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Paris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산티아고 순례길

by 땡그리

스물다섯 살의 배낭여행, 2019년도 산티아고 순례길 여정을 정리한 글입니다.

저만의 여행기가 차곡차곡 쌓여 한 권의 책이 되는 그 날을 꿈꾸며, 오늘도 씁니다.




비행기에서 내린 지 40분. 여전히 공항이라니. 애증의 유심... 설명서에 적혀 있는 대로 했는데 왜 이리 말썽인 걸까. 다섯 번을 껐다 켜기를 반복하니 그제야 제 기능을 한다. 읏차. 짐을 다시 챙겨 들고 호기롭게 일어나긴 했는데... 공항 한 번 넓다. 주변을 보니 사람들은 없고 어디로 나가는 거지. 사람들을 찾아 걸어 나가다 보니 다행스럽게도 직원을 찾을 수 있었고 버스 타는 곳이 어디인지 물어보았다. 거의 끝까지 쭉 가야 한다고 해서 우선 알려준 쪽으로 가고 있긴 한데 도대체 어디까지 가야 하지. 버스정류장이라는 표지판이 있어서 여긴가 하고 올라갔는데 사람들이 꽤 서있다. 이쪽인가 하고 가만히 10분 정도를 서있다가 왠지 이곳이 아닌 것 같은 느낌에 내려와서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어디로 가야 하지 고민하고 있는 찰나 한 직원의 도움으로 찾고 있는 버스정류장으로 갈 수 있었고 알고 보니 가장 먼 터미널이었다.


게스트하우스까지 가는 방법을 쓱 봤을 때 메트로는 복잡해 보이고 버스는 괜찮아 보였는데. 정류장 찾기부터 삐걱거린다. 다른 정류장에서 다시 제 정류장을 찾아가는데 기력을 다 쓴 느낌. 그래도 제 정류장에 도착하고는 버스가 빨리 와서 목적지를 말하고 올라탔는데... 웬걸. 그 사이 경로가 바뀌었다. 한 번에 갈 수 있어서 버스 탄 건데. 버스 노선도가 바뀔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원래 걸리는 시간보다 30분 이상은 더 걸렸지만 별 수 있나. 이왕 타는 거 가는 동안이라도 실컷 바깥구경이라도 해야겠다. 공항을 나오고 다양한 사람들이 타고 내리는 걸 보고 있자니 조금씩 프랑스에 있다는 사실이 실감이 나는 것 같다. 바깥을 보며 여유를 잠시 즐기다, 갈아타는 역을 놓칠세라 버스가 멈출 때마다 밖의 정류장을 보면서 계속 확인했다.


다음 정류장을 알려주는 게 이렇게 편한 거였구나.


우리나라에서는 당연한 그 서비스가 조금 그립다. 지금 멈추는 이 곳이 어딘지 다음 정류장은 또 어디인지 도통 알려주지를 않으니 한시도 긴장을 놓을 수 없다. 눈에 힘 빡주고 두리번거리며 여러 정류장을 지나다 보니 갈아탈 곳에 도착했다. 내려서 다른 정류장으로 걷다 문득 주위를 둘러보니 흑인이 대부분이다. 정말 많다.


내가 그들이 생소한 것처럼 그들도 작은 동양인 여자가 큰 배낭을 들고 걸어가는 게 신기했나 보다. 하지만 흘끗 보는 시선을 제외하고,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달갑지 않은 한 두 마디가 여유롭게 걷던 발걸음을 재촉하게 만들었다. 생각지도 못한 추위에 벌벌 떨며 기다리다 보니 곧 버스가 왔다. 퇴근시간인가. 파리도 우리나라와 비슷한 6시 정도가 되니 도로에 차가 꽉 찼고 사람도 많이 타고 내렸다. 밖을 구경하다 보니 어느덧 게스트하우스 근처 정류장에 도착했다.


버스 로얄석에 앉아 파리 거리 구경


흐음. 이제부터 새로운 긴장 모드다. 홀로 여행을 떠나기로 한 뒤로 제일 걱정한 부분은 길 눈이 어둡다는 점이었다. 결국 걱정을 뒤로한 채, 정 안되면 사람들한테 물어보면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떠나왔다. 자 가볼까. 구글 맵을 켜서 내 위치와 도착지를 입력까지는 했는데... 이게 어디로 가라고 하는 거지? 시작이... 불안 불안하다. 내 위치를 보니 조금 알 것 같기도 하고 다시 보니 잘 모르겠다. 맞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계속 걷다가 보니 이쪽이 아닌 거 같기도 하고. 맞게 가고 있는 건지 아닌지 혼란스럽다. 이 화살표는 왜 자꾸 움직이는지 당황스럽다.


이대로 계속 걷다가는 너무 늦어질 텐데. 주위를 둘러보다 지역 토박이? 느낌이 나는 아저씨가 보여서 길을 물었는데 잘 모르는 거 같다. 뭔가 열심히 알려주려고 하는 것 같긴 한데 길을 모르신다. 별로 상황이 나아질 거 같지 않겠다는 감이 스물스물 와서 감사의 인사를 하고 다시 길을 찾아 나섰다. 한 시간을 넘게 돌아다니다 보니 뭔가 길이 익숙해지는 느낌인데. 왠지 갔던 곳을 계속 다른 방향으로 돌고 있는 것 같은 불길한 느낌이 든다. 그러다 문득 유럽에는 소매치기가 많다는 말이 생각났고, 혹시나 핸드폰을 놓칠세라 꼭 붙잡아 들고 길 한 번 보고 다시 넣고를 반복했다.


갈팡질팡하기를 여러 번, 그런 모습을 보고 안쓰러웠는지 길에 서 있던 한 아저씨가 와서 도와줄까 하더니 옆에 있던 동료와 함께 같이 지도를 봐주셨다. 아저씨가 길을 보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이야기해주시는 것 같은데 듣는 내내 무슨 말일까... 알고 싶었다. 타 다다다 말하는 아저씨의 말을 반도 못 알아 들었지만 걱정해주는 따뜻한 마음 덕에 웃음이 나왔다. 서투르고 어색하지만 merci(감사합니다)를 하고 다시 길을 찾아 나섰다. 이제 배터리도 없어서 얼른 찾아야 할 텐데. 아무리 봐도 간판이 보이지가 않는다. 도대체 어디 있다는 거지. 계속 길을 찾다가 잊고 있던 게스트하우스 주인에게 온 카톡을 보고 아차 했다.


간판이 없고 위에 번호가 쓰여있다고.


주인이 알려준 곳이 눈에 익어서 주변을 둘러보니 같은 곳을 빙빙 돌았던 곳에 작게 써져 있는 번호가 보였다.

거의 두 시간 가까이 헤매다가 찾은 게스트하우스. 근처에 내렸다고 한 게 한참 전인데 소식은 없고, 걱정돼서 나가서 찾을 생각을 하고 계셨다고 한다. 7시 정도에 도착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느덧 시간이 9시가 넘었으니 걱정하실 만도.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안도감에 알게 모르게 쌓였던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많이 걸었더니 발뒤꿈치도 아프고 눈꺼풀도 무거웠지만 어떻게 온 파리인데. 이렇게 잘 수는 없지. 에펠탑은 꼭 봐야지 싶어 곧바로 경량 패딩만 꺼내 입고 다시 나갈 준비를 했다. 다행스럽게도 게스트하우스에 있던 다른 사람들도 나갈 생각이라고 해서 같이 우버를 해서 나가기로 했다. 우버를 타니까 금방이었다. 가는 길에 기사 아저씨의 안내로 짧게 파리를 구경하다 보니 어느덧 에펠탑이 보이기 시작했다.


파리에서 1일 1 에펠탑을 하라고 하는 이유

우와 와... 감탄사가 계속 나왔다. 택시 안에서 잠깐씩 보일 때도 좋았지만 나와서 실물로 전체의 에펠탑을 보니까 더 장관이다. 주황색으로 다시 노란색으로 빛나는 에펠탑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하루의 피로가 치유되는 느낌과 함께 마음속의 낭만이 꿈틀거린다. 시간을 잘 맞춰갔더니 하얀색으로 반짝거리는 에펠탑도 봤다. 에펠탑을 가만히 보고 그 장소에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에펠탑만 보자고 하고 나왔는데 막상 나오니까 다들 들어가기 아쉬운 눈빛. 센 강부터 개선문까지 걷기로 했다. 못 볼 줄 알았는데 에펠탑도 보고, 센 강도 걷고, 개선문도 보다니. 너무 감격스러워서 눈에 담고 또 담았다. 걸어서 샹젤리제 거리까지 클리어하고 나니 체력이 방전이다. 다시 우버를 해서 숙소에 돌아오고 나니 그동안의 긴장이 풀리면서 몸이 축 늘어졌다.


우여곡절 끝에 닿은 파리는 신선한 충격의 연속이었다. 얼굴, 피부색, 옷 입는 스타일, 그리고 키우는 강아지 종류조차도 모두 다양했다. 개인의 다양성과 개성이 정말 중요해 보였고, 각자의 방식으로 그것을 표현하는 것이 참 자연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한국은 나 여기 있어요 하고 가게도, 집도 간판이나 이름이 크게 써져 있지만 파리는 길 따라 건물이 나열되어 있고 작게 번호로 건물이 표시되어 있었다. 하지만 여기에서 가장 신기했던 것은 산책을 하다 서로 마주친 개들이 안 짖는다는 것이었다. 웬만하면 짖지 않고 길을 가다가 다른 강아지를 만나도 의젓하게 지나가는 걸 보니 더욱 신기했다.


낯섦과 새로움에 마주하기 시작한 첫날, 많은 일이 있었다. 시간은 좀 걸렸지만 유심도 제 역할을 했고, 길도 결국 찾았고. 버스도 잘 갈아탔고. 여러 시행착오들로 인해 몸이 고되긴 하지만 최선을 다해 해냈기에 마음만큼은 기쁘다. 하루 끝에 느껴지는 해냈다는 작은 성취감, 그리고 묘하게 느껴지는 뿌듯함에 웃음이 절로 나기도. 2박의 일정이 급박한 1박으로 마무리되는 일정이라 조금의 아쉬움이 남긴 하지만 이 아쉬움이 언젠가 다시 파리로 이끌겠지?


짧지만 강렬했던 파리, 잠시만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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