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고 어두운 바다

침잠_잊혀짐 속에서의 치유

by 지온

“다 때가 있다.”

스무 살 무렵엔 이 말을 한 번도 믿지 않았다.

그저 모든지 열심히 하면 된다고 생각했고, 타이밍이나 계절 같은 건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그러다 서른을 넘긴 어느 날, 아주 드물게 그 ‘때’라는 것을 몸으로 체감하는 순간이 찾아왔다.


회사에서는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나를 양보하며 지냈다.

하지만 무례해지는 요구는 점점 늘어났고, 어느 날 문득 나는 한계를 느꼈다.

평소 같으면 넘겼을 말 한마디에, 또는 그냥 참고 흘렸을 상황에서, 이번엔 이상하게도

‘다들 너무한다’는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인생에 몇 번 없는, 잊히지 않는 순간이었다.


모든 걸 내려놓고, 고요히, 아주 조용히 가라앉고 싶었다.

사람들과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늘 나를 부력처럼 수면 위로 떠오르게 만들었다.


그 시절, 나에게 직업은 곧 정체성이었다.

회사를 그만둔다는 건 나라는 존재 자체를 잃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나는 나를 잃었지만 방황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아무 말없이 가라앉았다.


하지 않아도 되는 일들을 하지 않고,

아무런 해답을 찾으려 애쓰지 않으면서

나는 천천히 나를 쉬게 했다.

커피를 마시고, 햇살을 느끼고, 걸었다.

그저 자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일상에 나를 맡겼다.


수면 위에 있던 사람들이 나를 잊는다고 해도 어쩔 수 없었다.

부서진 산호의 잔해처럼

빛이 닿지 않는 가장 깊은 곳까지 나를 가라앉혔다.

상처받고 부서진 나를,

내가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장소까지.

살아남기 위해.그리고 언젠가는 바닥을 딛고 다시 떠오르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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