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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BI Sep 30. 2015

인간은 강물과 같은 것일까.

짧은 단편

"며칠간 햇빛을 못 봐서.." 

왜 출근을 하지 않느냐고 묻는 그에게 그녀는 그렇게 내던지듯 답했다. 그래, 집엔 햇빛이 들어오는 창문이 없지. 그는 끄덕였다. 요 며칠 낮이라고 보기엔 어두운 나날이 지속되었다. 단순히 흐리다고 보기엔 어둡다는 표현이 정확하겠다. 저기압에 모두들 아침에 일어나는 것을 더  어려워하고, 낮도 활기차지 못하다는 건 그도 다 안다. 그래도, 그렇다고 그런 이유로. 그때처럼 단순 무기력증이겠지. 


피상적인 관계들은 딱 그만큼만  주고받으면 좋은데, 그런 관계들이 끊임없이 옥죄면 결국 작은 일에도 지치는 법이다. 특히 나 같은 인간은 말이다. 나중엔 대답해주는 것마저 지치고 만다. 소히 영혼 없는 대답을 내뱉게 되고, 그것마저도 꽤나 큰 에너지 소모를 불러일으킨다. 그래, 그러고 보니 혼자 있었던 적이 언제였더라. 그렇게 홀로 잠시라도 시간을 보낸 적이 언제였지. 그녀는 원인을 찾아 꼬리에 꼬리를 물며 생각을 키웠다. 


일곱 번째 카톡을 보내고, 그는 전화를 걸기로 한다. 역시나 받지 않는다. 예전 잠수를 타 버려 속을 태웠던 그때가 떠올랐다. 무슨 일이 생긴 줄 알고 혼자 걱정하고 난리 쳤던 것만 생각하니 다시 열이 솟구칠 것 같다. 그래, 4시까지는 기다려보자. 


그때였나 보다. 모든 것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다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던 감정들은 어느새 다른 에너지로 모두 소진되고, 그렇게 수분이 다 탈탈 나간 어떤 마른 것이 되어있었다. 나에게 수없이 말을 시킨 누군가들에게도, 또 햇빛 한 줌 보지 못했던 지난날들에 게도 탓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기계 같지 않은 내 몸을 탓하겠는가. 어쩌겠는가. 스스로 원인을 찾고, 방법을 찾기 전까진 말을 아껴야 한다. 


저녁에 들어왔을 때 난 꽤 취해있었다. 그녀는 다행히 기분이 좋아 보인다. 


그 다음날부터 이불에서 나오지 않았다. 잠이야 마음만 먹으며 다시 잠들 수 있는 쉬운 것이었다. 그렇게 잠들면 모든 것들이 잠시 off 된다. 오프 되는 그것들의 시간을 점차 연장시키는 작업만 오후까지 반복했다. 그러다 도저히 배고픔을 참을 수 없을 때 겨우 빠져나왔다. 어젯밤 어질러진 그것들 사이로 밥을 챙겨먹겠다고 계란 프라이를 부치고, 밥을 푸는 나의 모습은 별로 낭만적이지 않았다. 삶이란 게 그렇게 항상 낭만적이지 않다는 걸 알지만, 홀로 느낄 때 만큼은 더 싫은 법. 그런 기분을 몰아내듯 문학동네 팟캐스트를 나직이 틀었다. 


'가장 널리 알려진 미신 중 하나는 인간이란 저마다 고유한 특성을 지니고 있어서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으로 똑똑한 사람과 멍청한 사람과 열정적인 사람과 무딘 사람으로 나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우리는 한 사람에 대해 말할 때, 악하기 보다는 선할 때 가 더 많고 멍청할 때 보다는 똑똑할 때가 더 많고 무딘 때보다 열정적인 때가 더 많다고 말해야 한다. 반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에 대해서는 선하고 똑똑하다고 말하고 또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악하고 멍청하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옳지 않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언제나 사람들을 그런 식으로 분류한다. 그것은 잘못된 일이다. 사람은 흐르는 강물과 같다. 강물은 어디에 있든 언제나 같은 물이다. 다만 강은 어떤 곳은 좁고 물살이 빠르고 어떤 곳은 넓고 물살이 느리며 어떤 곳은 맑고 어떤 곳은 흐리며 어떤 곳은 차갑고 또 어떤 곳은 따뜻하기도 하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모두 인간의 특성을 맹아처럼 품고 있어서 어떤 때는 이런 특성이 어떤 때는 저런 특성이 튀어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같은 사람이라도 본디 모습과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보일 때가 있고 몇몇 사람들은 이런 변화가 급격하게 일어나기도 한다. 레흘류도프도 그런 유형이었다. 그의 변화는 육체적인 변화에서 비롯하기도 했고 정신적인 이유에서 비롯하기도 했다. 그런 변화가 그의 내부에서 지금도 일어나고 있었다. ' 


부활의 한 부분이었다. 그래, 사람은 흐르는 강물과 같다. 지금의 나는 좁고 물살이 빠른 어떤 곳을 자의가 아닌 타의로 휘몰아치고 있을 뿐. 그러니 그렇게  다급해할 필요도 슬퍼할 필요도 없다. 위안을 얻는 시간이 고작 그 글이 흘러나오는 1분이었다 하더라고, 그녀는 잠시라도 안도할 수 있었다. 그 다음  날부터 궁금하지 않은 사람들의 사이를 빠져나왔다. 비스듬히 빗겨 나 토해내는 말들을 멀리서 바라보았다. '너넨 언제 도대체 혼자있니' 


며칠에 걸쳐 대화하고 싶지 않음을 밝힌 그녀는 다시 돌아왔다. 그래, 단순 무기력증이었던 거겠지. 담배를 탁탁 털고, 웃으며 집으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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