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생각하는 시는 짧고 함축적이며 의미가 담겨있는 희망적인 장르이다. 그러나 <마지막 눈사람>은 다르다. 한편의 판타지 소설을 보는 듯한 신선한 시의 발견이다. 보통의 시는 예쁘고 아름다운 것, 사랑이란 감정에 대해 표현되어 있지만, 이 시집은 예쁘거나 아름다운 것이 없다는 것. 다시 말해 차갑고 깊고 없지만 있는 것. 내 눈으로 볼 수 없는 우주를 담아놓은 듯한 느낌이다. 나에게 하늘, 노을, 자연은 존재의 이유가 분명하지만, 작가는 실체가 없다고 말한다. 보통의 사람은 생각을 말하지만, 그는 생각 밖을 말한다. - 들을 사람 하나 없는데 왜 이렇게 중얼거리는 걸까. 봄이 오려면 아직 멀었기 때문이다. 봄이 와야 나는 죽을 수 있고 말을 멈출 수 있다. - 나에게 봄은 삶의 동기부여를 만들어 주고, 말을 멈출 수 없게 만드는 계절인데 그는 봄이면 죽을 수 있다고 말한다. 누군가에게 봄이 죽음이라면, 다른 누군가에게 봄은 생명인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보다 생명을 떠올리지 않을까. 보편적인 생각이 아니라, 저자만의 생각은 비범하다. 생각 밖을 말하고 그것을 글로 표현한다는 것은 누굴 위한 행동일까. 저자의 언어적 표현 속엔 죽음, 어둠, 차가운 온도가 서려 있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생명, 빛, 뜨거운 온도를 붙잡게 하는 묘한 힘이 있다. 부정적인 시어들을 긍정적인 감정으로 전환할 수 있다는 건 아마도 독자의 가슴을 울리는 저자만의 빛 혹은 힘이 아닐까. - [ #가슴의서랍들 ] 가슴이 있다는 것은 고통스럽다. 공허와 비애와 우울과 불안, 고독과 절망감과 그리움, 그 모든 것이 하나의 가슴에 들어 있지 않은가. 가슴이 있다는 것은 고통스럽다. 그렇다고 가슴의 서랍들을 다 빼버리고 텅빈 가슴으로 살아갈 수도 없는 일. 벽돌은 가슴이 없다. 구름도 가슴이 없다. 가슴이 있다는 것은 고통스럽다. - 가슴이 뛴다는 건 살아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많은 감정들을 느끼게 한다. 죽으면 가슴이 뛰지 않는데 죽음을 맞이하면 고통이 없는 것일까. 가슴이 있다는 것은 사랑을 하고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 저자가 말하는 시의 모든 언어는 차갑지만, 뜨겁다. 작가가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건 차가움 일까, 뜨거움 일까? 그리고 시 속에서 새로운 삶의 의미를 되새기기 시작했다. [ #얼음의책 ] 저자 이름은 있어도 저자의 육체 없는 시집을 읽는다. 거기서가 아니라 어느 날 저자는 시간의 구멍에 흡수되듯 사라진다. 그리고는 다시 나타나지 않는다. 지상에는 여전히 그의 이름 붙은 책이 펄럭이고, 누군가 얼음의 책을 읽으며 그의 눈매 그리고 미소 그의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들을 기억한다. 사라짐. 사라짐으로 저자는 영원히 글 쓰는 자가 된다. 사라지지 않는 문자에 육체를 절여 넣고, 그는 낡은 외투처럼 사라지는 것이다. 문자에 스민 그의 피, 그의 숨결, 그의 고통, 때로 얼음의 책 속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그는 아직 얼음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문자에 육체를 절여 넣고 영원히 존재한다? 문자도 영원하지 않다. 얼음의 책은 문자들과 함께 녹아 버린다. - 창작을 하는 사람들은 한 번쯤 느껴보았을 창작의 고통. 결국 작가에겐 고통이 희망이 된 것일까. 글을 쓰는 행위로 사라지지만 사라지지 않는 작가로서의 삶. 아마도 그의 글은 새로운 시의 발견이 아닐까 싶다. 깊이 있고 신선하며 새롭다는 걸 읽고 또 읽으며 느낀다. 깊이 있는 따뜻함, 겨울과 봄 사이에서 곱씹고 또 곱씹어 보면 내게 이 책을 만난 건 단맛 나는 봄밤이다. 쓴맛 보다 단맛을, 차갑기보다 뜨거움을 느끼게 해줘서 고맙습니다.:) < #마지막눈사람 > #시인 #최승호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