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생일에 에어팟을 선물 받았다. 10월생인 나와 똑같은 10월생 에어팟이었다. 분명 온라인으로 사거나 조금 더 알아봤으면 더 싸게 샀을 테지만, 뭐든 미리 준비하지 못하는 그의 성격상 내 생일이 된 아침부터 헐레벌떡 애플스토어에 들러 이 아이를 데려온 것이 뻔했다. 핸드폰은 블랙베리를 쓰는 주제에 에어팟은 (사실 에어팟 케이스를) 갖고 싶었던지라 이 선물이 꽤 좋긴 했지만, 영수증에 찍힌 금액에 잔소리부터 쏟아냈다. "뭐 이런 걸 이렇게 비싸게 사와!" 느낌표로 뱉긴 했지만 입가에 번지는 웃음은 어쩔 수 없었다. 소박한 케이스를 끼웠고, 시간이 지날수록 빛을 발하는 키링도 달아주었다. 그렇게 2021년이 된 지금까지 오랜 기간, 하루도 빼놓지 않고 에어팟을 썼다. 블랙베리와 호환이 잘 되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블랙베리 유저에게 이 정도의 불편함은 불편함도 아니었다. 에어팟이 된다는 것만으로도 그저 감동이었다.
근데 그런 나의 에어팟이, 이제는 20분조차 견디질 못하는 친구가 됐다. 최근에 안 사실인데, ‘에어팟은 원래 소모품’이란 거다. 특히 처음 나온 내 에어팟 기종은 더 그렇다대. 그 말을 들었을 때, ‘원래 소모품’이란 단어만큼 더 슬픈 단어가 또 있을까 싶었다. 그즈음 난 이 에어팟을 선물해준 오래 사랑했던 연인과 이별이란 단어를 겪었지만, 스스로 소모해야 하는 감정을 끝끝내 소모하지 못했다. 마음은 ‘원래’ 소모할 순 없는 걸까, 하며 애꿎은 에어팟만 계속 만지작거렸다. 그리고, 계속 꺼지기만 하는 에어팟을 들고 다니는 내 마음도 자연스레 소모되길 지속적으로 바랐다.
결국 에어팟은 고작 15분밖에 되지 않는 내 출퇴근길을 함께하지 못했고, 나는 구매한 이후로 한 번도 써 보지 않은 블랙베리 번들 이어폰을 꺼내 들게 됐다. 충전하지 않아도 꼽기만 하면 재생이 되는 놀라운 번들 이어폰은 내게 신문물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어느 출근 날 아침, 엄마는 이런 나를 보고 "요즘은 또 줄 달린 이어폰이 트렌드냐?” 하고 물었다. 줄곧 패션업을 해온 엄마가 툭 던진 말은, 정말이지 트렌드의 중심에 서 있는 사람의 마땅한 질문 같았다. 엄마의 말에 피식 웃곤, 알 수 없는 위로를 받기도 했다. 엄마의 입에서 지나가는 문장들은 이따금 내게 위로를 전하곤 했는데, 이번에도 역시였다. 왜 저 말이 그렇게 위로가 됐는지는 모르겠으나, 꽤 오래 함께했던 에어팟을 놓친 대신 하루아침에 ‘트렌드세터’가 된 기분에 그랬을지도 모른다. 이러나저러나 위로를 받았으면 됐다며 출근길을 나섰다.
이젠 매일 아침 블랙베리와 에어팟이 연결되길 바라며 블루투스를 껐다 켰다 하는 수고스러움이 사라졌다. 이어폰을 쓰고 나서 한껏 편리해진 건 사실이지만, 생각해보니 난 블랙베리와 에어팟의 호환되지 않는 그 수고스러움을, 그 순간을 사랑했던 것 같다. 어쩌면, 여전히 사랑하고 있는지도 모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