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함과의 이별 앞에서 멈춰 서는 이유
시계 하나를 고칠 것인가, 보내줄 것인가
- 익숙함과의 이별 앞에서 멈춰 서는 이유
유럽 여행 중에 만난 스위스의 신선한 공기, 그리고 그 공기와 함께 내 손목에 채워졌던 시계 하나.
시간은 흐르고, 어느 날 그 시계가 멈춰 섰다.
그런데 문제는 시계가 아니라, 그 앞에서 멈춰 선 나였다.
1. 멈춘 것은 시계일까, 나의 마음일까
20년 전 유럽 여행의 설렘은 그 시계와 함께였다.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물건은 쓰다가 보내주면 그뿐”이라고.
하지만 내겐 이 시계가 단순한 물건이 아니었다.
젊었던 시간의 증인, 그 시절의 나를 붙잡고 있는 작은 고리 같은 존재였다.
그래서일까.
시계방에서 “20만 원이면 고쳐요”라는 말을 듣고도 나는 단순히 수리비를 계산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 말 뒤에 붙어 있지 않은 질문.
“그 시절을 다시 이어갈 건가요?"를 함께 듣고 있었다.
2. 익숙함과의 이별이 가장 어려운 이유
시계는 고장이 났지만, 문자반(文字盤)도 깨끗하고 외관은 멀쩡하다.
다만 세월과 함께 낡아진 것은 시곗줄과 태엽, 그리고 내 마음의 망설임이다.
버리는 것이 맞을까?
아니면 고쳐서 시간의 흐름을 더 이어가는 것이 맞을까?
이 두 질문 사이를 오가는 마음은 사실 시계가 아니라, 내가 익숙한 것과 어떻게 이별하는가에 대한 고민이다.
어떤 이별은 상대가 먼저 떠나지만, 어떤 이별은 나의 ‘작은 결단’을 기다리고 있다.
이 시계는 지금, 그 결단 앞에서 조용히 멈춰 서있다.
그리고 나 역시 그 옆에서 멈춰 섰다.
3. 고쳐 쓰는 일은 시간을 복원하는 일
수리비가 20만 원이라 하니, 시곗줄까지 바꾸면 30만 원은 성큼 넘을 터.
문득 고민을 하다가 멈추었다.
“내가 고치려는 것은 시계인가, 그 시절의 나인가?”
만약 이 시계를 고친다면, 단순히 실용을 위한 선택이 아니다.
그건 '그때의 나를 담아두었던 서랍’을 한번 더 열어보는 일일 것이다.
반대로 버린다면?
그건 나와 함께 나이 들어온 물건에게 “여기까지 함께 해줘서 고맙다”라고 말할 줄 아는 용기일 것이다.
둘 다 의미가 있다.
둘 다 옳고, 둘 다 나름의 정답이다.
문제는 내가 어느 쪽의 시간에 마음을 두고 있는가일 것이다.
4.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해도 괜찮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그 시계를 서랍 속에 넣어 두었다.
그것은 미루기의 습관이 아니라, 내 마음이 충분히 ‘이별을 결정할 만큼 성숙해지길 기다리는 시간’이라 생각한다.
언젠가 나는 결정할 것이다.
고쳐서 다시 찰지, 아니면 고이 보내줄지.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그 선택의 순간이 오기 전까지, 그 시계는 단지 멈춰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마음이 한 번 더 깊어지는 시간을 만들어 주고 있다는 것.
시계가 멈춰준 덕분에 깨달았다.
시계는 멈췄지만, 그 멈춤 덕분에 오히려 더 많은 시간을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을.
익숙한 것과의 이별은 늘 어렵다.
그러나 누군가와, 혹은 어떤 물건과 조용히 작별을 고민하는 그 순간조차 우리 인생에서는 소중한 배움이 된다.
아마도 그 시계는, 마지막까지 내게 시간의 의미를 가르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멈춰 서서, 나를 돌아보게 만드는 방식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