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 아침
오늘은 광복절이다.
1945년 8월 15일, 조국이 해방을 맞이한 그날로부터 올해로 꼭 80년이 되는 뜻깊은 날이다.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는 일주일 전부터 “광복절을 맞아 태극기를 답시다”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나는 예전부터 국경일이면 어김없이 태극기를 달아왔다.
그것이 특별히 남들보다 애국심이 뜨거워서라기보다, 국민이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태극기는 동사무소나 온라인에서 만 원도 안 되는 값으로 쉽게 구할 수 있다.
아침 일찍 베란다에 태극기를 달고, 문득 바깥을 둘러보았다.
시간은 벌써 아침 9시를 훌쩍 넘겼지만, 내 시야에 태극기를 단 집은 한 동에 한두 곳뿐이었다.
우리 집과 맞은편 동에는 단 한 집이 전부였다.
나의 태극기 게양은 요즘 자주 거론되는 ‘태극기 부대’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나는 보수도, 진보도 아닌 그저 대한민국의 한 시민일 뿐이다.
국민으로서 자랑스럽게 태극기를 단 것인데, 이렇게 드문 풍경 속에서 오히려 내가 특별한 사람처럼 보이는 것 같았다.
‘손가락이 여섯 개인 곳에 가면, 다섯 개인 사람이 이상하게 보인다’는 말이 있다.
아파트 단지를 둘러보니, 태극기를 단 집이 손에 꼽을 정도였다.
대다수가 달지 않으니, 단 사람이 오히려 특이하게 보이는 역설.
언제부터 이런 풍조가 자리 잡게 되었을까.
해외에 나가면, 낯선 거리에서 태극기를 발견하는 순간 묘한 뭉클함이 올라온다.
없던 애국심도 솟아오른다.
그런데 정작 국내에서는, 태극기를 대하는 마음이 어쩐지 조심스러워졌다.
어떤 정치적 색깔이 덧씌워지면서, 태극기조차 불필요한 오해를 살 수 있는 세상이 된 건 아닐까.
광복 80주년의 아침, 나는 옆 동과 뒷 동을 바라보다가 잠시 멍해졌다.
태극기는 그저 깃발 한 장이 아니다.
그 속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되찾은 자유, 그리고 우리가 누리는 일상의 근거가 담겨 있다.
그렇기에 오늘, 나는 여전히 베란다에 태극기를 달았다.
누군가는 시선 한 번 주지 않겠지만, 그래도 믿는다.
이 깃발이 바람에 펄럭이는 모습이 누군가의 마음을 두드릴 수 있다고.
우리 모두, 오늘만큼은 태극기를 달아보면 어떨까.
그 깃발은 단순한 천 조각이 아니라, 바람에 스치는 역사이자 우리 가슴속에 흐르는 피와 같다.
아침 햇살을 받아 펄럭이는 태극기를 바라보다 보면,
누군가의 희생 덕분에 우리가 웃고 걷고 숨 쉴 수 있다는 사실이
조용히, 그러나 깊게 마음속에 내려앉는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우리 창가에 작은 바람결과 함께 그 깃발을 올려보자.
그 순간, 이 땅에 태어난 의미가 조금은 더 선명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