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날, 그 시간 속에서 내가 느낀 서울숲
서울숲을 다녀온 여러 번의 기억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때가 있다. 2020년 6월 어느 날인데 그때는 숲과 공원을 좋아하긴 했지만 지금처럼 열렬히 좋아하지는 않았을 때였던 것 같다. 강남역에서 짧은 볼 일을 마친 후 집에 바로 가기 아쉬워 서울숲 근처의 카페를 갔다가 겸사겸사 서울숲에 다녀왔다.
딸기 음료를 한 잔 손에 들고 서울숲으로 걸어 들어왔다. 봄에 왔을 때는 튤립이 있었는데 여름이어서 그런지 꽃은 많이 없었다.
그날 서울숲에 처음 온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이곳저곳을 둘러보지는 않았고 바로 호수로 향했다. 그래서 오늘 쓰는 이 글에는 다른 곳들이 많이 나오지는 않는다. 하지만 가을을 뺀 봄, 여름, 겨울에 서울숲에 와봤었는데 계절마다, 곳곳마다의 매력이 가득한 곳이다. 그래서 혹시 가보게 된다면 이곳저곳을 함께 돌아보는 걸 추천한다.
혼자 산책 중인 나와 달리 호수 주위로 모여 앉아있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그렇게 앉아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림 속에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앉아 있는 사람들은 그 사실을 모르겠지? 싶었다. 이런 따뜻한 분위기 속에 내가 있는 순간을 누군가가 사진으로 담아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게 일상의 소중함, 행복함을 눈으로 볼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호수 주변을 걸으며 사진을 찍었다. 한 발 내딛고 사진 찍고, 또 한 발 내딛고 사진 찍고. 여름에 나무 근처의 물을 볼 때 가장 짜릿한 점은 물은 파란색이라는 생각의 틀을 깰 수 있다는 점이다. 나에게 여름의 물은 초록색이니까.
그리고 호수를 건널 수 있는 다리에 붙어 있는 이 안내판도 영어로 쓰여 있어서 외국 같은 느낌도 줬다.
내가 이 날 서울숲을 정말로 좋아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바로 이 풍경이었다. 조용한 평화로움. 잔잔한 호수에 짙은 여름의 색은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평화로웠다. 내가 찍은 여러 사진들 중에서 보고만 있어도 너무 좋아지는 사진이다. 절로 힐링!
그리고 다리를 지나 수변 휴게실 커뮤니티 센터 앞에서 이 고양이 세 마리를 본 게 너무 신기했다! 왜냐하면 나머지 두 마리 말고 저 가운데의 어두운 고양이는 2019년에 왔을 때도 봤던 고양이였기 때문이다. 나른하게 자고 있는 세 마리 고양이 너무 귀엽다. 나는 만지지 않았지만 얘네 정말 순했다 <3
그리고 가족마당으로 가는 길. 해가 질량 말랑한 이 시간대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대인데 이날은 어쩜 딱 시간대도 맞춰서 갔는지 모르겠다.
사람들은 이 나무에서 사진을 많이 찍는 것 같은데 난 이 나무보다는
옆쪽에 나란히 서있는 나무들이 더 좋았다. 사실 너무 비슷한 사진이라 한 장만 넣을까 했다가 나무만 있는 사진, 자전거 타는 사람들도 있는 사진 둘 중 하나를 고를 수 없어서 둘 다 넣었다.
이 날의 기억이 너무나 좋아서 그 이후로도 서울숲을 방문했다. 날짜를 잘못 고른 탓일까, 사람이 많았던 탓일까, 아니면 서울숲이 변한 탓일까 이날의 기억만큼 좋은 느낌을 받진 못했다. 그게 못내 아쉬웠고 그래서 지금은 서울숲을 자주 가지 않지만 그것 또한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날씨, 계절, 시간, 사람 모든 게 모여 그 분위기와 그 찰나를 만들어내는 거니까. 그래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곳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자연 속으로 간다는 것은 단지 그 장소에 가는 것이 아닌 것 같다. 보다 복합적이다. 앞서 말한 날씨, 계절, 시간, 사람 그리고 결정적으로 '나'라는 사람이 그날의 느낌에 영향을 미친다. 내가 어떤 마음인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나의 상태에 따라서도 다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날 서울숲을 걸었던 나는 미묘하게 좋은 기분의 상태였다. 그날 강남역에서 봤던 면접의 분위기가 좋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때 실제로 느꼈던 기분보다 서울숲을 더욱더 좋게 기억하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