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는 한 시간이 더 멀다

시골 기록

by 지온

언니와 동생이 오늘 갑자기 만나기로 했다는 말을 들었다.

태어난 지 아직 100일이 안된 조카를 데리고 바람 쐴 곳을 찾다가 그저 가볍게 잡은 약속이라고 했다.

차로 한 시간이 걸리지 않는 도시에서의 거리는 당일 아침에 잠깐의 고민으로 내릴 수 있는 이동 거리이다.


'세 자매 사이가 정말 좋다'라는 말이 당연했던 것도 내가 아직 도시에 남아있었을 때의 일이었다.

홍천은 경기도를 벗어나 강원도로 넘어가지만, 운전하면 두 시간에서 두 시간 반이면 올 수 있는 거리다.

하지만 시골에서의 한 시간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어렴풋이 이해하게 할 만큼 같은 시간도 훨씬 길게 느껴지게 한다.

간단히 말해 시골은 무조건 멀게만 느껴진다.


아직 가끔은 눈발이 날리지만 땅이 질퍽해질 만큼 날씨가 풀린 요즘, 올해 농사를 시작하기 위해 찌뿌둥한 몸을 억지로 삐걱대며 바쁘게 움직였다. 몸을 아무리 바쁘게 움직여 봐도 단순노동으로 이어지는 농사일에 머릿속이 또 복잡했다.


'나도 귀농하지 않았으면 언니, 동생이랑 자주 만났을 텐데'


귀농한 지 3년째.

부모님의 도움으로 비교적 일찍 독립을 준비하며 어엿한 농사꾼이 되어가고 있다.


사실 귀농을 결심하기 전까지 나는 아주 평범한 도시 직장인이었다. 한참 직장 내에서 자리를 굳히고 있는 시점에 내린 결정이라, 많은 우려와 반대에 부딪혔다.


취업 준비하던 시절, 아직 잘 알지도 못하는 회사의 비전과 미션을 찾아가며 마치 그것이 나의 목표인 양 자기소개서에 떡하니 적었었다. 벌써 10년 정도의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어디서 본듯한 비전과 미션 어렴풋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번에는 입사를 위한 비전이 아닌, 퇴사를 위해 사람들에게 애매하고 허황되게 비전을 떠들어댔다.

그 당시 패기는 내 선택의 합리화를 위한 변호였다. 내심 그들이 맞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그 두려움을 나 자신에게조차 들키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마음을 독하게 먹고 농사짓는 시골 아줌마가 되었다.


일자리가 없는 지방은 지역의 소멸 위기를 겪고 있다. 홍천도 일자리가 많지 않아 젊은 사람들의 유입이 없는 편이다. 하지만 나는 돌아올 곳이 있었기에 홍천에 새롭게 정착하는 것에 망설임이 없었다.

젊은 사람들의 유입 자체도 적은 상황에 농사를 짓겠다고 오는 귀농인은 귀촌인에 비해 더 적었다. 나와 남편은 그 덕에 동네 어르신들의 관심과 도움을 받으며 주목받는 청년 농부가 되었다. 홍천에서의 시골 생활은 나름 자리를 잡아갔고, 힘들게 일하지만 '나의 일'이라는 점에서 우리는 에너지를 아끼지 않았다.


한도 없이 흘러넘치던 에너지가 어느 날 갑자기 사소한 일상에서 방전이 되어 버리기도 한다.


퇴근길에 카페에 들러서 괜히 여유를 부려보거나, 살 것도 없으면서 백화점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층층이 올라가며 물건을 구경하던 일.

아무 생각 없이 걷다가 유리창 너머로 맛있어 보이는 빵을 발견하면 충동적으로 잔뜩 사 들고 집으로 돌아가던 일.

그런 아주 사소한 일상들이 떠오를 때가 있다.


월급은 받지만 회사 대표를 위해 일한다는 억울함에, 스스로에게 내렸던 소소한 상들이었다.

모든 원인과 결과가 온전히 나를 위한 일을 할 때, 우리는 소소하지 않은 결과로써 그 보상을 받고 싶어 한다.


농장의 공기를 비트로 쪼개는 소위 노동요가 흥 넘치게 울려 퍼지고 있지만, 울적한 마음은 나의 표정으로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언니가 오늘 동생 집에 놀러 간 데. 나도 시골로 안 왔으면 더 자주 만났을 텐데"


누군가에게 '너 때문이다, 책임져라, 보상해라' 하고 따지고 싶지만 그 누군가가 나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는 시무룩하게 남편에게 하소연했다. 공감에 서툰 남편이지만 내가 종종 이렇게 가라앉는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나름의 애를 써 나를 위로했다.


"그래도 좋은 점도 있어. 엄마, 아빠 많이 만나는 거"


너무나 반박할 수 없는 귀향, 귀촌, 귀농의 장점이기에 그저 웃음이 나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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