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페 정양원, 미륵사지 석탑, 국립익산박물관, 선샤인 스튜디오
브런치를 시작한 이후로 가장 긴 업로드 텀을 가진 것 같다. 한 달 사이에 여행과 산책 말고도 새로운 취미를 찾게 되어 온통 마음이 그쪽으로 쏠린 터라 감상을 정리하고 글로 풀어내는 시간을 가지기 어려웠다. 이젠 학기도 마무리되고 있으니 그동안 다녀온 곳에 대한 글을 천천히 올려보려고 한다.
올해 초에 버킷리스트라고 하기엔 거창하지만 나름의 목표를 세웠다. 올 한 해 끝내주게 놀면서 상반기에는 국내 여행을 많이 하는 것이었다. 여행을 다니면서 점점 경기도, 충청도, 강원도, 전라도, 경상도, 제주도 다 가보자! 하는 구체적인 목표로 확장되기도 했다.
그렇게 어제부로 상반기 목표를 다 이뤘다. 어제 전라도와 충청도를 한 번에 여행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여전히 상반기 여행 계획은 끝나지 않았다 후후) 오랜만에 가족 네 명이서 다 같이 다녀온 여행이기에 다른 주제들을 미뤄두고 이 여행부터 쓰기로 마음먹었다. 전라북도 익산에서 다녀온 아가페 정원과 국립익산박물관, 미륵사지 석탑 그리고 충청남도 논산에서 다녀온 선샤인 스튜디오에 대해서 써보려고 한다.
아가페 정원은 아빠가 찾은 곳이었다. 서울 밖으로 나갈 때는 아빠가 훨씬 잘 알고 좋은 곳을 잘 찾아서 나는 믿고 따라나선다. 나는 잘 몰랐는데 이곳이 요즘에 굉장히 핫한 곳이라고 한다. 1970년에 고 서정수 신부가 노인복지시설인 아가페 정양원을 설립했고 어르신들의 행복한 노후를 위해 조성한 수목 정원이라고 한다. 이 정원이 작년 2021년 50년 만에 개방됨으로써 시민들도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글을 쓰는 지금을 기준으로 주말에는 예약을 하고 가야하지만 평일에는 그냥 입장할 수 있다.
새벽 6시도 되기 전에 서울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9시 좀 넘어서 아가페 정원에 도착했다. 서울은 며칠 째 흐리고 비가 오던 날이었는데 익산은 너무 쨍쨍해서 기분이 좋았다. 여행 하루 전날에도 날씨 고민을 하고, 우산도 각각 한 개씩 챙겼는데 고민이 무색해졌다.
들어가자마자 인상적이었던 점은 향나무가 굉장히 많았던 점이다. 내 브런치 글들을 쭉 보면 향나무가 여러 번 언급될 정도로 향나무를 엄청 좋아하는데 향나무길은 처음 걸어봐서 너무 좋았다. 가족들의 뒷모습을 찍어서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렸는데 혼자 동화 속이냐는 답장을 받았다. 이른 시간에 도착해서 그런지 아무도 없어서 더더욱 만족스러웠다.
아가페 정원에서 진짜 마음에 드는 나무를 발견했다. 바로 밤나무!!! 난 솔직히 무슨 나무인지는 몰랐는데 엄마가 밤나무라고 알려줬다. 두 그루의 큰 밤나무들이 서있는데 나는 그게 가장 좋았다. 밤나무 잎들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이 만드는 그림자도 좋았고, 하얀색 지렁이처럼 달려있는 게 조금 징그럽게 보이기도 했지만 그것도 밤나무의 매력 같았다.
혼자 밤나무 사진을 여러 장 찍다 보니 나만 혼자 느려진 상태였다. 이런 길을 걸어가면,
논밭 뷰가 나온다! 나는 서울 밖의 수목원에서 만나는 이런 논밭 뷰가 너무 좋다. 청산수목원에서도 주변의 논밭과 수목원이 어우러지는 뷰가 좋았는데 아가페 정양원에서도 그런 뷰를 만날 수 있었다. 하늘도 구름이 퐁실퐁실 예뻐서 더 마음에 들었다.
왼쪽 사진은 내가 좋아하는 나무의 느낌이라 넣어봤다. 나는 나무가 털 뭉치 같이 복슬복슬한 느낌이 나는 게 좋다. 오른쪽 사진은 꽃이 있길래 그냥 찍은 건데 아빠가 마음에 드는 사진이라고 말해서 넣어봤다. 사실 엄청 내 취향은 아닌 사진인데 ㅋㅋㅋ
나와 동생은 햄스터 인형 인생 샷을 찍어주는 동안 엄마와 아빠는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었다. 이곳이 메타세쿼이아 숲이 유명한 모양이던데 이렇게 높은 나무가 있는 곳에 오면 꼭 한 번 고개를 치켜들어줘야 한다. 나무 기둥만큼이나 저 위에서 뽐내고 있는 나뭇잎들의 자태가 아름답기 때문이다.
이곳저곳에서 사진을 찍고 얘기하며 걸으며 산책을 했다. 우리가 나갈 때 관광버스 한 대가 와서 단체 관광을 하는 걸 보고 일찍 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과 여기 정말 유명한 곳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점심 먹는 곳에서도 여기 요즘 뜨고 있는 곳이라고 추천해주셨던 곳이니까.
그다음 코스는 국립익산박물관과 미륵사지 석탑이다. 둘은 정말 붙어 있다.
먼저 박물관에 갔다. 솔직히 혼자 관람했으면 잘 몰랐을 것 같은데 해설사 분이 학생들을 대상으로 해설해주시고 계셔서 핵심은 조금 들을 수 있었다. 경주에 있는 황룡원을 떠오르게 하던 미륵사지 목탑은 소실되었지만 남아 있는 석탑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석탑을 콘크리트 일일이 제거하고 보수하는 데에 20년에 200억인가 들었다고. 우리 문화재를 지키는 일이니 시간도 돈도 당연히 들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또 탑을 만드는 이유는 부처님의 사리를 보관하기 위함이라고 하면서 사리와 함께 각종 유물들을 많이 묻었다고 말씀해주셨다. 그렇기 때문에 도적꾼들의 표적이 되기 마련이라 유물의 발견에 있어 많은 기대를 하지 않는데 1400여 년 동안 고이 보관되어 발견된 사리봉영기가 있다고 하며 진품을 보여주셨다.
백제가 신라한테 멸망하면서 백제에 대한 기록은 신라의 입장에서 쓰인 게 많은 와중에 사리봉영기는 백제가 기록한 백제시대의 기록이라는 의의도 있는 듯했다. 이 사리봉영기는 발원자, 건립 배경, 건립 시기를 정확히 밝힌 중요한 자료라고 한다.
해설을 끝까지 듣지는 않았지만 중요한 점은 다 들은 듯했다. 그래서 직접 미륵사지 석탑을 보려고 밖으로 나갔는데 백제왕도 핵심유적 발굴조사 현장을 볼 수 있었다. 얼마 전 경주 여행에서도 월성 문화재 조사 현장을 볼 수 있었는데 신기했다. 심지어 구체적인 축조 기법이 발견된 게 처음이라고 하여 기자 분들도 현장을 취재하고 계셨다. 자세한 기사는 아래 링크 클릭!
미륵사지 목탑 기단 축조법 드러났다…"석탑보다 먼저 조성"
차례로 미륵사지 석탑의 동탑, 그리고 소실된 목탑의 터, 서탑이다. 탑들을 보는 것도 좋았지만 뒤에 탁 트인 미륵산이 보이는 것도 너무 좋았다. 나는 목탑이 가장 내 취향인데 목탑이 소실된 것이 너무너무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탑 앞에는 연못이 두 개가 있고 그 근처로 사람들이 많이 앉아 있었다. 역사성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 현대인들에게도 쉼터가 되는 문화재들이 참 좋다.
(한참 전에 종영한 드라마지만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드라마를 볼 예정이라면 피해 주세요!!)
익산 미륵사지 석탑을 보고 어딜 또 갈까 했는데 익산 근처에는 또 볼 만한 게 사실 없었다. 그래서 내가 가고 싶었던 선샤인 스튜디오로 곧장 향했다. 최근에 본 드라마 중에 <미스터션샤인>이라는 드라마를 가장 인상 깊게 봤었기 때문에 꼭 한 번 와보고 싶었다. 드라마가 종영한 지 꽤나 지났지만 여전히 잘 관리되고 있었고, 카페나 기념품점도 운영 중이었다. <파친코>의 일부 에피소드도 이곳에서 촬영됐다고 한다.
가장 먼저 들어가서 발견한 곳은 글로리 호텔이다! 많은 에피소드가 여기에서 일어나는 만큼 가장 스케일이 웅장한 건물이었던 것 같다. 글로리호텔의 간판을 보니까 진짜 내가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2층에 올라가면 드라마 당시에도 PPL을 했던 달콤커피가 운영 중이다. 거기서 밖으로 나가면 이렇게 발코니가 나온다. 극 중 김희성과 최유진이 대화를 나눴던 장면이 떠오른다!
미스터션샤인의 PPL 하면 파리바게뜨와 달콤커피가 떠오를 정도인데 드라마가 종영한 후에도 이렇게 불란셔 제빵소와 달콤커피가 남아 있는 걸 보니 각 기업 측에서는 PPL 진짜 잘했다고 생각할 것 같았다. 알사탕을 입에 넣고 웃는 애신이의 미소가 떠올라요!!!!
또 다리!! 이 다리를 보면 스쳐 지나가는 장면만 진짜 여러 개다. 내가 찍은 사진 중에서는 두 번째 다리 사진이 특히나 마음에 든다.
사실 세트장이라 그런지 어디에 누구의 집이 있는지 파악하기 어려웠다. 처음에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끊으면 지도를 나눠주는데 그 지도를 꼭 참고하면서 돌아다니면 좋을 것 같다 ㅋㅋ
나는 마지막에 동매 집이 어딜까!! 하면서 엄청 찾았는데 바등쪼가 자주 술을 마셨던 식당 건물의 2층이 동매네 집이었다. 나도 동매의 하루를 점쳐주는 호타루처럼 카드를 들고 사진도 찍었다.
세트장을 진짜 곳곳을 봐야 하는 게 나는 이 묘지를 놓칠 뻔했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캐릭터가 유진 초이인데 유진 초이의 무덤이 세트장 입구 바로 근처에 있었다. 그 바로 앞에 전차가 하나 더 있는데 그게 마지막 씬을 찍은 전차라고 한다.
<미스터션샤인>에 대한 여운으로 김은숙 작가님 인터뷰를 진짜 많이 봤는데 일본에게 나라를 뺏긴 후의 의병에 대한 영화나 드라마는 많았는데 뺏기기 전 의병들에 대한 이야기는 없어서 썼다는 집필 의도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미스터 션샤인>을 찍기 위해 1905년 즈음의 조선을 이렇게 세트장으로 만들어 몇 년이 지나도 관광객들이 찾아오고 또 새로운 역사 드라마의 세트장으로 쓰인다는 점이 참 좋았다. 카페에 앉아 찍은 사진을 보면서 배 찢어지게 웃고 집으로 향했다.
이렇게 논산의 선샤인 스튜디오를 끝으로 국내 여행 각 도의 도장깨기 성공!! 파주와 경주 여행, 서울 산책까지 이제 또 부지런히 글 써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