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 좋게 걷기 좋은 정동, 지붕 없는 대한제국의 역사박물관
4월 11일. 오전에 일을 보고 오후 약속을 위해 광화문으로 넘어갔다. 시간이 좀 남아서 길을 걸었다. 전날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마지막 회를 봐서 그런지 우리나라의 역사에 대해 나름대로 많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길을 걸으며 이 동네의 역사적 의미가 더욱 많이 다가왔었다. 또 모르고 간 이 날이 바로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일이었다.
서학당길은 예전에 지도 어플에 저장해두었던 곳이었다. 특별한 무언가가 있는 곳은 아니고 그냥 길일뿐인데 분위기가 좋다고 해서 기억하고 있었다. 약속 전에 시간이 남은 김에 서학당길을 시작으로 근처를 돌고자 했다.
들은 대로 서학당길은 너무 예뻤다. 특히 해가 지고 있는 시간이라 햇빛이 들어와서 더 아름다웠다. 최고의 조명은 역시 햇빛이라는 말이 딱이었고, 성당과 시청 건물이 이국적인 뷰를 만들어주었다.
걸으면 걸을수록 서울주교좌성당이 가까워졌다. 성당을 밑에서만 올려다봐야 하는 점이 아쉬웠는데 조금 더 자세히 성당을 돌아볼 수 있는 곳을 찾았다!
서학당길을 걸으며 지도 어플을 확인하니 세실마루에도 핀이 찍혀 있었다. 세실마루는 세실극장 옥상에 있는 휴식공간이다. 세실마루 근처로 가니까 월요일은 휴무이며 일정은 변경 가능하다고 적혀 있었다. 하필 내가 간 날이 월요일이라 아쉬워 고개를 들어 옥상을 바라봤는데 세실마루를 이용하고 있는 사람들을 발견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나도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봤다.
세실마루에 이미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촬영을 하는 사람들, 나처럼 혼자 쉬는 사람들까지. 세실마루에 올라오면 정동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고 한다. 안내판에 정동은 조선으로부터 대한제국에 이르는 역사의 원형이 남아 있는 지붕 없는 박물관이자 근대역사 유산과 현대 문화가 공존하는 서울의 대표적인 역사 문화명소라는 점에 공감했다. 덕수궁을 내려다볼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세실마루에 올라오니까 아까 밑에서 보던 성당을 더욱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이국적인 느낌을 주는 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은 한국 성공회의 중심 성당으로 영국 건축가 아서 딕슨이 로마네스크 건축 양식에 한국 전통 건축의 요소를 가미한 설계에 따라 1922년 착공하여 1926년에 부분 완공된 상태로 축성되었다고 한다.
그 후 70년의 시간을 미완인 채로 사용하다가 1996년 원 설계도에 따라 나머지 부분을 건축하여 온전한 모습으로 완성하였다고! 로마네스크 양식에 한국 전통 건축의 요소가 가미되어 있다고 해서 신기했는데 가까이에서 보면 처마장식, 기와지붕 등의 한국의 건축 양식이 많이 포함되어 있는 걸 볼 수 있다.
건물은 정말 이국적이고 예뻤는데 생각보다 예쁘게 찍기 어려웠다.
세실마루에 앉아서 잠시 쉬기도 하고 덕수궁이랑 성당도 봤다. 내려와서 영국 대사관을 구경하고 싶었는데 월요일이라 열지 않아서 볼 수 없었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자리를 옮겼다.
서학당길과 같은 날에 간 건 아니지만 정동길에도 많은 역사가 담겨 있어 같이 소개하고 싶었다. 나는 두 곳을 각각 다른 날에 갔지만 서학당길 근처를 걷고 정동길도 한 번에 걸을 수 있다. 정동공원은 크지는 않지만 꼭 와보기를 추천한다. 기대를 많이 하지 않았던 것에 비해 정말 좋았다.
사실 정동공원에 온 이유는 구 러시아 공사관에 가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보수공사 중이어서 사진으로나마 볼 수 있었다. 안내판을 통해서 이곳은 고종이 1896년부터 그다음 해 경운궁(지금의 덕수궁)으로 환궁할 때까지 피신했던 아관파천의 역사적 현장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얼른 보수공사가 끝나고 직접 두 눈으로 보고 싶었다.
옆에도 길이 있길래 조금 후에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정동공원이 크지 않았지만 이 안내판을 본 것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을씨년스럽다'라는 단어의 의미를 알게 되어 신기했다. '을사년스럽다'라는 말에서 출발하여 을사늑약의 원통함을 잊지 않고자 한 역사적 맥락이 담긴 단어라는 점은 정말 처음 알았기 때문이다. <미스터 션샤인>을 포함해 여러 드라마에서 언급된 대한제국 황실문장이 오얏꽃(자두꽃)이라는 것도 적혀 있었다! 정동공원에서 근대 역사 공부를 하기에 참 좋다고 생각했다.
아까 보였던 옆에 있던 길! 가까이 가보니 '고종의 길'이었다. 문으로 들어가면 양옆 돌담을 사이로 길이 하나 나있다.
'고종의 길' 설명을 보니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에 머물 당시 러시아 공사관에서 덕수궁을 오갈 때 사용한 길로 추정된다고 한다. 예전의 도면과 옛 사진 등 관련 자료를 검토하여 조성하였다는데 왠지 아직 완벽하게 완성되어 있지는 않아서 엄청 아름답거나 하진 않았다. 그냥 가까이 오면 한 번 걸어볼 만한 곳!
고종의 길에서 나오자마자 정동1928아트센터를 마주했다. 여기는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을 선보이는 복합문화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더욱 인상적이었던 점은 이곳이 1928년에 지어졌고 서울의 10대 건축물 중 하나로 꼽혔을 정도로 건축사적 의미가 깊은 건물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2002년 서울시 기념물로 지정되기도 하였다고! 안에도 들어가 볼 수 있으면 좋았겠지만 이날은 외관만 구경했다.
또 걷다 보니 신아기념관을 발견했다. 정동길은 좋았던 점이 그냥 스쳐 지나갈 수 있는 곳도 안내판을 설치해두어 한 번씩 고개를 치켜들고 구경할 수 있어서 좋다. 신아기념관은 일방향 장선 슬라브 구조 및 원형철근 사용 등 일제강점기의 건축 기법이 남아 있는 근대 건축물이라고 하니 신기했다. 나는 건물 전체보다는 입구가 가장 특이하고 기억에 남았다.
마지막으로 덕수궁 중명전이다. 한참을 적었는데도 소개할 곳이 남아 있다는 게 어떤 의미로는 놀랍다. 역사적인 공간이 이렇게나 많은 곳이라는 걸 비교적 최근에 알게 되어 아쉬움이 많다. 요즘 새로운 취미를 갖거나 어디 새로운 곳에 가게 되면 더 미리 와볼걸, 더 미리 관심을 가질걸 하는 생각이 든다.
덕수궁 중명전은 고종이 1904년 경운궁 화재 이후 1907년 강제퇴위될 때까지 머물렀던 곳으로, 1905년 을사늑약을 체결한 비운의 장소라는 걸 알게 되었다. 거의 알지 못하던 곳이라 너무 신기했다.
건물 자체만 봐도 굉장히 멋있었다. 건물 내부로 신발을 신지 못하기 때문에 앞에 설치된 신발장에서 슬리퍼로 갈아 신고 들어가야 한다. 신발도 못 신게 하는 건 거의 처음이라(?) 낯설었지만 문화를 보호하기 위함이니 당연히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을사늑약을 체결한 곳이고, 고종에 관련한 이야기가 담긴 곳이다 보니 중명전 안에도 그 시절의 이야기를 체험해볼 수 있게 구성되어 있었다. 고종의 친서에 황제의 어새를 찍어보기도 하고 헤이그 특사 파견에 대한 게임을 해보기도 했다.
고등학생 때는 배워야 해서 배웠던 역사였다. 시험을 보면 까먹기도 일쑤였고. 그런데 이렇게 직접 역사가 담긴 장소들을 다녀보고, 체험하면서 고등학생 때 이렇게 돌아다녔다면 더 재밌게 공부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었다.
최근에 '문화재'라는 명칭을 '유산'으로 변경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문화재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지만 '재물 재'라는 단어가 포함되어 있어 용어의 의미상 한계를 극복하고 유네스코 등 국제 기준에 맞춰가기 위함이라고 한다. 인스타그램으로 이러한 용어 변경에 대해 접하고 나서 앞으로도 우리의 유산들이 잘 보존되고, 전달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커졌다.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다 보면 마음에 여유가 없고,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게 될 때가 많다. 그래서 지금까지 나에게 역사는 뒷전으로 밀려 있었던 것 같다. 최근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을 보고 과거 우리나라를 지킨 이들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도 얻고, (픽션이기에) 역사 공부를 더 해보고 싶다는 의지도 갖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쌓아 올린 삶이 나 혼자만의 힘으로 이룬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이미 제103주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일은 며칠 지났지만 너무 늦지 않게 정동에 대해 적어보고 싶었다. 안내판에서 읽은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는 말에 크게 공감했다. 어디를 걸어도 우리나라의 역사를 느낄 수 있는 정동에서 우리나라를 지켜준 과거의 이름 모를 누군가들을 생각해볼 시간을 꼭 한 번 갖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