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ulla Sep 26. 2019

이동거리와 에너지에 대한생각

하루 왕복 88km의  3년이 나에게 준것

특목고에 진학하게 된 바람에 이동하다가 지옥을 맛봤던 3 년이 있었다. 부모님과 미술학원 원장 선생님의 pick으로, 예중이 없으며, 서울에 있는 덕원 예술로 진학하게 됐다. 스쿨버스가 있었는데, 그래서 더 진이 빠졌던 3 년이 만들어준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수유동 - 화곡동은  왕복 62 km, 아멀다  

하교 버스는 없는 날도 많았다.  

압구정이나 홍대의 학원을 들리면 하루에 78km 정도를 이동했다.

이건 아니다 싶었지만, 힘들게 준비해서 합격한 학교라 포기할 수가 없었고 덕분에 헬게이트가 열렸다.



강북구 수유동에서  덕원예술고등학교로 가는 스쿨버스 루트
강북구, 성북구, 서대문구, 마포구, 영등포구, 양천 구를지나 강서구 화곡동

                     서울특별시 강서구 내발산동 산 59-2



아침마다 2000년 서울의 5개 구를 통과했다. 통학을 했다. 내가 학교 다니던 20세기 말에는 토요일까지 통학을 했으니. 1주일이면 이동거리가 60km x 6 = 360 km 정도. 스쿨버스를 탄다고 해도 결코 가까운 거리가 아니었고. 차멀미가 심해서 버스에서 책은 못 읽고. 풍경을 관찰하고 CDP속의 조성모, MAX5 컴필레이션 앨범과 창밖의 풍경을 TV삼아 길고 지루한 길을 버텼다.


그 시절 풍경을 보고 간다는 건 엄청 지루함일이었다

생각보다 개발된 곳이 많지 않았다


신도림역의 대성연탄공장을 기억하는지. 2000년 신도림역의 외,내부

당시 지하철역


우장산역 주변의 논밭


2000년 - 2003년의 우장산역 근처에는 논 밭이 많았다. 우장산역 주변에는 높은 건물도 없어서 당시에는 도시에서 시골로 통학하는 기분이 들었는데 초반엔 그 설렘이 참 좋아서 힘든 줄을 몰랐다.  가끔 논에서 쥐불놀이도 했다. 그 시절 강서구 화곡동은 영화 <버닝>의 감각적인 한 장면처럼 논밭과 불, 해 질 녘의 어둠.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논 뷰를 어디서든 볼 수 있었다.

지금은 마곡지구가 되었다.


장거리 통학생은 그 설렘을 유지하며 덜 지치기 위한 다양한 경로를 개발한다.



- 빠른 A 코스

- 조금 먼길을 돌아가는 B코스

- 자연경관을 즐길 수 있는 한강 C 코스

- 친구네 집을 들렸다가 갈 수 있는 D코스


그러다 1년이 지나면 A코스로만 다니게 되는데, 버스 안에서 할 수 있는 다양한 즐거운 거리를 찾는다.

장거리 통학을 하는 건 고됐지만 지금 나에게 남겨준것들이있다.

그때 다녔던 서울의 구석구석은 도시 탐험을 잘하는 작가로 남게 해 주었고,

절대로 목적지에서 멀리 않을 거라는 인생의 모토를 주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몰랐지만, 하루 이동시간이 길다는 건 에너지와 심리상태에 영향이 크다.

학교에 놀러 가는 설렘으로, 통학시간은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괜찮게 보냈지만. 문제는 결국 '해야 할 일'을 해야 할 시간이 부족해진다는 것이 그때의 문제였다.

 

한 번도 가벼운 몸으로 살아본적이 없어서 내 몸이 무거운지를 몰랐다. 왜 공부를 못하는지 몰랐다. 그 3년 동안 집에만 오면 벌어졌던 부모님과의 전쟁이 통학으로 인한 에너지 없음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재수할 때. 노량진까지 이렇게 빨리 도착이 가능하고 그날 하루 몸이 가볍다는 걸 인식했을 때. 나의 무지에 벼락을 맞은 기분이었달까


통학시간 왕복 2시간 50 분

하루 깨어있는 시간의 20% 정도를 가만히 있게 된다. 남들도 조금은 이동을 할 테지만

왕복 50 분인 아이들을 기준으로 비교해보면


주당 10 시간 , 월간 40 시간, 연간 480 시간 = 1500시간


고교생활 3 년이면 거의 1500 시간 정도의 차이가 난다. 고등학교 3년, 1500 시간은 학업량에 어떤 영향을 줄까? 짧은 시간에 지식의 습득량을 배틀 해야 하는 중간, 기말고사에서는 시간싸움에서 도저히 당해낼 제간이 없다. 나의 경우, 하루의 많은 시간을 지쳐있었던 것 같다. 학교에서야 같은 시간을 보내지만 문제는 집에서 일어난다. 물리적인 시간의 부족은 삶에서 한 부분 정도는 빼야 밸런스를 유지할 수 있다. 하루에 할당된 청소를 덜 한다던가, 씻는 걸 포기한다던가. 쉬는 시간을 포기한다던가. 공부할 시간을 포기해야 한다. 결과는 재수로 이어졌다.


에너지의 총량은 공부, 이동, 휴식과 나누어 쓰기 힘들다. 그릇을 만들기 위해 썼던 흙을 도자로 만든 뒤에는 다른 것으로 만들어 쓸 수 없다. 이동은 무언가를 '하는'시간에 포함되는 에너지를 쓰게 된다. 어쩌다가는 컴퓨터를 보고 책을 보겠지만 아쉽게도 생산성 있는 일은 할 수 없다.


고등학교 친구 G는 부모님과 마찰을 줄이기 위해 청소를 하느라 공부를 포기했다. 본인은 공부와 안 맞는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G는 꽤 똑똑한 친구였다. 다만 공부를 할 환경 (물리적 시간의 부족)이 아니었다는 것을 집에서 가까운 대학에 진학한 뒤 깨닫게 되었다. G 이외에도 장거리 노선버스를 타고 다녔던 친구들은 대부분 재수를 했고, 재수의 결과는 다 좋은 편이었다. 그렇게 학군이 좋은 지역의 집값만 나날이 오른 것이겠지.

 

혹시 지금 장거리 이동을 하고 계시는지.?

 (https://www.yna.co.kr/view/AKR20171116148800797)

로버트 롱고의 작품을 패러디한 <직장인의 위치이동 에너지 삽화>

혹시 장거리 출퇴근을 하고 계시는지. 통근의 거리가 먼 것이 인생이 한 부분을 Break apart 하고 있는데 그 원인을 모르고 있는 건 아닌지 한번 생각해보는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늦어진 1년의 시간과 재수 비용을 쓰고. 3년 동안 피로에 절어가며 에너지를 낭비했다. 부모님과의 마찰에도, 그땐 더 참을 수 있는 에너지가 없었다. 인내심 임계치를 이동에 다 써버리니까.


아 나의 잃어버린 시간아. 이미 지나가버린 것을 어쩔 순 없겠지만 이 경험과 깨달음은 앞으로도 오랜 시간 나의 지표가 될 것 같다. 모든 장거리 이동자들이 저와 같이 느끼진 않을 겁니다. 하지만 다른 일을 할 여력이 없고, 본질에 집중을 못하고 있다면 한번 위치 이동 에너지를 너무 많이 쓰고 있는 건 아닌지 점검을 해보는 게 어떨까.


1년 왕복 이동 차비와 에너지,

1년 재수 학원비+ 생활비 = 1700 만원 ( 2003년 기준)

1년 사회생활 늦음 / 1년 휴학할 수 있는 시간을 놓진 / 1년 더 방황할 수 있는 시간을 재수로 날림 등



*본인의 경험을 토대로 작성되었습니다. 일반화에 주의하시길 바랍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