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의 나이를 먹어가며
마음의 욕심
- 욕심의 나이를 먹어가며
나이는 먹는데 마음의 욕심은 나이를 거꾸로 먹는다.
좁아지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더 깊어지는 중이다.
젊을 때의 욕심은 단순했다.
먹고, 자고, 사랑하는 본능의 세계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욕심은 형태를 바꾸기 시작한다.
몸의 욕망은 잦아들지만, 마음의 욕심은 오히려 무겁게 가라앉는다.
이름을 남기고 싶다는 마음,
내가 누군가의 기억 속에 오래 머물고 싶다는 바람,
그리고 아직 완전히 버리지 못한 돈과 힘의 그림자까지.
욕심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다른 얼굴로 성숙해갈뿐이다.
1. 젊은 날의 욕심은 단순하고, 순수했다
한때 나는 욕망을 세 가지로 배웠다.
식욕, 성욕, 수면욕.
살아 있는 존재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매우 솔직하고 물리적인 욕망들이다.
그때의 욕심은 가볍고 투명했다.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고, 뜨거운 마음이 일면 사랑했다.
어쩌면 욕심이라는 단어마저 어울리지 않을 만큼 단순하고 인간적이었다.
2. 나이가 들면 욕심은 몸에서 마음으로 자리를 옮긴다
시간이 흐르며 몸의 욕망은 잦아들지만 대신 마음의 욕심이 고개를 쳐든다.
“나는 어떤 이름으로 기억될까?”
“나는 무엇을 남기고 떠날 수 있을까?”
욕심은 이제 생존이 아니라 의미를 향한 갈망으로 바뀐다.
무엇을 더 갖고 싶은가가 아니라,
"나는 어떤 흔적을 남기고 싶은가"라는 질문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사람은 죽으면 이름을 남긴다고 했던가.
그래서인지 우리는 중년에 이르러 어쩔 수 없이 ‘이름’이라는 무거운 욕망을 어루만지게 된다.
그 이름이 명예이든, 성취이든, 혹은 누군가의 기억이든 말이다.
3. 돈에 대한 욕심도 여전히 버티고 있다
솔직히 말해, 나는 아직 돈의 욕심도 버리지 못했다.
돈은 힘이고 자유이며, 때로는 보호막이 되기도 한다.
나이 든다는 것은 욕심을 내려놓는 일이라고 말하지만 현실에서는 쉽지 않다.
그러나 예전처럼 ‘더 벌어야 한다’가 아니다.
대신 이렇게 바뀌었다.
“돈이 있어야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지속할 수 있다.”
“돈이 있어야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
욕심의 형태가 욕망에서 역할로 옮겨간 셈이다.
이 또한 나이의 변화가 만들어 낸 마음의 이동일 것이다.
4. 이름을 남기고 싶은 마음, 그 은근하고도 오래된 욕심
나이가 들면 명예는 욕심이 아니라 어떤 인간적 욕구에 가깝게 느껴진다.
누군가의 기억 속에,
누군가의 말속에,
혹은 사이버 공간 어딘가에라도,
내 이름의 작은 조각이 남기를 바라는 마음.
이 욕심은 인정욕구의 연장선일 수도 있고,
어쩌면 존재가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는 인간 본연의 본능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모두 어딘가에 기록되고 싶어 한다.
누군가에게 의미 있었던 사람, 무언가를 이루어낸 사람으로 남아 있고 싶어 한다.
사이버상의 유명인으로 회자되고 싶은 마음조차 그 본질은 같지 않을까.
“나는 이 세상에 있었다”는 작고도 강한 선언.
- 욕심은 버릴 대상이 아니라 이해해야 할 존재다
욕심을 버리라는 말은 쉽게 들리지만 살아보니 욕심은 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버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의미로 다시 정리되는 것이다.
젊을 때의 욕심이 나를 움직였다면, 지금의 욕심은 나를 돌아보게 한다.
어떤 욕심은 내려놓아야 하고,
어떤 욕심은 정제해야 하며,
어떤 욕심은 더 깊은 가치로 승화되어야 한다.
욕심을 버리는 것이 인생의 해답이 아니라,
욕심을 이해하는 것이 인생의 성숙이다.
오늘도 나는 욕심을 들여다본다.
그 속에 아직도 나를 불러내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다.
*이미지: 구글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