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숙미
- 리즈 시절 이후의 아름다움
아침에 TV를 켜면 화면 가득 젊음이 쏟아진다.
잘생긴 남자 배우와 인형처럼 예쁜 여배우가 환하게 웃는다.
아침부터 마음이 상큼해진다.
아, 봄이 왔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여자는 10대에서 30대가 가장 아름답고, 남자 역시 20대와 30대의 젊은 시절이 가장 멋있다고.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들을 보며 우리는 그 아름다움을 감상한다.
그들의 젊음은 화면을 통해 빛나고, 그 빛은 잠시 우리의 마음까지 환하게 만든다.
그러다 문득 나도 한 장의 사진을 떠올린다.
회사에 갓 입사했던 20대 중반.
처음 여권 사진을 찍던 날의 사진이다.
정장을 어색하게 입고 세상이 아직 낯설던 얼굴로 카메라 앞에 서 있었다.
그 사진을 책상 위 액자에 넣어 두고 가끔 들여다보곤 한다.
저 사람이 정말 나였을까.
그때의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세상은 아직 펼쳐지지 않은 지도 같았다.
고향에 내려가면 또 하나의 사진을 만난다.
아버지의 사진이다.
고등학교 교복에 모자를 쓰고 찍은 사진.
지금의 아버지 모습과는 전혀 다른, 단정하고 또렷한 얼굴의 소년이 거기에 서 있다.
그 사진을 볼 때마다 늘 같은 생각을 한다.
아버지에게도 저렇게 빛나던 시절이 있었구나.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과거의 전성기였던 ‘리즈 시절’이 있다.
젊음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설명할 필요도, 이유도 없다.
그저 젊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빛난다.
그러나 나이가 들며 알게 되는 것이 하나 있다.
아름다움은 젊음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세월이 지나면서 사람의 얼굴에는 다른 빛이 생긴다.
수많은 선택을 지나온 눈빛,
실패와 후회를 지나온 표정,
그리고 책임을 견디며 생긴 단단함.
그것은 젊음의 빛과는 다른 종류의 빛이다.
젊음이 봄이라면 원숙함은 가을에 가깝다.
봄의 꽃은 화려하지만 가을의 열매는 깊다.
경륜이 쌓이고, 시간이 사람을 익히면서 비로소 나타나는 아름다움이 있다.
그것을 우리는 ‘원숙미’라고 부른다.
젊은 배우들의 얼굴을 보며 봄을 느끼던 아침.
나는 문득 생각했다.
사람의 인생에도 계절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모든 계절이, 각자의 방식으로 아름답다는 것을.
어쩌면 리즈 시절은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다른 모습으로 다시 찾아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미지: 네이버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