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이 약해지고 인생도 무뎌졌다
설레지 않는 송년회에 대하여
- 술이 약해지고 인생도 무뎌졌다
12월 들어서 오늘까지 송년 모임이라는 명목으로 꽤 성실하게 돌아다녔다.
매주 3일은 송년회 자리였다.
직장인 시절에는 하루도 빠짐없이 모임이 있었는데 이제 반 이하로 줄어든 셈이다.
그래도 이쯤 되면 모임이 아니라 체력 테스트에 가깝다.
문제는 술이 아니라 몸이 문제다.
분명 똑같은 소주인데 예전에는 추억을 남겼지만 요즘은 숙취를 남긴다.
몸이 말한다.
“이제 그만 좀 마셔대라.”
주량도 현저히 줄었다.
송년회 자리에 앉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근데... 이거 왜 하고 있는 거지?’
사람들은 반갑고 분위기도 평화로운데 마음이 전혀 설레지 않는다.
예전 같았으면 “야, 오랜만이다!”가 먼저 나왔을 텐데, 이제는 “언제 끝나지?”가 먼저 떠오른다.
웃기는 건 집에 가고 싶어 하면서도 막상 자리를 뜨면 “그래도 나가길 잘했나?” 하고 혼자 생각한다는 점이다.
인생 최대의 갈등은 나가기 전과 나간 후 사이에 있다.
송년 모임이란 게 원래 한 해를 잘 버텼다는 확인 도장 같은 건데, 요즘은 도장보다 출석 체크에 가까워졌다.
빠지면 괜히 미안하고, 나가면 괜히 피곤하다.
이런 상태를 사람들은 ‘만사가 심드렁해진다’고 표현한다.
싫은 건 아닌데 좋지도 않고, 재미없는 건 아닌데 굳이! 꼭? 싶고.
그게 바로 감성이 무뎌지고 늙어가고 있다는 증거일까?
설렘이 줄어든 대신 눈치는 빨라졌다.
이 자리가 나에게 에너지를 주는지, 빼앗아 가는지 10분만 앉아 있어도 안다.
젊을 땐 몰랐던 능력이다.
경험치가 쌓이면 체력 관리가 중요해진다.
요즘은 밤 12시까지 이어지는 술자리보다, 집에 일찍 돌아와서 평소에 안 보던 TV를 켜놓고 소파에 늘어지는 쪽이 더 설렌다.
이게 바로 중년의 설렘인가?
1차로 끝내면 뒤탈 없이 조용하고, 짧고, 다음 날도 편하다. 2차라고 해봐야 음료수 한잔이 고작이다. 입가심 생맥주도 부담스럽다.
그래서 요즘 송년회는 많을수록 좋은 게 아니라 적당히 끝나는 게 최고다.
잘 놀았고, 무사히 귀가했고, 다음 날 출근이 가능하면 그걸로 성공이다.
설렘이 부족해진 게 아니라 설레어야 할 대상이 바뀐 것뿐이다.
이제는 사람보다 컨디션이 중요해졌다.
웃고 떠들다 집에 와서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그래도 올해 잘 버텼다.”
그리고 내일은 술 약속 없는 날이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게 요즘 내가 생각하는 가장 현실적인 연말 소망이다.
*이미지: 구글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