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래동 서울로 7017, 중림동 약현성당, 미근동 서소문아파트
미세먼지가 가득한 날이었다. 미세먼지 수치가 높은 날이면 외출을 자제하라고 하는데 꼭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거의 2주 동안 간단한 산책도 하지 못했었기에 몸이 근질거렸기 때문이다. 남산서울타워를 보고 싶어서 명동 근처에서 내릴까 생각했는데 미세먼지로 인해 내가 기대하는 모습이 아닐 것 같았다.
그래서 지하철에서 카카오맵을 켜서 다른 곳 갈만한 곳을 찾아보았다. 지도에 빼곡히 찍힌 핀 사이에서 서울역 근처가 눈에 띄었다. 지하철을 타고 가며 서울역 근처를 가기로 마음을 바꿨다.
서울역에 내리면 왠지 특이하게 생긴 건물이 있다. 복합문화공간 '문화역서울284'이다. 이곳은 예전에 경성역으로 불리었다고 한다. 예전 시대의 느낌을 여전히 가지고 있다. 다만 이곳은 올 때마다 앞이 너무 어수선해서 아쉽다. 사람들이 항상 많이 몰려있기도 하고 시국이 시국인지라 검사소도 있다. 게다가 내가 간 날은 공사까지 하고 있었다. 그래서 항상 후다닥 지나가게 되는 것 같다.
사실 '문화역서울284'에서는 좋은 전시들을 많이 했는데 날짜를 놓쳐 보지 못한 전시가 많았다. 이 날도 그래서 그냥 지나치려 했는데 다른 전시가 진행되고 있는 듯했다. 앞에 계신 직원 분께 들어가도 되냐고 여쭤보았고 된다는 답변을 들어서 바로 들어갔다. 서울역 투어의 첫 코스는 문화역서울284에서 진행되는 '생활 속 한복의 드레스 코드'라는 전시였다. 지금 우리가 한복을 입는다면 업종, 직업에 따라 어떻게 입을 수 있을지 상상해볼 수 있게 하는 전시였다. 한복을 현대의 교복과 근무복으로 풀어낸 전시였다.
근데 사실 전시보다는 건물이 너무 인상적이었다. 우리나라의 근대 건축인 이 건물은 일제강점기 때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어졌다. 일본은 이 역을 통해 베이징이나 모스크바까지 철도를 연결해 지배와 수탈을 더욱 용이하게 하려고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 이야기가 담긴 곳에서 한복 전시를 보다니 왠지 의미가 두 배가 되는 기분이다.
사실 건축이 너무 인상적이었던 것에 비해 여러 곳을 둘러볼 수는 없었다. 그런데 브런치를 쓰면서 조사를 하다 보니 2022년 내부 공간 투어를 오픈한 것을 알게 되었다. 1925년 경성역에서부터 현재까지 건축, 교통, 생활사 등 100년의 시간여행을 시켜준다고 한다. 나도 시간 되면 꼭 가보고 싶다.
다음은 서울로 7017! 문화역서울284에서 중림동으로 넘어가기 위해 다리 위로 올라왔다. 서울로 7017은 여름에 오면 정말 예쁠 것 같은데 자꾸 이런 으스스한 분위기의 겨울에 오게 되어 아쉽다. 다양한 종류의 나무들이 있었는데 나무 기둥만 보다 와서 아쉽다. 꼭 여름에 가보고 싶다.
서울로 7017에 서면 기차가 지나가는 것도 볼 수 있다. 이렇게 간단하게 서울로 7017은 마무리하고 다음 코스로 간다!
사실 이날 산책에서 가장 가보고 싶었던 곳은 서소문아파트와 경희궁이었다. 그런데 서소문아파트로 걸어가는 길에 왠지 들어가 보고 싶은 곳을 발견했다. 중림동 약현성당이라는 곳이었다.
이 안내판을 읽은 덕에 천주교서울순례길 코스라는 것도 처음 들어봤다. 솔직히 들어가도 되는 곳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지만 안 되는 곳이면 말해주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들어가 봤다.
산책의 목적지를 띄엄띄엄 정해두면 그 사이에서 발견하는 다른 곳에도 가볼 수 있다는 점이 참 좋다. 만약 산책을 하다가 들어가지 않았다면 평생 와볼 일이 잘 없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종교를 따로 가지고 있지 않지만 성당이나 교회, 절 등 종교적인 건물의 멋은 참 좋아하는 것 같다. 성당의 나무 문이 너무 멋있었던 것 같다. 체리색은 되게 옛날 감성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렇게 보니 또 엄청 멋있는 느낌 +_+ 1892년 9월 완성된 한국 최초의 서양식 벽돌조 건물이라고!
생각보다 성당 전체 사진을 찍기 어려웠는데 나름 마음에 든 중림동 약현성당의 전경이다. 약현성당은 1886년 한불조약 이후 종교의 자유가 허용되면서 지어진 조선 최초의 서양식 성당이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약현성당이 한국 천주교회사와 건축사에 있어 가지는 의미도 굉장히 크다고 한다.
그리고 이곳에서 성당을 바라보니까 왠지 드라마 <디어마이프렌즈>가 생각났다. 극 중 희자가 가는 성당이랑 비슷한 것 같다!라고 생각했는데 검색해보니까 진짜 <디어마이프렌즈> 촬영지였다. 내 인생드라마의 촬영지를 얼떨결에 와봤다니 신기할 따름이다.
하나의 건물이 약현성당을 마주 보고 있었는데 어떤 용도의 건물인지는 모르겠지만 예뻐서 찍어봤다. 이날은 이렇게 밖에서 약현성당을 둘러봤지만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내부를 들어가 본 사람도 있고, 결혼식도 많이 진행되는 듯하다. 나도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내부도 한 번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글의 마지막 코스, 중림동 일대의 마지막 코스는 서소문아파트이다. 흔히 '아파트'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의 건물이 아니어서 꼭 한 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빈티지한 느낌이 나기도 하고 또 휘어있는 점도 신기했고 홍콩 같은 이국적인 분위기를 내기도 했다.
서소문아파트는 진짜 예스러움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올해로 딱 준공한 지 50년이라니 세월이 느껴지는 듯했다. 그리고 가장 신기했던 점은 이 아파트가 만초천을 복개한(하천에 덮개 구조물을 씌워 겉으로 보이지 않도록 하다.) 자리 위에 세워진 아파트라는 점이었다. 하천의 흐름을 따라지었기 때문에 아파트가 이렇게 휘어진 모양이라고 한다.
사실 그냥 하천 위에 아파트가 있는 거구나~ 하면 신기하고 말 수도 있는데 나는 이 아파트 소유주들이 토지세를 내지 않고 구청에 하천 점용료를 낸다는 사실이 가장 신기했다. 그리고 건축법상 하천부지이기 때문에 재건축이 불가능하다는 것도 신기했다. 아파트 하나를 보며 법 적용의 신기함을 느낀다.
이 아파트를 보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당장 드라마에 나와도 어색하지 않겠다!'였다. 그래서 인스타그램에도 그런 감상을 남겼는데 이곳이 드라마 <나의 아저씨> 촬영지였다는 것을 알게 됐다. 다시 생각해보면 '이 정도 감성이면 이미 많은 촬영을 했겠네~'라고 생각하는 게 덜 어색한 것 같기도 하다.
하천 위에 지어졌다는 점, 그래서 휘어있다는 점, 그리고 법 적용도 하천 위라는 특수한 케이스가 적용된다는 점을 알게 된 것이 너무나 신기했다. 나는 산책할 당시에는 몰라서 보지 못했지만 바닥에 복개한 흔적이 남아있다고도 한다. 혹시 이 글을 보고 가본다면 바닥도 유심히 보면 좋을 것 같다. 많이들 사라지는 오래된 아파트를 눈으로 담을 수 있어서 좋았다.
이날의 산책은 나이키런클럽을 켜고 걸어서 기록도 남길 수 있었다. 2.88KM. 생각보다 많이 걸은 것 같은 이유는 사실 이날 서울역 일대를 지나 경희궁, 정동까지 산책하는 코스였기 때문이다. 경희궁과 정동은 따로 묶어 글을 써보려고 준비 중이다. 다른 소재도 많아서 언제 업로드할지는 아직 모르겠으나 그래도 많은 기대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