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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락 맞은 나무와 운석, 그리고 한 장인

淸湖 이야기

by 글사랑이 조동표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청호(淸湖)’라는 호를 쓰는 이가 있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벼락 맞은 500년 된 대추나무(霹棗木: 벽조목) 원목을 많이 보유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그 나무는 단순한 재료가 아니다. 하늘의 섬광을 받아 살아남은 나무, 세월의 풍화를 견딘 생명력의 상징이다. 청호는 그것을 바탕으로 펜던트를 만들고, 때로는 벽조목 도장을 빚어내는 핸드메이드 작가다.


그의 작업은 단순한 수공예가 아니다. 그는 동시에 희귀 운석 컬렉터이며, 나무와 운석의 결합을 추구하는 선구자다. 하늘에서 떨어진 별의 조각과, 하늘의 벼락을 견딘 나무가 그의 손끝에서 만나 하나의 작품으로 태어난다. 모든 과정은 철저히 수작업으로 이루어지고, 그 안에는 장인의 신념이 녹아 있다.


청호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시간의 무게와 대자연의 신비가 한데 어우러진다. 그는 1997년부터 유색석(有色石)에 깊은 관심을 두었고, 중국에서 황제가 썼다는 황화리(黃花梨)까지 수집했다고 한다. 천 년에서 삼천 년을 땅속에 묻혀 있던 나무, 중국 해남도의 황화리 음침목같은 최고급 목재는 그가 특별히 애지중지하는 보물이다. 일본의 진다이목(神代木)처럼 화산재와 흙 속에 천 년 이상 묻혔다가 흑갈색으로 변한 나무도 그의 손을 거쳐 새 생명을 얻는다. 그는 이런 세월을 품은 나무를 찾아내고, 모으고, 지켜내는 사람이다.


흥미로운 것은 그가 전해준 나무 이야기에 담긴 과학과 신비다. 왜 대추나무에 벼락이 잘 떨어지느냐 묻자, 그는 대추나무에는 철분이 다른 나무보다 많이 함유되어 있어 벼락이 치기 쉽다고 했다. 실제로 벼락을 잘 맞는 나무는 대추나무 외에도 느티나무, 복숭아나무, 은행나무, 팽나무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대추나무가 으뜸이라 한다. 전라남도 나주 읍성의 목사 고택 앞에도 500년 된 벼락 맞은 팽나무가 지금도 서 있는데, 그 앞에서 소원을 비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다. 예로부터 벼락 맞은 나무는 뜻밖의 행운을 불러온다고 믿어왔기 때문이다.


청호는 바로 이 벼락 맞은 대추나무와 희귀 운석을 결합해 진귀한 도장을 만든다. 나무에 새겨진 벼락의 흔적과, 우주에서 날아온 운석의 질감이 어우러진 도장은 세상에 단 하나뿐인 부적 같은 작품이다.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왜 사람들이 이 특별한 도장에 마음을 빼앗기는지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단순히 물건이 아니라, 하늘과 땅과 시간을 품은 영적인 상징이기 때문이다.


청호와의 대화는 언제나 내게 호기심과 경외심을 동시에 안겨준다. 하늘에서 내려온 벼락, 하늘에서 떨어진 운석, 그리고 그 둘을 연결하는 한 장인의 손길. 그 속에는 우리가 쉽게 다가갈 수 없는 신비와, 오직 손끝으로만 이끌어낼 수 있는 진정성이 담겨 있다.


왜 벼락 맞은 나무가 행운을 주는가? 문헌을 찾아보았더니 매우 흥미로운 내용들이 있었다.


벼락은 인간이 거스를 수 없는 하늘의 힘이다. 눈부신 섬광과 굉음은 두려움과 동시에 경외심을 불러일으킨다. 그런데 그 벼락을 맞고도 꿋꿋이 살아남은 나무는 단순한 나무가 아니다. 그것은 하늘의 시험을 이겨낸 존재이고, 다시 살아난 생명력 그 자체다.


옛사람들은 벼락 맞은 나무를 집안의 수호목으로 삼았다. 죽을 고비를 넘어 다시 살아난 그 기운이, 집안에 장수와 번영을 가져온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전통 속에서 벼락 맞은 나무는 단순한 재료가 아니라 행운과 보호의 상징이었다.


도장 역시 단순한 생활 도구가 아니다. 도장은 내 이름을 새기고, 내 삶을 각인하는 특별한 상징이다. 벼락 맞은 나무와 도장이 만날 때, 그 의미는 배가된다. 하늘의 힘을 이겨낸 나무를 깎아 만든 도장은 내 인생에 행운을 새기는 유일무이한 부적이 된다.


이것이 바로 ‘벼락 맞은 나무 도장’을 만드는 이유일 것이다.

그것은 세상에 똑같은 것이 하나도 없는, 하늘이 선택한 원재료이기 때문이다. 나무에 남겨진 갈라짐과 옹이, 불꽃이 스쳐간 자국은 모두 자연이 새긴 흔적이다. 청호는 그 흔적 위에 고객의 이름을 정성스레 각인한다.


하나의 도장은 곧 하나의 이야기다.

누군가에게는 새 출발을 기원하는 선물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오랜 노력의 결실을 축하하는 상징이 된다. 또 누군가에게는 평생을 지켜줄 행운의 부적이 된다.


벼락 맞은 나무가 행운을 주는 까닭은 단순한 미신이 아니라,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는 생명력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그 힘을 내 이름에 새긴다면, 내 삶 또한 굳건해질 것이라 믿는다.


하늘이 선택한 나무, 그 위에 나만의 이름을 새기다.

그 가치를 담은 이름, 청호인(淸湖印)이다.


나는 오늘도 그의 작품을 떠올린다. 벼락 맞은 나무와 운석이 만나 새겨진 이름, 그것은 단순한 도장이 아니라 삶을 지켜주는 행운의 각인이다.


경기도의 벼락 맞은 대추나무
어마어마한 크기의 대추나무
대추나무와 잘라낸 단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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