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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송작가 최현지 Feb 07. 2024

[소설 서평] <매니악> 천재를 만난 저자의 눈

[최작가, 그녀가 사는 세상]

-#독서기록
< #매니악 (MANIAC) >
#벵하민라바투트 지음 / 송예슬 옮김 / #문학동네 펴냄

에렌페스트, 폰 노이만, 파인먼, 그리고 이세돌과 AI
과학사와 세계사를 뿌리째 뒤흔든 ‘폭발적 지성’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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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니악>은 강렬하고 독창적이고 중독성이 있다. 복잡한 과학적 소재들을 명료하게 묘사하면서 세계적으로 ‘천재’라 불리는 인물들의 일대기를 들려주면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AI 세계를 고민하게 한다. 저자의 두뇌는 천재성을 지니고 있는 게 아닐까. 인간이 말하는 천재의 기준은 수학, 과학만이 아니라 인문학적인 발상에서도 창조된다고 믿는다. 벵하민 라바투트는 소설계의 천재임이 틀림없다. 그의 기막힌 발상과 섬세한 통찰력이 <매니악>을 창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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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두 유형의 사람이 존재한다. 연치 폰 노이만과 우리 나머지. 그는 파소리 김나지움에서 나보다 한 학년 아래 학급이었다. 부다페스트의 루터파 중등교육기관이었던 그 곳은 아마도 당시 세계에서 가장 엄격한 고등학교였을 것이다. 엘리트 양성을 작정하고 설계한 놀라운 국가교육제도의 일부로, 뛰어난 과학자, 음악가, 예술가, 수학자 여럿을, 그리고 진정한 천재 한 명을 배출했다. 그를 처음 보았을 때를 선명히 기억한다. 전쟁이 터진 1914년 학교에 왔으니 내 기억 속에서 연치와 전쟁은 떼어놓을려야 떼어놓을 수가 없다. 루시펜린처럼 빛을 바라던 소년은 혜성같이 우리 앞에 나타났다. 마치 어마어마하고 끔찍한 무언가의 전조처럼, 우리 태양계의 암흑을 떠도는 천상의 전령들처럼 / p.63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역시 좋은 벗이었다. 하지만 야노시 폰 노이만처럼 빠르고 예리한 정신의 소유자는 없었다. 그들 앞에서도 여러 차례 이 말을 했으나 누구도 반박하지 않았다. 완전히 깨어 있는 사람은 오직 그뿐이었다. p.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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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 쎈돌, 바둑 9단, 동시대 누구보다 창의적인 바둑 기사. 첨단 인공지능 시스템과 대전을 치러 패배를 안긴 유일한 인간, 그는 열 세살이 되던 해에 목소리를 잃었다. 한반도 서쪽 끝자락의 작은 섬 비금도에서 서울로 상경한 지 오년 째, 프로 바둑 기사가 된 지는 육 개월째되던 1996년, 폐에 알 수 없는 병증이 생겼다. 기관지가 상해 성대가 마비되었으니 말할 수 없는 것은 당연했으나 희한하게도 일부 단어를 읽을 수도, 이해할 수도 없게 되었다. 일시적이었던 실어증의 근본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 질병(심오한 내적 혼란의 징후가 아니라 정말 질병이었다면)의 여파로 결국 기관지 신경이 영구적으로 마비됐다. 그래서 그는 지금까지도 장난감 인형에서 나올 법한 독특하고 새되고 밭은 목소리로 말을 한다. - p.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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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고의 패배가 확실해지자 사람들의 기뻐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유는 분명했다. 그전까지 사람들은 무력감과 공포감을 느꼈던 거다. 인간이란 존재가 너무나도 나약해 보였으니까. 이 승리는 우리가 무너지지 않으리라는 증거다. 시간이 지나면 AI를 이기기가 훨씬 더 힘들어 질 것이다. 그러나 이 한 번의 승리...... 이것으로 충분하다고 느꼈다. 한 번으로 충분했다.” 자리에 앉아 진지하게 바둑판을 보던 이세돌을 향해 데미스 허사비스가 다가와 어깨를 살며시 두드리며 축하와 존경의 마음을 전했다. 뒤이어 판후이가 심판진 단상에서 내려와 그와 눈을 맞추며 크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 떠난 뒤에도, 이세돌은 손으로 턱을 괸 채 계속 바둑판 위의 돌을 집었다가 내려놓았다. 일어서기가 겁나는 듯 하염없이 앉아서 대국 전체를 차분히 숙고했다. 다른 사람들처럼 그 역시 기적을 목격한 기분이었다. 너무나도 소중하여 평생 잊히지 않을 순간이었다. p.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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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머릿속에 남은 이세돌 바둑 기사는 하얀 피부에 마른 체형으로 앉아서 바둑을 두는 사람, 그리고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만난 최택 캐릭터였다. 오늘부터는 [매니악] 소설에서 만난 이세돌 바둑 기사가 떠오를 것 같다. 내 주변에 천재성을 지닌 사람이 있다면 친구가 되어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와는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스스로가 생각하는 세계관에 몰입하고 있는 누군가를 관찰하는 소설가의 시선에 몰입하는 것도 신선할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말하는 천재는 외로움이 묻어나는 특성을 가졌다. 왠지 저자가 인물들에 옆에서 관찰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허구적인 소설이라기 보다 현실 속에서 만날법한 생동감 있는 이야기여서 더 많은 독자들이 책 속의 생동감과 매력을 느꼈으면 좋겠다. #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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