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가 몸담았던 회사의 본사는 2013년부터 글로벌 회계법인 D사와 협력하여 일찌감치 준법경영, 즉 컴플라이언스(Compliance) 업무에 힘을 쏟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IPO 이후 강화된 내부관리의 시작을 의미하였다. 특히나 여러 부분에서 낙후된 아시아 지역의 컴플라이언스 강화가 커다란 이슈로 떠올랐다. 2013년부터 준비를 시작한 이 프로젝트는 2015년에 글로벌 미팅에서 처음으로 언급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글로벌 계약서 관리 워크숍의 Closing Remarks에서 본론이 아닌 부록처럼 언급되다가, 급기야 2015년에전 세계의 모든 지사에 통지되었다. 중국에서 돌아온 P는 회사 내부관리의 중책도 맡았기에 당연히 이 프로젝트에 동참해야 했다.
P는 처음에 그가 몸담고 있던 회사의 준법감시인(Compliance Officer)을 담당하고 있었으나, 본사는 아시아사업부에 전체를 총괄하는 책임자의 배치를 지시하였다. 사업부에서는, 이제까지 다양한 경험을 쌓았으며 남달리 정의감이 강했던 P를 낙점하여 이 막중한 업무를 맡기게 되었다.
회장 H는 P를 책임자로 적극 추천하였는데, 아마도 조직의 약점을 커버하기에 적임자로 판단했던 듯하다. P는 직원들의 언행에 있어서 문제가 될만한 것들을 시정하려고 노력했는데, 과거부터 익숙해져 온 인습을 하루아침에 바꾸기는 쉽지 않아 애를 먹었다. 이를테면 아무 생각 없이 툭 내뱉은 말이 여직원들의 오해를 살만한 경우도 있었고, 무심결에 경비사용규정을 넘어서는 것들도 많았다. 어떤 직원은횡령을 하다 발각되어 반성문을 쓰고 자진사퇴로처리하기도 했다. 해고를 시키면 타사에 전직을 못하므로 그나마 옛 정과 그간의 공로를 고려한 배려였다. 이후 그는 심기일전, 환골탈태하여 어느 상장사의 대표로 임명되었다. 현명한 내부 처리의 결과였다. 회사도 살고 사람도 살렸다고나 할까?
P는 이 중책을 맡게 된 후, 아시아 각 나라의 의약품 자회사뿐만 아니라 음료 자회사까지 담당하게 되었다. 늘 새로운 교육자료를 만들어야 했고, 경영자를 포함한 임원들과 관리자, 그리고 각 지사의 준법감시인을 대상으로 끊임없는 계몽과 교육을 해야만 했다. 교육은 다양한 사례를 동원하여 경각심을 갖게 하고, 내부통제의주의환기를 꾀하는 내용이었다.
Q&A 시간에는 나라마다 다양한 상황에서 온갖 종류의 질문이 쏟아졌다. P는 본사와 아시아사업부의 견해를 확인하고 반영하며, 그 나라에 적절한 답변을 해줘야만 했다. 그나마 다양한 경험을 쌓았고 수많은 접대문화와 영업마케팅 상황에 노출되었던 P였기에 가능한 답변이 많았다.
일반 직원과 영업 말단 등 현장의 의식개혁이 우선이었지만, 더 큰 문제는 경영자들과 임원들의 자각이 중요했다. 그것은 횡령과 같은 화이트칼라 범죄의 사전예방을 위함이었다.
사장들은 P를 저승사자 보듯 하였다. 사실상 본사에 사장 직속의 내부통제실과 감사팀이 따로 움직이고 있었기에, P가 맡았던 교육은 일종의 예방접종이었다. 본사는 2016년부터 Compliance 부서를 통로로 삼고 많은 지침을 통지하였다. 공격도 중요하지만 수비를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명확히 천명하였던 것이다.
여기서 그 배경과 발자취를 더듬어보기로 한다.
2014년은 오너의 서거로 말미암아 공격 경영이 한풀 꺾였고, 이미 글로벌 대기업으로 성장한 그룹사에서 대대적인 관리체제로 선회하던 시점이었다. 이 거대 프로젝트의 배경은, 뇌물공여를 비롯한 컴플라이언스 위반에 대한 단속이 세계적으로 강화되고 있으니 컴플라이언스 체제의 강화는 필수적인 대처라는 당위성에서 출발하였다.
당시 네덜란드에서는 2013년에 J기업과 N기업이 공모하여 진통제 출시를 지연시킨 데 따른 독점금지법 위반이 보도되었다. 미국은 이미 2012년에 G기업에 의한 제품의 부정판매 촉진활동이 발생하였다. 또 F기업에 의한 중국, 러시아, 불가리아의 의사와 정부 관계자에 대한 뇌물공여 사건도 있었다.
일본 또한 N사에 의한 제품의 임상연구논문 조작 사건이 2013년에 발생하였다. 최대 기업인 T사의 제품 프로모션에서 임상연구논문과 다른 데이터의 사용이 2014년에 적발되었다. 과대광고에 관한 약사기준법 위반으로 업무개선명령이 2015년에 발생했다.
중국은 G기업이 정부 관계자와 의료인에게 뇌물을 제공한 사실이 발각(2013년)됨에 따라 의약품 매출이 61%나 감소하였고 중국 정부로부터 5억 달러의 벌금이 부과되었다. 그리고 N기업은 의료 종사자에 대해 뇌물을 제공한 것이 발각되어 2,500만 USD의 화해금으로 수습하였는데, 이것은 빙산의 일각이었을 정도로 문제점이 많았다.
이러한 흐름은 국제화되기 시작했다. 사실상 미국에서는 2007년을 기점으로 적발이 증가하고 있었다.
제재금 액수도 고액화 되기 시작하여, 역대 사례 1위는 8억 달러에 달하였다.
여기서 미국과 영국의 외국 공무원들에 대한 뇌물수수방지법령을 비교해 보자. 국제적인 상거래에 있어서 영업상 부정한 이익을 얻기 위하여 금전 및 그 밖의 이익을 공여 또는 신청, 그리고 약속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령들이 있었다.
미국은 해외 부패 방지법을 제정했는데, 그무시무시한 US Foreign Corrupt Practices Act(FCPA)가 바로 그것이었다. 이것은 주로 회계에 관한 규정으로 외국 공무원에 대한 뇌물수수 금지가 중심이었다.
영국에는 뇌물 방지법인 UK Bribery Act(UKBA)가 있는데, 공무원뿐만 아니라 민간인도 포함한 강력한 법령이었고, 기업의 뇌물수수 방지 의무가 중심이었다. 이것은 외국공무원에 대한 뇌물행위도 적용된다(역외적용).
한편 글로벌 금융 서비스 업체로 유명한 모건 스탠리(Morgan Stanley)는, 한 고위 경영진이 중국 관리들에게 500만 달러의 뇌물을 건넸는데, 판결은 불기소(벌칙 없음)였다. 판결의 결정적 요인은 기업으로서 편익을 얻지 못하였다는 것인데, 컴플라이언스와 관련된 체계가 기업 내에 충분히 구축되어 있었다는 점이 반영되었다. 컴플라이언스 교육이 이루어지고 문서의 정비/갱신, 내부 고발의 핫라인, 내부 감사 등이 이루어지고, 부정을 감지하여 즉시 정부에 보고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발각 후 9개월간 내부조사 실시와 함께 뇌물을 제공한 사람들을 해고했고, 정부 조사에도 협조적이었다.
미국 연방 양형 가이드라인에 의하면, 컴플라이언스 프로그램을 구축했을 경우에는,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에도 그 형량이 크게 삭감된다고 한다. 가이드라인에 규정된 효과적인 컴플라이언스 프로그램을 구성해야 하는데 그 요소는 관리직을 임명하고(컴플라이언스 오피서), 문서화된 규칙과 절차(행동규범과 기준), 컴플라이언스 교육 및 연수 모니터링, 감사, 상담창구 설치, 강제력을 수반하는 징벌 제도, 법령 위반의 우려가 있는 자에게 재량권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조직 내의 권한을 주지 않도록 노력한다).
그러니 본사에서는 당연히 컴플라이언스 강화 프로젝트를 도입할 수밖에 없었다. 컴플라이언스 비전과 10년 후 목표를 설정하였는데, 각국의 문화적 배경 및 현지 임직원들이 개념을 이해하고 전 사원이 구현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취지로 글로벌 32개 국가에 프로젝트를 침투시키기 시작하였다.
그 프로젝트는, 현장교육(대처요법적 대응책이 아닌 '배경·이유'를 이해하기 위한 교육), 현장에서 판단하기 위한 규칙(뇌물 방지, 투명성 대응 등) 작성, 현장의 창의성을 지원하기 위한 규칙, 각 부문 리더에 의한 현장 레벨에서의 리스크 조기 발견과 해결, 회사 전체의 문제가 되기 이전 단계에서의 대처, 위기 발생 시 조기에 진지한 대응을 한다는 것들이 골자였다.
컴플라이언스 부서의 역할은, 비즈니스 파트너로서 현장의 창의성을 지원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아시아 지역 관련 회사와 역할분담을 하고, 주체성 있게 컴플라이언스 강화에 임하는 것이었다. 즉 정책을 정하고, SOP(Standard Operating Procedure)를 만들고, 이런 시책의 정비·운용과 상황을 모니터링한다. 본사는 각 계열사가 규정 준수를 강화하기 위한 노력을 지원한다는 것이었다.
교육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자회사 측의 요망에 따라 적절히 교육자재를 제공하여 관련 회사가 맞춤형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강화 시책의 양식을 작성하는 것이었다. 정해진 양식을 각 지사에 맞게 커스터마이징 하도록 적절히 조언하면서 진행되었다.
컴플라이언스 강화를 위해 필요한 6가지 이니셔티브가 있는데, 그것들은 규정, 감사 모니터링, 교육 프로그램, 정보 인프라, 거버넌스(관리방식) 체제, 커뮤니케이션 등이었다. 그중에서 규정, 교육, 거버넌스 체제, 커뮤니케이션의 4가지에 초점을 맞추어 강화에 힘썼다.
규정은 SOP와 정책과 같은 각국의 법 규제를 반영하고,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질과 양의 관점에서 충분한지를 확인하며, 필요에 따라 신규 작성 및 수정을 하였다.
교육 프로그램은 각종 컴플라이언스 리스크, 사내규정의 내용을 소개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작성하고 정기적인 교육과 연수를 실시한다는 것이었다.
거버넌스 체제는 긴급 대응이나 컴플라이언스 관련 시스템의 정비에 관해 의사결정을 하는 체제를 정비한다는 것이다.
커뮤니케이션은 긴급보고, 정기보고에 대한 보고 규정, 흐름도, 양식 등이 정비되어 있고 이에 따른 소통을 강화하는 것이었다.
긴급보고 일환으로 개설된 핫라인은 그룹사 직원이면 누구나 익명으로 고충을 고발할 수 있는 시스템이었는데 실제로 이용되는 사례가 꽤나 있었다. 최고위층을 겨냥한 고발이 반영되어 인사이동이 있기도 하였다.
거버넌스 체제를 위해서 각 지사는 컴플라이언스 책임자를 임명해야만 하였다. 그 책임자들을 한 군데에 모은 제1회 컴플라이언스 책임자 회의가 2015년에 홍콩에서 처음으로 개최되기에 이르렀다. 홍콩회의에서는 각 업무에 관한 구체적 절차 및 규칙(SOP)의 책정 및 시행을 강조하였다. 뇌물수수 방지로 이어지는 우선도가 높은 SOP를 책정·시행할 것, 정기적 교육 프로그램 실시, 그룹 글로벌 규정의 교육자재 제공, 매년 연수·교육 실시, 교육자재 서식 배포, 교육실시상황 확인,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긴급보고, 정기보고에 관한 보고서 규칙 정비, 긴급 리스크 관리 매뉴얼 책정, 정기보고(연 2회 제출), 본사에서 제공하는 내부 규정(SOP) 서식 문서의 작성까지 요구되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그룹의 글로벌 행동기준과 컴플라이언스 프로그램 시행, 글로벌 부패방지 규정을 요구하였다.
프로모션 활동용 규정에는 음식 제공, 물품 제공, 강연회·학회 관련, 시험용 의약품 제공, 기부 관리, 클레임 대응, 사외 강사와 컨설턴트 미팅, 일반 소비자를 위한 질환 계발을 위한 활동, 프로모션 자재 작성, 의료인과의 교류에 관한 글로벌 정책, 해외 의료진과의 교류에 관한 규정 등이 있었다. 그러나 사실상 이런 것들을 각 지사에서 소화해 내기는 너무나 복잡하였다.
간접업무용 규정으로는, 개인정보보호, 소셜미디어 이용, 구매·아웃 소싱, 괴롭힘 방지, 안전·위생관리, 정보단말기, 기밀정보관리, 내부통보 규정 등이 있었다. IT 관련 내용도 상당히 많았다.
본사는 글로벌 컴퍼니로서의 대처로, 기업행동헌장으로써의 컴플라이언스 프로그램이 있었으며, IFPMA (국제제약제조협회연맹) 코드, 제약협회 코드에 맞춰서 움직였다. 의료기관의 의료인, 연구자, 환자단체, 물류업자에 대한 투명성과 뇌물수수가 글로벌에 영향을 미치는 시대였다.
프로모션 코드 대상은 영업 마케팅 부문이 주 대상이었는데, 의료관계자, 의료기관과의 교류에 대하여 공정경쟁규약에 따른 음식 제공의 새로운 규칙 적용이 시작되었다.
2016년 말 한국에서는 소위 김영란법이선포되어 공직사회 및 사회전체에 커다란 분수령을 이루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이 선포되어 접대문화에 혁명이 시작되었다. 많은 고급 요식업소와 술집이 줄줄이 문을 닫았다.
2018년 초에는 서지현 검사에 의해 폭로된 검찰청 내부 성추문에서 폭발적으로 시작된 미투(me too) 운동이 벌어졌다. 연예계를 포함한 사회 전반에 걸쳐 여성들의 폭로가 잇따르고 심지어 남성들이 피해자가 되는 경우도 있었다. 이로 인해 극단적 선택을 하는 유명인들도 있어 많은 이들에게 경종을 울렸다.
본사에서는 한국을 앞세워 아시아를 주도하는 깨끗한 이미지로 모델케이스를 삼고자 하였다. 하지만 한국의 자회사에서 사내 성희롱이나 직장 내 갑질이 폭로되기도 하여 곤혹스러운 상황에 직면하였다. P는 아시아 각국을 돌기 전에 한국부터 문단속을 강화해야 했다. 한국의 계열사가 모두 해당되었다. 모든 자회사를 대상으로 한 전 직원 의식개혁과 준법교육을 반복해서 실시하였다.
컴플라이언스 책임자(Chief Compliance Officer)는 컴플라이언스 추진 시책의 승인과 관리를 실시하고,관련 업무의 최종 책임을 담당하는 사람인데 주로 기업의 대표가 겸임하였다.
컴플라이언스 담당자(Compliance Representative)는 컴플라이언스 추진을 위한 기획·운영(각종 시책 검토, 승인된 시책의 진척상황 관리 등), 컴플라이언스 활동 시 실무 담당자 지원(각 부서의 시책 실행 모니터링), 본사 기능(인사, 총무, 재무, 영업 마케팅)에서 공장까지 모두 아우르는 활동을 해야만 하는 중책이었다.
3~5명이 팀을 이루는 지사도 있었다.
아시아 사업부장은 2016년에 접어들어서야 이 프로젝트의 중요성을 처음으로 인식하기 시작하였다. 결국, 아시아 각 지사에 컴플라이언스 담당자 교육과 트레이닝, 본사 지시사항의 후속조치, 아시아 각국 상황의 확인과 모니터링을 강화할 목적으로 P를 아시아 컴플라이언스 책임자에 임명하였다.
P는 이미 체계가 잡혀가는 나라는 그쪽의 관리 비중을 높여서 자율에 맡기고, 전혀 되어 있지 않은 나라에는 어떻게 트레이닝과 교육을 할 것인가 파악해 가며 고민하기 시작했다. 특히 한국이나 싱가포르, 홍콩과 같은 모범 국가에 비해, 중국과 인도네시아를 포함한 아세안 국가의 열악한 상황을 예의주시하였다. 부패지수가 높은 나라들을 중점적으로 관리하기 시작했다.
P는 자신이 속한 회사에서 체계를 정립해 나감과 동시에, 아시아 국가의 자회사(의약품, 영양제품 지사를 망라한 30여 개 회사)에 대한 교육을 실행해 나갔다. 코로나19 발생 전까지 5년간 50회 이상 출장(미팅과 점검)을 다녔으며, 코로나가 발생하자 20번도 넘는 화상회의를 통하여 관리체제를 만들어 나갔다.
지금에 이르러 다시 살펴보면, 이제는 거의 모든 나라에서 자연스럽게 준법경영에 대한 인식이 정립되어 순응하는 환경이 되었다. 그러나 2016년의 상황은 준법경영에 대한 거부감이 심하여, 절친했던 사장들과 같이 식사하기도 서먹해지는 어색한 장면들도 많았다.
사장들 중에는 P와 거리를 두고 멀리하는 사람도 생겨나서눈길을 마주치기도 힘들었다. 문제점을 적발하여 교육과 트레이닝을 거듭한 어떤 지사의 사장은 아예 말을 섞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이것은 P가 영업마케팅과 경영을 담당했던 공격수에서, 준법경영 담당이란 수비수로 변신하면서 생긴 아픔이기도 했다. P는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기업에 있어서 중요한 점은 공격과 수비 양면의 밸런스를 맞춰서 경영하는 것이 핵심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시아의 컴플라이언스를 담당한 경험은 P의 직장생활에 있어서 커다란 터닝 포인트(전환점)로 삼을만한분수령이되었다. 그리고자신의 능력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가 된 중요한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