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돈이 전부가 아니
강렬한 햇빛을 피해 늦은 오후에 문래 창작촌을 찾았다. 낮 동안 달궈진 아스팔트의 열기가 식어가는 초저녁, 빌딩숲 사이로 붉은 노을이 물들어가는 모습은 마치 자연이 그린 하나의 예술작품 같았다. 한때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기계 소리가 울려 퍼졌던 문래동이 IMF의 영향으로 그 열기를 잃었던 것처럼 4월의 마지막 날도 그렇게 열기가 식어갔다.
그 무렵 골목마다 촘촘하게 자리잡고 있던 철공소들이 빠진 자리에 저렴한 임대공간을 찾던 예술가들이 찾아와 빈틈을 메우기 시작했다. 쇳가루가 날리던 낡은 건물 외벽에 장식한 예술가들의 벽화와 철공소를 형상화한 조형물로 조화를 이루며 보물 같은 공간들이 곳곳에 생겨나기 시작했다. 예술인들의 아지트가 된 이곳에는 다양한 종류의 공방과 카페, 술집 등과 기존의 철공소와 노포식당들이 옹기종기 모여 하나의 독특한 문화거리로 자리매김했다.
현지인들의 일상과 역사를 담은 작품도 많다. 골목길을 걷다 보면 녹슨 철통에 그림을 그려 새로운 작품을 만들고 그곳에 노란색 꽃 금계화와 초록 식물들을 심어 멋들어진 대형화분으로 거리를 장식했다. 폐기물을 재활용한 예술작품이 회색빛 골목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골목 사이사이에는 작은 갤러리가 많아 예술을 산책하듯 즐기기엔 흥미로운 장소다. 나는 조광기 작가의 “자연에서 길을 묻다”전시를 감상하러 갔다. 그림에 대한 전문지식은 부족하지만 작품의 주제는 인간성의 회복이라는 화두에 흥미를 느꼈다. ‘人中天地一 (인중천지일)’란 말은 사람 안에는 하늘과 땅이 있다는 뜻이다. 이 말은 우리 안에는 우주 전체가 존재한다는 아이디어를 담고 있다. 작가는 이를 통해 혼탁한 세상에서 상실되어가는 인간의 본질을 회복하고자 했다. 작품을 통해 천지 자연과 하나되는 인간의 모습을 그려냈다. 그 속에서 나는 자신의 존재와 가치에 대해 생각해 보며 이 작품을 통해 작가가 전하는 메시지는 우리가 자연과 하나가 되어 살아가야 함을 느끼게 해주었다. 나도 내 삶 속에서 그런 큰 가치를 찾아보고자 한다
한참을 거닐다 한사람이 겨우 들어갈 법한 골목길에 이색적인 카페가 눈에 들어왔다. 여행의 피곤을 날려버리고 도피하고 싶은 이름의 플루흐트(flucht). 탈출, 도피라는 뜻의 카페로 도피했다. 철문을 열고 들어가면 블랙톤의 공간이 나오는데 오묘한 분위기였다. 음악과 어우러진 독특한 감성의 카페였다. 카페 지붕은 불구덩이 같은 강렬한 붉은 빚을 띄고 있고 테이블마다 조명이 있어 연인들이 오붓하게 데이트하기 좋은 장소였다. 나는 시그니처 메뉴인 상그리아 티를 주문하고 음악 감상에 취해 잠시 눈을 감았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골목길을 빠져 나왔다. 퇴근길 일에 지친 노동자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노포식당이 눈에 들어왔다. 이름이 '카드분식'이였다. 호기심에 사장님께 간판 이름의 유래를 물었다. 사장님은 문래동에서“최초로 카드를 받았다 해서 카드분식이라 지었다”는 농담과 진담을 섞어 말해주었다. 사장님과의 유쾌한 대화로 웃음지으며 김치전과 막걸리를 주문했고, 노포식당에서 여행의 마지막 순간을 즐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