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로 떠나는 여행 - 산티아고 순례길
스물다섯 살의 배낭여행, 2019년도 산티아고 순례길 여정을 정리한 글입니다.
저만의 여행기가 차곡차곡 쌓여 한 권의 책이 되는 그 날을 꿈꾸며, 오늘도 씁니다.
산티아고 16일 차 : Boadilla del Camino - Carrion de los Condes (24.6km)
와, 하늘빛 대박이다. 분홍과 붉은빛 사이의 신비로운 색에 잔잔한 강물까지, 마치 다른 세계의 풍경이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다. 게다가 자욱하게 깔린 안개와 착 가라앉은 분위기가 몽환적인 느낌마저 더해준다. 이건 남겨야지, 홀린 듯이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순간의 냄새, 분위기, 감정 모두 카메라에 쏘옥 담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조금 더 생생히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은 마음에 온 감각을 총동원하기 시작했다. 눈을 한껏 부릅뜨고 강, 색색깔의 나뭇잎들, 한껏 센티함을 일으키는 옅은 안개, 왁자지껄한 웃음소리, 그리고 살포시 맺혀있는 이슬까지. 괜스레 냄새도 한 번 맡아보고. 어제 프로미스타까지 갔다면 보지 못했을 풍경이었을 텐데 참 다행이다.
노래가 빠지면 섭섭하지.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가니까 일단 신이 난다. 나름의 춤도 추며 신나게 걷다 보니 웃음이 계속 났다. 긍정 에너지가 온몸으로 퍼져 발걸음이 한껏 가볍다.
음악은 묘하다. 순간에 좀 더 빠져들게 하고, 그 시간을 더 특별하게, 빛나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감정들을 극대화시켜 한없이 신이 나기도 하고, 때로는 노래 한 소절에 눈물샘을 쏟기도 하기 때문이다. 감정의 버튼을 이토록 한순간에 컨트롤할 수 있는 건 음악이 가진 가장 큰 힘이 아닐까.
오늘 썬 오빠와 쑥 언니의 치킨마요는 정말 맛있었다. 정말 맛있게 먹고 1인당 2.5유로라니. 이런 때에 보면 슬프지만 순례자 메뉴가 그리 싸지만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매 끼니마다 생각하는 거지만 너무 잘 먹어서 걱정이다. 걸어서 그런 거라고 오늘도 합리화를 해본다. 그래, 가장 큰 삶의 낙을 어찌 모른척하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