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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사랑이 거봉 Mar 14. 2024

강남역 미아 5장 1화

오너와 CEO_오너_1

   감히 일개 직원이 자기가 몸담았던 기업의 거물들에 대한 평가를 쉽게 할 수는 없다. 다만 P는 다른 임직원들보다 훨씬 더 그들과 접촉할 기회가 많아서 추억이 넘치고 소회도 많았다. 5장에서는 기업을 일군 오너와, 경영을 맡아 조직을 관리한 CEO를 다뤄보고자 한다.


   P가 아스라이 먼 과거를 회상하며 기억나는 내용을 담담하게 서술해 보기로 하는데 먼저 오너 편부터 시작한다. 오너 A는, 1921년에 일본 농어업지대의 염전에서 미네랄을 정제하던 작은 화학공장(간수 가공업)으로 시작한 지방의 변두리 기업을 일약 매출 20조 원, 제약업계 세계 20위권의 기업으로 키워낸 장본인이다. 창업주 3대였다.


   P의 인생에 큰 영향을 주었던 A는 1937년생으로 P의 아버지와 동갑이었고 같은 AB 혈액형이어서 친근감이 있었다. A는 본사의 대표이사 사장과 지주회사 초대 회장을 지냈다. A는 1960년대 도쿄의 사립대학에서 공학을 전공하고 본사에 입사해 모든 조직을 두루두루 경험하고 1976년에 사장자리에 취임하였다. 그때부터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업적을 남기다 2008년에 지주회사를 설립하고 회장에 취임했다. 2010년에 회사를 도쿄증시에 상장시켰다.


   레토르트(저장을 목적으로 한 가공) 식품이나 건강 음료, 영양 식품 등 각 장르의 선구적 존재인 상품의 기획자이자 발안자였다. 의약품 사업의 R&D(연구 개발)를 강화하여 헬스케어 분야의 확대를 도모하는 등, 그룹의 한 시대를 쌓아 올리다 2014년 77세를 일기로 서거하였다.


   1969년에 일본에서 처음 발매된 레토르트 식품의 발안자이고, 1980년에 빅 히트한 건강음료 발매, 1983년에는 블록 영양식품을 개발하였다. 획기적인 기능성 음료와 식품을 타사에 앞서 소개하기 시작해 경영자로서 높은 평가를 얻었던 인물이다.


   기능성 음료의 탄생에 얽힌 이야기가 있다. 어떤 영원사원이 멕시코에 출장을 갔다가 물갈이를 하는 바람에 입원을 했는데 이때 링거액을 맞으면서 생리식염수를 상품화하자는 생각을 했다는 설이 있다. 또, 긴 시간 동안 수술을 하고서 쉬는 의사들이 생리식염수를 마신다는 사실에 착안하여, 마시는 영양주사액으로 개발되었다는 설이 있다. 아마 둘 다 맞을 것이다.


   기획 단계부터 사내에서 수많은 반대에 부딪혔지만 A가 뚝심 있게 7년이나 밀어붙여서 성공한 제품이다. 이 음료는 일본과 한국, 중국을 넘어 아시아 전역에서 판매되고 있는데 카테고리 내에서 시장점유율 1위를 오랫동안 유지하고 있다. 브랜드 이름으로서 카테고리를 상징하는 대명사의 반열에 올라있는데, 선우후락(先憂後樂) 마케팅의 성공작으로 불려진다. 즉 ‘시작은 어렵고 힘들지만 나중에는 쉽고 즐겁다’는 제약 마케팅 기법을 음료에 응용한 결과물이다.


   사전 시장조사도 없이 A가 단독으로 발매를 결정해 놓고, 불가사의한 맛의 음료를 소비자들에게 받아들이게 하라는 추상같은 지시를 내려서 사원들은 아연실색하였다고 한다. 결국 맛보다 몸에 좋은 음료라는 콘셉트로 선전하였고, 미소녀 모델을 대대적으로 선발하여 광고를 시작해, 아직 고정되지 않은 신선하고 풋풋한 이미지로 시장에 스펀지처럼 흡수시켰다.


   우리나라에서도 유명 여배우들이 신인 시절 이 광고를 통해 인기를 얻고 대성공한 케이스가 많았다. 우리나라 최초의 모델은 유명 수영선수였는데, 도쿄에서 열린 한복패션쇼에 참석차 머문 호텔에 본사 선전부 직원들이 대기하다 그 어머니와 접촉했다고 한다. 선수의 어머니는 당시 씨름선수로 최고액의 모델료를 올리던 L보다 높은 금액을 요구하였는데 이를 승인한 A의 결정으로 전파를 타게 되었다는 소문을 들었다. 2대 모델부터는 여자 연예인의 등용문이 되기도 하였다. P는 줄곧 한국에서 만큼은 남녀를 불문하고 유망한 스포츠스타가 더 어울리지 않을까, 생각하였다.


   A는 자신의 회사밖에 취급할 수 없는 독창적인 제품을 개발하는 것을 경영의 최고 목표로 삼았다. P가 입사했을 당시 일본의 컨설팅 기업에서 조사한 '혁신적 기업 분야'에서 전 산업 군을 통틀어 10위 내에 들어있던 회사였다.


   선대부터, ‘늘 땀 흘려 일해서 실증(實證)을 하고 창조성을 발휘하라’는 주문을 하였다고 한다. 그것은 ‘오직 우리만이 할 수 있는 것, 우리밖에 할 수 없는 것을 찾아내자’는 신념이었다.


   A는 음료와 식품에서 얻은 이익을 바탕으로, 기존의 수액제 위주였던 의약품 부문에 R&D 능력을 강화해 신약개발의 기둥으로 키워냈다. 날씨만 좋으면 날개 돋친 듯 팔리는 음료에서 거둬들인 막대한 수익을 신약개발에 쏟아부었다.


   1970년 당시 일본에서는 볼링이 크게 유행했기 때문에 회사의 이사회에서는 볼링장 경영에 나서는 것이 검토되고 있었다. 그러나 A는 볼링장이 장차 제약회사를 지탱할 만한 사업이 되겠느냐며 논의를 일갈하고, 그 대신 신약개발을 위한 연구소 설립을 지시했다. 그러자 알토란 같은 신약이 탄생하기 시작하였는데, 지금은 일반적인 만성질환약부터 희귀 질환약까지 전 세계의 환자들에게 두루두루 사용되고 있.


   특히 거대 기업이 손대지 않는 결핵 분야에도 매진하여 신약을 개발하였고, 전 세계의 결핵 퇴치에 앞장서서 공로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결핵 치료제가 판매 승인을 받자 A는 “발병률이 여전히 높은 아시아 지역에서는 결핵이 공공보건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누군가는 이를 위한 치료제 연구를 계속해야 한다고 판단했다”라고 밝혔다. 돈이 안 되더라도 질병에 신음하는 환자를 위해 신약을 만들어내는 것이 제약기업의 사명이라는 그의 철학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기업 이윤의 사회환원에도 앞장서서 창업 75주년 기념사업으로 모기업의 발상지에 국제미술관을 지었으며, 여기에는 피카소, 고흐나 다빈치, 모네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화가의 명화들 1000여 점이 한 곳에 전시되어 있다. 세계 200개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고대 벽화부터 현대 회화에 이르기까지 국보 수준의 서양 명화를 실물 크기로 복제한 도판(타일) 작품들은 세계 최고 수준의 복원 기술력을 갖고 있는 세라믹 전문 자회사가 성공시킨 마스터피스이다. 5시간은 관람해야 한 바퀴를 돌 수 있으며, 일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리움미술관에서도 방문해 조언을 들었을 정도라고 한다. 일본의 미술학도나 미술가들은 1년에 몇 번씩 방문한다고 하고, 일반인들이나 학생들, 해외에서도 단체 방문객이 많다.


   미술관 입구에 자리 잡은 시스티나 홀은 ‘최후의 심판’을 재현하였는데, 천장화와 벽화가 도판으로 붙어 있다. 벽을 연결하는 부분과, 미묘한 곡면으로 구성되어 도판을 깨지 않고 굽혀서 제작하는 것은 기술적으로 어려운데, 유리가 고온으로 녹고 구부러져 가는 원리를 응용해 시행착오 끝에 실현한 멋진 예배당이다. P는 여러 번 이 예배당 벤치에 드러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미켈란젤로의 심오한 뜻과 구약성서 창세기에 그려진 천지창조의 웅장한 장면, 그리고 신과 인류의 장대한 드라마를 음미하곤 했다. 일본에서 앉은 채로 세계의 예술을 체험할 수 있는 유일한 전당으로서, A의 문화 사랑과 영원한 가르침을 유산으로 남긴 곳이다.


   이 미술관의 가치를 높이 평가한 로마 교황청은 A에게 교황 기사단 훈장을 수여했고, 프랑스 정부는 레지옹 도뇌르 훈장 오피시에를 수여했다고 한다.


   제약업계 원료 하청업체로 출발한 그룹이 창업 100년 만에 연간 매출 15조 원의 글로벌 제약회사로 자리매김한 것은 A의 카리스마 넘치는 탁월한 경영능력 덕분이었다. 모기업 지주회사 밑에는 제약 이외에도 화학과 식품, 살충제 기업 등 다양한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이중 의료 관련 분야가 약 70%를 차지하고 있고, 그 핵심 업체가 바로 P가 근무했던 사업부와 본사였다.


   1964년에 창립한 제약기업은 ‘우리는 더 건강한 세계를 위해 새로운 제품을 만든다'는 기업철학을 가진 글로벌 헬스케어 기업이다. 질병치료용 의약품과 일상생활의 건강을 위한 기능성 제품에 초점을 두고 혁신적이고 독창적인 제품을 연구, 개발, 제조, 판매하고 있다.


   특히 난제로 점철되어 있는 정신질환장애 분야에서 업계를 선도하고 있으며, 이러한 자세는 활기찬 창조 정신을 모든 사안에 적용하는 ‘Big Venture(커다란 벤처기업)도 같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본사의 특색은 다른 회사가 흉내 내지 못할 독창적인 제품 개발과, 인기와 관심을 지속시키는 마케팅 능력에 있다.


   A의 아버지 2대째 오너는 화학원료 하청업의 한계를 느끼고 1946년에 수액사업에 진출해 의약품이라는 최종제품을 만드는 메이커로 탈피를 주도했다. 그리고 38세의 약관으로 사장직을 물려받은 3대째 오너 A는 신약개발에 일로매진했다. 그 계기는 1970년대 항생물질 개발권을 취득하기 위해 방문했던 이탈리아 제약회사에서 쓰라린 경험을 했기 때문이었다.


   이탈리아 회사는 항생물질과 결핵치료제 신약의 개발권을 놓고 일본의 20여 개 사를 상대로 흥정 중이었으나, 일본의 변방 회사였던 A의 기업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이때 독창성 높은 신약 창출의 필요성을 깊이 통감한 A는, ‘세계인의 건강에 기여하는 혁신적인 제품을 창출하는 것’을 기업 이념으로 삼게 됐다고 한다. 바로 이런 이념이 주력제품 개발의 원동력이 됐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정신과 의약품은 당초 알레르기 치료에 쓰였던 항히스타민제를 개발하던 노력 덕분에 탄생 됐다. 개발 도중에 우연히 나타난 중추신경계의 부작용을 본 A가 신약 개발에 이용할 수 없을까라는 문제를 제기했다. 연구조사를 해보니 정신분열증(조현병) 등 폭넓은 정신질환 증상에 효과가 있는 혁신적인 성분으로 밝혀졌는데, 결국 이 제품이 세계적인 블록버스터가 되었다.


   일본 제약회사가 독자적으로 개발한 대형 신약 중에는 고지혈증 치료제와 당뇨병 치료제 등 대중적인 내과계열 의약품이 많은 편이다. 이에 반해 희귀한 정신과 영역의 약을 세계적으로 히트시킨 것은 A의 집요한 신념과 추진력의 산물이었다.


   A가 늘 강조했던 창의력과 창조정신은, 1988 모기업의 발상지에 문을 연 능력개발연구소(임직원의 교육을 담당하는 곳)에서 잘 나타난다. 연구소의 홀 천장에서 수경 재배를 통해 일반 수확량 100배의 열매를 맺는 토마토는 ‘특별한 토마토가 아니라, 노력을 짜내는 것이 곧 성공이라는 선입견에서 벗어나 고정된 주위환경의 제약을 탈피함으로써 본연의 잠재된 능력을 발휘하도록 이끌어내는 것’이라는 '발상의 전환' 철학이 담겨있다.


   지금도 본사는 치열하게 연구개발에 힘쓰고 있다. 미국, 일본, 중국에 기초연구 거점을 두고 있으며 발상지 연구단지 내 각 건물에는 신 물질의 합성, 약효, 안전성, 분석 및 제형 연구에 1000명 가까운 연구원들이 밤낮으로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이 밖에도 안과, 피부과, 항암제를 주력으로 연구하는 위성연구소가 따로 있다.


   발상지의 핵심 연구소에서는 신 물질의 약효와 안전성이 집중적으로 연구되고 있다. 신 물질은 대사체에 따라 효과의 차이가 상당하기 때문에 관련 연구가 중요하다고 한다. 또 연구자들은 전 세계에서 발행된 1000종에 가까운 전문잡지를 구독하며 정보를 획득하고 있다. 제제연구소에서는 전 연구소에서 발견된 데이터가 모아져 각각의 물리화학적 특성 및 제형에 대해 24시간 분석되고 있다고 한다.


   최근 세계 제약산업의 추세와 마찬가지로 바이오 의약품 개발, 외부와의 협력 및 제휴에도 힘쓰고 있다. 연구소 전략은 다품종 만들어내기가 아니라, 정말 필요한 적재적소의 의약품 소수를 개발하여 질병에 신음하는 환자들에게 공헌한다는 철학을 갖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북쪽에 위치한 캘리포니아 와인의 명산지 나파밸리(Napa Valley)에서 시내를 거쳐 고속도로로 나가, 공항과 스탠퍼드대학교를 지나 산타크루즈 해안 산맥 속 꾸불꾸불한 산길을 1시간 정도 오르면 800m 높이 정상에 포도밭이 펼쳐진다. 이곳에 위치한 와이너리는 몬테밸로 포도밭에서 수확한 포도를 가지고 최고의 캘리포니아 와인을 지속적으로 생산하고 있다.


   1986년 여러 동업자들로 구성되어 있는 와이너리를 인수한 A는 양조가에게 ‘어떠한 것도 변경하지 않을 것이고 또 양조에 대하여 어떠한 영향력도 가지지 않을 것이니 대신 와이너리에 추가의 투자 없이 스스로 홀로 서서 다른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최상의 와인을 만들어 줄 것’을 요구하였다고 한다. 과연 A다운 주문이었다.


   이에 양조가는 몇 배 이상으로 약속을 지켰다고 하는데, 최상의 캘리포니아 레드와인과 독특한 포도 품종을 최고의 수준으로 끌어올린 걸작품 브랜드인 M, C 등을 만들어냈다고 한다. 긴 세월을 두고 몇 종류의 와인만을 소량씩 생산하여, 크고 많은 것만 추구하는 우리에게 교훈을 주었고, 본사의 이념이 녹아있는 정수이.


   A가 믿음을 준 탁월한 양조가의 철학은 그의 와인 속에 온전히 담겨 있고, 1976년과 2006년, 두 번에 걸친 파리의 심판(Judgement of Paris)을 통해서 세계적인 최고의 와인으로 인정받게끔 되었다. 21세기에 만들어진 와인을 가지고 시음한 결과, 2000년 산 와인은 캘리포니아 Cabernet Sauvignon 중에서 1위를 하였고, 명실상부 세계 최고의 Cabernet Sauvignon인 와이너리 브랜드 R은 2001년부터 한국 시장에도 소개가 되고 있으며 서울의 H백화점에서 만나볼 수 있다.


   A는 이 와이너리의 고급 와인을 글로벌 행사마다 내놓으며 흥을 돋워주었다. 아마도 본인이 와인을 좋아했기에 미국의 와이너리를 인수했을 것이고, 세계적인 와인으로 성공하게끔 돌봐줬을 것이다.


   P가 기억하는 일화로는, 6.25 전쟁 시에 군인들 부상으로 수액제(링거)가 대량으로 필요하였는데 멀리 미국에서 공수하기는 힘들어서 가까운 일본에서 실어 날랐다고 한다. 그 바람에 수액제에 주력하던 모기업이 큰돈을 벌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그래서 2대째 오너부터 한국을 동정했다는 소문도 들었다.


   A는 1973년에는 태국과 미국사무소 설립을 필두로 해외사업에 뛰어들었고, 1980년대에는 자사에서 개발한 신약을 연거푸 출시하면서 세계 각국에 깃발을 꽂았다. 현재는 세계 32개국에 진출해 있다. P도 이 기업의 한국 지사에 합류하면서 1990년에 발매된 신약의 성공에 일조를 하였던 것이다.


   한국의 약대생들이나 신약개발 연구 제약사들에게도 문호를 개방하여 수많은 연수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어서 친한적인 이미지가 매우 강하다. 보통 한국 제약사의 인턴십이나 교육은 복제약품이나 개량신약에 대해서 설명해 주지만, 여기서는 신약개발 전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접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은 A의 배려로 이루어진 역사적 산물이다.


   A는 KDRA(한국신약개발연구조합)의 요청을 받아들여, 한국에서 신약개발이 태동하던 1990년대 초반부터 각 제약사의 연구소장을 포함한 연수단이 도쿄와 오사카의 본사, 모기업의 발상지에 있는 연구소와 공장을 방문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주었다. 보통 제약회사 연구소와 공장은 극비의 보안이 유지되는 곳이어서 타인들에게 오픈을 하지 않지만 호방한 성격의 A는 정반대였다. 문을 열어줄 테니 맘껏 배워가서 한국에서도 빨리 신약을 개발하라는 뜻이 담겨 있었다.


   P는 KDRA에서 선발한 연수단 20여 명을 여러 차례나 인솔하여 1주일 여정으로 일본을 방문하곤 하였다. 덕분에 P는 KDRA로부터 공로패도 수상하였다. 이는 30여 년 간 긴밀한 한일 협력관계 구축 노력을 늦게나마 인정받은 것이었다. 본사는 1982년 한국 진출 후부터 일본계 제약기업으로서는 드물게 적극적인 자세로 한국의 신약개발 노력에 공헌했으며 그 과정에 P가 큰 역할을 한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은 다 A의 한국에 대한 통 큰 용단과 배려, 지도력에 의한 것이었다.


   KDRA의 주도로 1991년부터는 본격적으로 각 한국 기업들마다 연구 테마를 살린 프로젝트를 갖고 본사의 연구소에 파견 근무를 하면서 앞서나간 일본의 연구원들과 함께 창약(創藥) 연구를 배울 수 있었다. 각 제약사의 신약개발 연구능력을 향상하기 위해 1991년부터 5년 간 본사의 연구소를 다녀간 한국의 연구인원만 30명 이른다. 본사는 한국의 신약 연구개발을 위한 기술지도를 했고, 양국 간 유대 강화를 도모하기 위해 문화 교류에도 힘을 쏟는 등 한국에서 신약개발 연구가 활발해지는 토대를 만들어 주었다. 연구소 직원들은 한국 연구자들에게 일본어도 가르쳐주고 전통 춤과 사케 문화를 전수해 주며 장대한 송별식까지 해주었다. 그 결과 한국에서도 1996년에 국산신약 1호 항암제가 탄생되었고, 이에 힘입어 앞다투어 신약개발에 피치를 올리는 붐이 조성되었다. 덕분에 한국에서 지금까지 허가받은 신약은 37개가 있다. 35년 전 A의 결단이 열매를 맺고 있는 것이다.


   지난 2018년에는 KDRA에서 P를 일본 전문위원으로 위촉했고 이를 통해 더욱 한 차원 높은 긴밀한 한일 협력 관계 구축을 도모해 나갈 수 있게 됐다.


   일본은 고베에 2018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혼조 타스쿠 박사가 이사장으로 있는 FBRI(고베 의료 산업 도시 추진기구)와 TRI(의료 혁신 추진 센터)라는 기구가 있다. P는 일본 인맥을 활용하여 2017년부터 TRI의 관계자가 서울에 방한해 KDRA와의 협력 관계와 방향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게끔 안내했다. KDRA 뿐만 아니라 또 다른 정부기구의 대표 TRI에 방문하여 MOU를 체결하도록 민간대사의 역할까지 해주었다.


   이를 계기로 2018년 7월 KDRA가 주최하는 신약개발 관련 첨단기술교류회의인 Korea Inter Biz Bio Forum에 외국에서 처음으로 TRI 관계자가 7명이나 참여할 수 있게 됐고, 10개의 seed를 소개했으며, 이중 일부는 계약을 맺게 됐다.


   P는 A의 가르침인 ‘의료는 문화의 일환’이라는 철학을 간직해 왔다. 서양과 아시아는 다르며 아시아에서는 한국과 일본의 협력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신념이다. A가 있음으로써 KDRA나 양국 보건의료기관, 그리고 제약사들과도 30여 년간 긴 교류가 이어져 왔다고 생각한다.


   본사는 글로벌 기업으로서 브랜드 가치를 인정받고 있으므로 한일 간 신약연구개발을 위한 프로그램에 공헌해 왔다. KDRA와 TRI도 중국에 많은 관심이 있기 때문에 이러한 학계에서 발신하는 혁신 기술교류 및 의료에 공헌해 한중일(스몰 글로벌) 신약 연구개발의 얼라이언스 형성으로까지 이어질 것을 기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은 시대를 앞서나간 A의 혜안에서 비롯된 가르침이었고, 그가 만들어준 기반에서 역사가 이루어진 것이다. 이 글을 통해 머리를 깊게 숙여, 진심으로 A에게 고마움을 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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