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역 미아 4장 5화
컴플라이언스 위반 사례
P는 매년 내부감사팀과 협력하여 컴플라이언스 위반행위를 적발하였다. 매의 눈으로 현미경과 돋보기를 갖다 대면 꼬리가 밟히는 게 직장인들의 위반행위였다. 귀여운 정도의 일탈이 많았으나, 때로는 기발한 방법도 동원되어 감사반을 놀라게 한 적도 있었다.
아래는 P가 경험했거나 업계에서 있었다고 전해 들은 사례들을 열거한 것이다. 어디까지나 참고로만 읽을 일이다.
출장규정: 제한금액을 초과하는 호텔과 항공권 이용. 대중교통 이용 가능한 공항 이동구간에서 택시 타기.
기업에는 '출장 시 비용처리규정'이라는 것이 있기 마련인데, 출장이란 사람들과 만나서 미팅을 해야 하고, 이어지는 식사자리와 2차 자리가 있을 수 있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 경비 억제정책으로 1차만 인정하는 규정 하에서 이쪽과 저쪽이 1,2차를 따로 분담하고 각자는 1차만 한 것으로 처리하는 경우가 있었다. 양사의 경비처리 현황을 크로스체크해야만 알 수 있는 내용이었지만, 현실적으로 점검 불가능한 허점을 이용한 경우이다.
교제비: 직원들과의 식사를 고객과 접대한 것으로 처리하기. 이와 반대로 고객과의 식사를 내부 회식비로 처리하기(예산 배분의 편의상 처리)도 있었다. 식사 인원 늘려서 정산하기(1인당 제한 금액 초과). 참고로 본사에서는 정당한 사내교제를 장려하여, 내부 부서 간 교제비가 외부 접대비보다 훨씬 컸던 시절도 있었다.
구매: 사용 가능한 물품이 있음에도 새것을 미리 구매하기(연말에 예산이 남을 경우). 필요 수량 이상의 과다 구입.
영업마케팅: 고객에게 리베이트 제공. 명절, 생일 등 기념일에 과다 선물 제공. 주말에 접대성 근로 봉사. 실제 발생하지 않은 가공의 영수증 처리. 접대가 금지된 업소 이용.
법인카드: 예산의 한도를 초과하여 사용하기. 카드를 담보로 대출받기. 카드로 상품권을 구입하여 선물비용으로 회사에서 처리하고 그 상품권을 되팔아 현금화해서 사적으로 사용한 경우도 있었다. 사적인 식사비용(가족, 친구 등)을 공적인 교제비로 처리하기. 카드 사용 마일리지를 개인 포인트로 적립하기.
업소명 변조: 유흥업소를 식당으로 바꿔서 계산서 발행한 경우(때로는 국밥집 이름으로 수십만 원이 찍힌 경우도 있음).
이중 경비 정산: 이미 정산한 비용을 두 번 청구하기.
대행사 이용: 사적인 비용을 행사 대행사에게 부탁하여 공적 업무에 포함시키기.
서명 위조: 약속한 금액과 다른 금액을 기입하고 대신 서명한 경우.
배달 사고: 경비가 중간에 증발하는 경우.
성희롱: 사내 남녀 간 불쾌한 신체접촉으로 고발한 경우나 언어 희롱으로 징계를 내린 경우.
사내 갑질: 상사가 부하직원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거나 폭행한 경우. 언어폭력(욕설 또는 비하) 고발이 들어와서 경고를 내린 경우도 있었다.
이밖에 기상천외한 사건들도 있었는데 모든 것은 본인의 양심에 맡길 수밖에 없었다. 거품경제시대와 고도성장기에 발생 빈도가 높았다.
위에 열거한 사례 중 인원수 늘리기, 연말에 남은 예산 소진하기 등의 사례는 일반적으로 많이 사용한다고 들었다. 사실 제도적인 문제점에 기인해 불가피한 면(비현실적인 접대비 기준, 전년동기대비 증가율 기준 예산관리 등)도 있어 일률적으로 재단하기 어려운 면도 있었다. 즉, 접대상황상 불가피하게 들어가는 비용을 사재를 털어서까지 해야 하느냐? 또는 예산을 아껴 쓰면 오히려 익년도에는 덜 배정되는 제도로 피해를 보게 된다는 우려도 있어 이를 감안해 줄 필요가 있었다. 그 정도가 심하지만 않다면, 일단 배정된 예산 내에서는 어느 정도 재량권을 주어야 직원들도 오너십을 가지고 일한다는 얘기를 사업하는 친구에게 들은 적이 있다.
감사팀은 어떤 종이 영수증 냄새를 맡더니 일반 식당이 아닌 유흥업소에서 발행된 것임을 적발해내기도 했다. 그들은 모든 영수증의 전화번호를 확인하고 직접 전화를 걸어서 실제 업태파악을 하였다. 영업장과 영수증이 일치하는지 여부, 단가, 장부대조까지도 업소에 요구하였다.
내근 부서: 주거래은행으로부터 접대받기. 개인이 사적으로 사용할 물품을 업무 용도로 처리하기. 명세서 없이 한꺼번에 계산된 일괄 금액만 있는 경우는 의심 대상이었다. 물품 구입 시에는 반드시 목적과 함께 명세서가 첨부되어야 했다.
참고로 일본 공무원 사회에서는 출장 시 획득한 항공사의 마일리지를 개인 소유로 인정할 것이냐를 두고 시시비비를 가린 적이 있었다.
일본의 어떤 직원이 해외에서 개최된 학술행사에 참석하러 갔는데, 부부동반으로 비즈니스 클래스에 탑승해서 다녀왔다고 한다. 그런데 부인의 경비까지 회사의 비용으로 처리한 것이 문제가 되어 감사를 받았다. 그 결과 규정위반이 지적되어 한직으로 부서를 옮기게 되었다. 그는 심한 자책감과 스트레스로 40대에 백발이 되더니 50세가 되기 전 타계했다.
이것은 여담이지만, 일본에서는 종종 과로사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기도 한다. 앞날이 창창한 나이에 사망하기도 하여 업무 강도가 어느 정도인지를 짐작케 한다. '과로사'란 일본어(過勞死: 가로우시)는 영어사전에 등재될 정도이다.
대규모 글로벌 미팅에서도 과다 경비사용으로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관계자들에게 비싼 식사를 제공하는 등 정해진 가이드라인을 어겨서 조사를 받았다. 1인당 십만 원이 넘는 고급요릿집에서 고가의 와인을 곁들여 접대를 벌인 것이 문제가 되어 담당자가 좌천된 경우도 있었다.
위의 글은 위반행위를 너무 구체적으로 나열한 거 같아 마음이 무겁다. 어느 조직이나 법인카드를 사용하는 경우, 위에 기술한 경우에 저촉되는 경우도 꽤 많은 듯한데, 우리나라에서는 암묵적으로 넘어가주는 경우가 많은 편이다.
지금 현역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은 이런 사례들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적나라하게 나열될 때 위축감뿐만 아니라 조직에 대한 원망으로 나타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른 측면에서 보면 이런 일률적 재단은 사회 관습이나 분위기를 해치는 문제가 있어서, 유사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위반여부를 판정하기까지 늘 골머리를 앓아야만 했다. 여기는 컴플라이언스라는 틀을 만든 서양이 아닌 동양이고, 게다가 미풍양속이 있고 정을 나누는 한국땅이니 말이다.
P는 인간적 고뇌를 해야 하는 경우가 너무 많았으며, 본인도 자유로울 수가 없어서 힘들었다.
경비 사용 규모와 법인카드 예산은 권력을 잡으면 커지기 마련이지만, 양심의 무게도 커지길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