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래자연휴양림, 곶자왈, 비, 그리고 오래된 우정의 결
아침 일찍 친구 넷은 골프장으로 향했고, 나와 다른 친구 둘은 숲으로 걸음을 옮겼다.
교래자연휴양림에서는 마침 곶자왈(화산 지대에 형성된 숲) 명품숲길 걷기 행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이런 우연은 여행에서만 주어지는 작은 선물 같다.
우리는 오름산책로 8km, 이어서 생태관찰로 3km에 도전했다. 비가 내렸고, 숲길은 촉촉하다 못해 미끄러웠다. 위험한 돌길을 걷기에는 너무 힘들어, 오름길 중간에서 돌아 내려왔다. 곧이어 생태관찰로는 완주했다,
비 젖은 곶자왈은 더 선명했다.
젖은 현무암, 숨을 머금은 양치식물, 낮게 깔린 안개가 서로 스며들어, 걷는 것이 아니라 제주 속으로 스며드는 느낌이었다.
완주 지점에서 찍은 인증숏 한 장으로 받은 여행용품 세트와 볼펜.
사소하지만 뿌듯한 기념품은
“오늘 잘 걸었다”는 숲의 작은 도장 같았다.
- 교래퐁낭, 그리고 제주만의 맛
골프를 마친 일행과 교래퐁낭에서 합류했다. 정식 한 상, 멜젓에 찍어 먹는 수육.
말은 많지 않았지만 맛있다는 감탄, 웃음 몇 번, 숟가락 소리만으로 충분했다.
후식은 여누카페의 라테였다.
키피 잔을 앞에 두고 우리는 내년 계획을 꺼냈다.
“내년에도 제주 '별다락', 연세(年稅)로 가자.”
소수의 이견은 있었지만 제주의 집은 점점 ‘숙소’가 아니라 ‘우리의 세컨드 하우스 별장’이 되어가고 있었다.
늙어가는 대신, 우리는 여기서 계절을 덧대어 가기로 했다.
- 저녁의 온도
어둠이 내리고 숙소 라운지에 불이 들어오자, 하루의 진짜 여행이 시작됐다.
205호 형님 부부, 제주에 사는 친구 W부부, 그리고 우리들. 식탁은 풍성하게 채워졌다.
P가 이틀 전 낚아 올린 고등어와 잡어는 매운탕조림이 되었고, '용수산회'의 광어와 도다리는 바다를 고스란히 옮겨놓았다.
잔이 오가고, 젓가락도 바빴다.
회보다 싱싱한 건, 그 위에 얹힌 서로의 안부와 정담이었다.
밤이 더 깊자 우리는 방 안으로 자리를 옮겼다.
화제는 자연스럽게 재테크, 건강, 미래, 그리고 농담과 추억의 경계를 오갔다.
정답도 결론도 없는 대화는 늘 늦게 끝난다.
그게 바로 목적이니까.
- 숲을 걸은 건 우리였지만, 채워진 건 인연이었다
곶자왈의 돌길은 미끄러웠지만, 우정의 길은 미끄러지지 않았다.
어쩌면 우리는 오름을 오른 것이 아니라 시간을 복기한 것이고, 멜젓에 수육을 찍어 먹은 것이 아니라 서로의 안부를 확인한 것인지도 모른다.
내년에 또 오자고 말한 것은 제주에 대한 약속이 아니라 우리 서로에게 한 약속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약속 하나로 오늘도 우리는 충분히 젊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