시선이 있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고 있는가?"
그 질문 앞에서 나는 두 개의 파빌리온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하나는 프랑스, 하나는 한국. 마주 선 두 창문 같았다.
프랑스관은 기다림으로 시작되었다.
30분이 넘는 줄. 뙤약볕 아래에서 천천히 전진하며, 사람들은 무언가를 기대하고 있었다. 입구엔 새하얀 나신의 남녀 조각상이 서 있었다. 마치 고전과 현대가 서로 마주 보고 있는 듯한 모습. 안으로 들어서자 공간은 한순간에 특유의 예술적 기운으로 가득 찼다.
로댕의 손을 테마로 하여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하얀 조각품이 가장 먼저 시선을 끌었다. 무거운 돌의 표면에 감정이 깃들어 있는 듯했다. 그 조각은 단순히 과거를 복원한 것이 아니라 미래를 향해 뻗어가는 느낌을 주었다.
전시장은 세계적인 브랜드인 루이비통과 디오르가 점령하고 있었다. 이들은 단순한 명품을 넘어 프랑스가 가진 ‘정제된 기술력’의 정점이었다. 테크놀로지와 디자인, 전통과 실험, 그 모호한 경계를 예술적으로 표현해 냈다.
무대에서 펼친 공연 영상도 인상 깊었다. 일본 여성 무용수와 프랑스 남성 무용수 두 명이 어우러져 하나의 움직임을 만들고 있었다. 세 사람은 말없이 몸으로 이야기를 풀어 나갔다. 국경도, 언어도 없는 몸짓이었다.
와인과 고성(古城) 등, 프랑스를 상징하는 것들을 현란하게 표현한 동영상도 눈길을 끌었다.
프랑스관은 그런 곳이었다. 기술을 전면에 내세우기보다는, 그것이 예술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는 형태. 정답을 설명하지 않고, 감각으로 느끼게 해주는 방식이랄까.
한국관은 달랐다. 더 선명했고, 더 역동적이었다.
외부 스크린부터 강렬한 에너지를 내뿜었다.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영상, 선 굵은 색감, 그리고 드론처럼 날아오르는 화면 속 공간들. 한국은 어디에서 왔고, 지금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명확하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경복궁, 전주 한옥마을, 안동 하회마을, 제주 성산 일출봉... 전통이 디지털 위에서 움직이고, 살아 숨 쉬었다. 그것은 단순한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미래의 자산이었다. 한국은 이 박람회를 통해 ‘기술로 연결된 유산’을 보여주고 있었다. 전통은 멈춰 있는 것이 아니라 재생산되고 있었고, 재해석되고 있었다.
관람객들은 50분 대기 줄 앞에서 멈칫하다가 한국 전시관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곤 했다. 스크린 앞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몰입할 수 있었고, 흡인력이 있었다. 그 앞에서 동영상이나 사진을 찍고, 고개를 들어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한국관은 전통과 현재, 미래를 '연결'이라는 키워드로 풀어낸 듯했다. 기술은 그것을 가능하게 한 도구였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계에서, 흔들리지 않는 정체성을 말할 수 있는 힘. 그것이 스크린 위의 한국이었다.
두 전시관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미래를 이야기했다.
프랑스는 ‘예술적 느낌’을 전했고, 한국은 ‘힘의 선언’을 했다.
두 나라 모두 기술을 이야기하면서도, 그 중심에는 사람을 놓고 있었다.
오사카의 그 뜨거운 하루 속에서, 나는 두 개의 창문 앞에 섰다.
그리고 그 창 너머로, 두 가지 미래의 얼굴을 잠시 마주했다.
만국박람회는, 세계를 만나는 시간이다.
일생을 통해 앞으로 몇 번이나 더 가볼 수 있을까?
어릴 적엔 지리책이나 지구본을 돌리며 세계를 상상하곤 했다. 각 나라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고, 어떤 문화가 있을까 궁금했다. 그러던 중 ‘만국박람회’를 알게 되었다. 전 세계가 한자리에 모여 기술, 예술, 문화를 나누는 축제라니, 그 자체가 내가 꿈꾸던 세계였다. 단체 어린이나 학생 손님들이 유난히도 눈에 띈 이유였을 것이다.
만국박람회는 단순한 전시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함께 만드는 미래의 그림이다. 서로 다른 나라가 각자의 이야기와 꿈을 들고 모여와, 한 공간에서 공감과 협력을 배운다.
2030년 부산에서 열릴 엑스포를 기대하며, 나는 다시 책상 위의 지구본을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