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왕과 사는 남자'를 보고
사육신과 생육신
- 영화 '왕과 사는 남자'를 보고
1. 왕의 곁에 산다는 것
요즘 개봉한 영화 '왕과 사는 남자'를 보고 극장을 나오는 길에 문득 오래된 이름들이 떠올랐다.
단종.
사육신(死六臣).
생육신(生六臣).
그리고 신숙주.
조선이라는 나라에서 왕은 한 사람이었지만, 왕을 중심으로 살아야 했던 사람들은 수없이 많았다.
왕과 함께 산다는 것은 왕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왕 때문에 살아야 하는 삶이었을지도 모른다.
권력의 가까운 곳에서 산다는 것은 항상 선택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2. 어린 왕의 자리
단종은 왕이 되고 싶어서 왕이 된 사람이 아니었다.
열두 살의 어린 소년이 세상의 가장 높은 자리에 앉았다.
그러나 왕좌는 어린이를 보호해 주지 않는다.
궁궐의 담장은 높았지만 그 안에서 벌어지는 권력의 바람은 더 거셌다.
숙부였던 세조가 왕이 되고 소년 왕은 강원도 영월로 보내졌다.
왕이었던 사람은 하루아침에 아무도 아닌 사람이 되었다.
역사는 이 장면을 담담하게 기록하고 있지만 그 순간 조선의 수많은 신하들에게는 한 가지 질문이 던져졌을 것이다.
“당신은 어느 편에 설 것인가.”
3. 죽음을 선택한 사람들
어떤 사람들은 칼을 들었다.
우리가 사육신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다.
성삼문과 박팽년, 그리고 이개, 하위지, 유성원, 유응부.
그들은 이 싸움이 이길 수 없는 싸움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움직였다.
충성 때문이었을까.
어쩌면 그것은 자신의 마음을 배반하지 않기 위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결국 처형되었다.
그러나 역사는 그들을 패배한 사람들이 아니라 지켜낸 사람들로 기억한다.
4. 침묵을 선택한 사람들
또 다른 선택도 있었다.
생육신이다.
김시습, 남효온, 원호, 이맹전, 조려, 성담수.
그들은 칼을 들지 않았다.
그러나 권력의 편에도 서지 않았다.
벼슬을 버리고 산속으로 들어갔다.
세상과 거리를 두며 조용히 살았다.
죽음 대신 침묵을 선택한 것이다.
어쩌면 그것도 자신을 지키는 또 하나의 방식이었을 것이다.
5. 살아남은 사람
그리고 역사에는 늘 해석이 엇갈리는 이름이 남는다.
신숙주.
그는 뛰어난 학자였다.
세종의 시대에는 한글 창제에도 참여했다.
그러나 권력이 바뀌자 그는 새로운 왕의 편에 섰다.
그래서 그는 능력 있는 학자인 동시에 권력의 현실을 받아들인 인물로 기억된다.
어떤 사람들은 그를 비난하고, 어떤 사람들은 그를 현실주의자라고 말한다.
역사는 종종 이렇게 묻는다.
“옳음을 지키는 것과 살아남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어려운가.”
6. 왕과 사는 사람들
영화를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조선의 역사에는 세 종류의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죽음을 선택한 사람.
침묵을 선택한 사람.
현실을 선택한 사람.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왕과 함께 살아간 사람들이었다.
권력의 방향에 따라 조심스럽게 자신의 삶을 조정하며 말이다.
7. 오래된 질문
극장을 나오면서 마음속에 오래 남는 질문이 하나 있었다.
만약 내가 그 시대에 살았다면 나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사육신이었을까.
생육신이었을까.
아니면 신숙주였을까.
아마도 대부분의 인간은 역사책에 이름이 남지 않는 평범한 사람으로 살았을 것이다.
그래서 역사는 늘 불편하다.
역사는 영웅의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이 어떤 선택을 했는지에 대한 기록이기 때문이다.
600년 전 조선의 이야기인데도 지금 우리의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이유도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이미지: 네이버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