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톱! 스톱!

주유구 뚜껑 하나가 알려준 것

by 글사랑이 조동표

스톱! 스톱!

- 주유구 뚜껑 하나가 알려준 것


어제 주유소를 나와 큰길로 접어들었을 때였다.

신호 대기 중이었는데, 길가에서 한 사람이 나를 향해 손을 크게 흔들었다.


“스톱! 스톱!”


처음엔 내 차가 아닌 줄 알았다.

그런데 그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은 분명히 내 차량 뒤편이었다.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주유구 뚜껑이 활짝 열려 있었다.


나는 급히 차를 세웠다.

그는 다가와 아무 말 없이 뚜껑을 닫아 주었다.

“딸깍.”

짧고 선명한 소리.


나는 연신 고개를 숙였다.

고맙다는 말보다 먼저 떠오른 생각은 이것이었다.


내가 이렇게 건망증이 심해졌나?’


주유 후 뚜껑을 닫는 일은 셀프주유소에서 한 번도 의식하지 않았던 자동 동작이다.

연료를 넣고, 결제하고, 뚜껑을 닫고, 시동을 건다.

몸이 기억하는 루틴이다.


그런데 그 단순한 동작 하나가 빠졌다.


무슨 큰 사고라도 날 뻔한 것처럼 마음이 먼저 요동쳤다.

사실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말이다.


차는 멀쩡했고, 경고등도 켜지지 않았다.

연료가 새지도 않았다.

다만 뚜껑이 열려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마음이 무거웠을까.


아마도 두려움의 실체는 뚜껑이 아니라 ‘나이’였을 것이다.


예전 같으면 웃고 넘겼을 실수인데, 이제는 곧장 이런 문장이 따라온다.


기억력이 약해진 건 아닐까.’

‘이러다 더 큰 실수를 하면 어쩌지.’


육십을 넘기니 실수 하나가 곧 노화의 증거처럼 느껴진다.

주유구 뚜껑 하나가 자존감을 건드린다.


생각해 보면, 내가 경험한 것은 사고가 아니라 작은 공동체의 작동이었다.


낯선 사람이 차를 멈춰 세워 주었다.

위험을 경고해 주었다.

그리고 조용히 닫아 주었다.


우리는 서로를 모른다.

이름도, 직업도, 사는 곳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잠깐의 신호로 서로의 실수를 메워준다.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실수는 노화의 증거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완벽한 루틴도 한 번쯤은 삐끗한다.

주의는 잠시 다른 생각으로 옮겨가고, 몸은 자동으로 움직이다가 하나를 건너뛴다.


그게 사람이다.


집에 돌아와 다시 한번 뚜껑을 눌러보았다.

“딸깍.”


이 소리가 어제의 결론이었다.


아직은 괜찮다.

아니, 괜찮지 않아도 된다.


주유구 뚜껑 하나쯤은 열릴 수 있다.

그리고 세상 어딘가에는 그걸 닫아 줄 사람이 있다.


오늘 나는 건망증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사이의 연결을 확인했다.


*참고: 주유구 뚜껑이 열려 있으면, 기름이 쿨렁쿨렁 흘러넘치겠지요...

경고등 뜨고, 휘발유 냄새나면서 기름이 휘발되겠지요...

기름통으로 불순물 들어가서 오염이 되고, 인화물질 닿으면 폭발하겠지요...



*이미지: 네이버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