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째 오너가 마지막 불꽃을 살랐던 동시대에 본사 CEO였던 T는 일본인 약학박사였다. 미국의제약기업에서 근무하다, 본사가 미국 진출 시에 오너에게 스카우트된 합리적인 성품의 수재였다. 2007년에 미국 지사의 CEO가 되었고, 2008년에 본사의 대표가 되었는데, 사장 재임 중이던 2015년에 심부전으로 돌연 서거해 버린 아까운 인물이었다. 강운(强運)의 소유자이자 석학이었고 글로벌 리더였는데, 안타깝게도 너무 일찍 하늘에서 불러들였다.
본사에서 개발한 세계적인 블록버스터인 정신과 약물을 맡아 그 어려운 미국 FDA에서 승인을 받아내고 전 세계 지사에 발매를 시킨 인물이었다. 이 의약품은 피크 수치로 가장 많이 처방된 해의 연간 매출액이 7조 원을 훨씬 넘어설 정도여서 정말 초대형 블록버스터였다. 이 제품 하나로 본사는 일약 세계 20위권 제약사로 발돋움할 수 있게 되었고, 글로벌 이미지를 표방하게 되었다. 본사에서 펼친 신약개발의 정수는 이 항정신병약제에 결집되어 있었다. T는 미국에서 먼저 독특한 전략을 세워 실행하였다. 학술적이고 과학적인 마케팅으로 승부하여 성공하였다. 그 덕택에 본사는 일본 기업의 탈을 벗고 글로벌 기업의 이미지를 정착시키게 되었다.
이 정신과 약물의 제품 이름을 딴 국제 심포지엄이 매년 개최되었다. 100명도 넘는 각 대륙의 관계자들이 모여 성공사례와 실패사례를 서로 발표하며 앞으로의 마케팅 방향성을 점검하는 행사를 개최하였다. 포스터 전시, 분과 미팅 등, 마치 의사들의 학회를 방불케 하는 아카데믹한 이벤트를 벌였다. 처음에는 미국과 유럽이 주도를 해나갔지만 H 회장의 요청으로 아시아사업부에도 문을 열어주어, 여러아시아 국가들도 참여하기 시작하였다. T의 기획하에 개최된 심포지엄은 그룹사의 의약품 부문에 큰 발자취를 남기며 기업의 격을 높인 글로벌 학술행사로 도약하였기에 오너 A는 매우 흡족해하였다.
T는 카리스마의 전신인 오너 A와 맞서 자신만의 경영관을 설파하여서, 그를 따르는 유능한 사람들이 많았다. 본사는 2010년부터 종래에 개발된 내과 위주의 의약품을 담당하는 일본 본토 중심의 구세대와, 정신과 의약품으로 똘똘 뭉친 미국 유럽파의 신세대로 구분되기 시작하였다. 이 신세대 기류의 중심에 T가 우뚝 서 있었다. T는 48세부터 거대한 본사를 글로벌화시키고 한 차원 높은 경영 능력을 보여준 노력형 천재였다. 거리낌 없이 바른말을 잘했고 중도 채용된 사람이라서 내부의 적도 많았다. 소위 굴러들어 온 모난 돌이 정을 맞게 되어있다는 것은 고금의 진리이다. 본사나 연구소의 노회 한 박힌 돌들은 텃세를 부려가며 그를 압박했다. 하지만 T는 전혀 굴하지 않고 자신만의 철학을 신념의 토대 위에 세우고 도장 깨기를 시도해서 성공시켰다.
텃새들 틈에 끼인 외로운 T는 힘들 때마다 H와 상의하곤 했다. 박학다식한 전문 경영인이었던 T는, 미국에서 공부했고 미국 기업에서 일을 했다는 공통분모가 있는 H와 깊은 유대감을 갖고 있었다. 핸드폰에 H를 아버지의 일본어 표현인 오토상(お父さん)이라고 저장할 정도로 둘 사이는 각별하였다. T의 실제 아버지는 타계하였기에 정말 아버지로 여기고 의지하였을지도 모른다. T는 매년 1월 중순이면 H의 생일을 앞두고 도쿄에서 측근들을 이끌고 서울에 방문하여 생일 파티를 해주었다.
T는 CEO가 되기 전부터 정신적으로 H에 의지하여 서울을 자주 방문하였다. H는 T를 만나 환담을 나눌 때마다 비슷한 연배의 P와 직원들을 대동해서 자유 의제를 정해 대화의 장을 열어주었다. P와 또래의 직원들은, T와 함께 서울에서 소주를 마셔가며 열띤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마치 일본 중심의 구시대와 미국 중심의 신시대가 부딪히는 느낌이었는데,불꽃 튀는 논쟁의 장면도 여러 차례나 있었다.
한 번은 P가 T에게, 당신이 본사의 핵심 근간인 독특한 기업 DNA를 제대로 이해는 하고 있느냐며 도전적인 자세로 말한 적이 있었다. 당시 P는 FDA 승인도 못 받은 변방의 제품을 맡아 오로지 발로만 뛰어 한국에서 성공시킨 구시대 의약품의 주인공이었다. FDA에서 허가받고 성공의 길을 걸어온 블록버스터만이 세계 시장에 통용된다는 주장을 펼친 T를 향해 P는 자신만의 경험과 철학을 설파하였다. 이것이 강한 인상을 남긴 모양이었는지, 신년 회의 석상마다 T는 자주 P를 화제의 인물로 언급하곤 하였다.
T의 삶을 보면 히로카네 켄시의 유명한 기업 만화인 ‘시마과장’을 연상하게 되고, 진한 페이소스를 느끼기도 한다.
T는 의약품을 다루는 직원들이 담배를 피우면 즉석에서 나무랐다. 본인도 술을 자제하며,한때는 무알콜 맥주로 만족해했다.
T는 매년 새로운 화두를 내세우며 깜짝 놀랄만한 신년 발표자료를 그 해 처음으로 서울에서 공개했는데,일종의 쇼케이스였다. 본사 사장으로서 신년 연두계획을 발표할 예행연습을 미리 해보는 프레젠테이션은 정말 압권이었다. P를 포함한 임직원들은 설레는 분위기에서 강의를 경청하고, 자유로운 토론의 장에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이끌어내는 미팅에 자연스럽게 빠져들었다. 명불허전, 최고 레벨의 깊은 대화를 나누는 소규모 글로벌 포럼이었다.
T와 H는 서로 소속은 달랐으나 이 연초 만남을 통해 그룹사의 앞날을 걱정하며 미래의 먹거리와 그에 대한 대응책을 논의하였다. 조직 체계 확립, 끊임없이 움직이는 기업 환경의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며 극복하고 성장시킬지 같이 머리를 맞대기도 하였다.
T는 훌륭한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였으며, 본인이 직접 질문을 해가며 분위기를 이끌어내곤 하였다. 질문하는 사람에게 10달러를 주는 유인책도 펴서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A가 중심이 된 회의가 무겁고 질타를 받는 분위기였다면, T가 주도하는 회의는 항상 유쾌하고 첨단을 달리는 시도를 거듭하여 지적인 콘텐츠로 진행되어 비교가 되었다.
T는 신약인 결핵치료제가 개발되었을 때, '연구소 설립 이래의 꿈이었던 퍼스트 인 클래스(First-in-Class)의 결핵 치료제로서 이 제품이 승인되어 매우 기쁘다, 전 세계적으로 결핵으로 고통받는 환자가 여전히 많다. 우리 제품이 이러한 결핵 치료에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라고 밝혔었다.
T는 또 다른 희귀병 약의 출시에 대해서는, '이번 제품은 우리 기업과 환자들에게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며, 혁신에 전념하며 의학적 투자가 부족한 곳을 찾아 헌신하는 우리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하면서, '이 제품을 일본의 회사가 발견했으나, 이제 희귀병으로 고통받는 전 세계 환자들을 위한 첫 치료제가 될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T가 늘 강조하였던 것은,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기법, 기회를 얻는 능력, 오리지널 마켓 만들기, 동반성장을 위한 파트너 존중 등이었다.
일찍이 A는 T를 눈여겨보다 그의 창의력과 리더십, 선구자적 발상을 높이 사고 블록버스터를 개발한 공적을 인정하여 CEO에 임명하였다. 그룹사의 발전과 조직의 개혁을 온통 T에게 일임하여 스피디하게 진행하여 왔으나, T보다 수개월 전 A가 77세를 일기로 먼저 서거하여 안타까움을 더했다.
T는 늘 의약품의 포지셔닝을 설명할 때, ‘Best-in-Class, First-in-Class’를 부르짖었는데, 본인이야말로 Best-in-Class였지 않았나 싶다. T는 미국에서 펼쳐온 글로벌 기업의 강점에 본사 특유의 DNA를 접목시킨 장본인으로서, 만약 그가 지금도 생존해 있다면 지금의 본사는 훨씬 더 생기가 넘치고 혁신적인 기업이 되었을 것이다. 물론 P가 몸담았던 조직도 소멸되지 않았을 것이다.
화려한 CEO 생활을 오래 지속하지 못한 채, 무리한 M&A로 인한 사업 확장의 부담과 그 여파로 55세를 일기로 일찍 세상을 떠나고야 말았던 T. 미인과 천재는 요절한다고 그 누가 말했던가?
P와 나이도 엇비슷하고 말이 통해서 서로 마음이 맞았던 T가 타계한 후, 한동안 P는 정신적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뒤를 이어 본사 CEO에 오른 G는 음료 담당으로 미국 지사에서 활약하다 본사로 돌아온 인물이다. A의 서거 후에는 본인이 지주회사와 본사를 맡아 진두지휘하였는데, 생전의 T와는 미국 경험자로서 코드가 맞았나 보다. 하지만 같이 추진했던 대규모 M&A 이후 스트레스로 고통스러워하던 T마저 서거하자, 회사를 공격경영에서 수비경영으로 바꿔나가기 시작했다. G는 P도 잘 아는 인물이어서 여러 석상에서 마주쳤지만, 권좌에 오르고 나서는 쉽게 만나지 못하였다.
G가 지주회사 경영으로 무게중심을 옮기자 본사는 M이 CEO가 되었는데, 의약품 영업부에 입사하여 밑바닥부터 시작하여 사장까지 올라선 인물이다. M은의약품과 소비자 제품을 두루두루 경험하여 혜안이 있고 따뜻한 사람이다. P가 중국 재임 시 우호지점의 지점장으로서 천진과 북경을 방문하여 당시 수액제 중심의 중국 지사에 치료약의 중요성을 설파하였고, 이를 계기로 P와 친해졌던 인물이다. 마지막에 P가 회사를 떠나게 되었을 때 가장 위로의 표현을 많이 해준 사람이어서, P는 지금도 M과는 여전히 소통을 하고 있다.
한국의 지사에도 여러 CEO들이 있었는데, 아직 현역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누를 끼칠 수도 있으니 여기서는 생략하기로 한다.
P의 직장생활에 있어서 오너 A와 본사 CEO인 T의 이른 서거는, 더 이상 P가 그룹사에 남아서 충성해야 할 명분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역사에 'If'라는 가정법을 대입하면 온갖 결과가 뒤바뀐다.
만약 A가 병석에서나마 P를 만나서 서로 마음을 풀고 P에게 한번 더 기회를 주었더라면, P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맡아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모해 있을지도 모른다.
만약 T가 지금까지 경영을 맡아서 생존해 있다면, 본사는 훨씬 더 공격경영을 하고 있을 것이다. P 역시도 아시아사업부에 속하여 이 지역의 의료발전에 커다란 공헌을 하고 있을 것이다. 물론 P는 예전과 다름없는 바쁜 출장 일정을 소화하고 있을 것이다. 돌아가신 H의 유지를 계승하여 한 차원 높은 치료약 비즈니스를 전개하면서 70살 까지는 그룹사의 발전에 공헌하려고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