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ABI Nov 11. 2015

그런 저녁이다.

서른 하나에 가끔 후회되는 일 중에 일 순위를 꼽으라면 십대 시절 글을 하나도 남겨놓지 않았다는 거다. 그 시절 가끔씩 무언가를 끄적거리긴 했는데, 꼼꼼한 성격이 아닌지라 이 노트 저 노트에 옮겨 적다 보니. 또 이사를 하도 많이 다녀서 이노트 저 노트를 모두 들고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결론은 하나도 없다는 거다. 

십대의 일을 떠올리며 글을 쓸 순 있지만, 그때의 내가 아니니. 추억과 상상과 조금의 과장이 섞인 글이 나올게 뻔한데. 그게 좀 싫단 말이다. 어느 날 88년생의 시를 보면서, 시 자체보다 그니깐 쓸 수 있는 그 나이의 시여서 부럽다고 생각했다. 요즘 20대 작가가 귀하다고 한다. 옳거니 하고 쓰려고 보니 내가 벌써 서른하나네. 그때의 난 '글 쓰고 싶다'는 마음만 앞세워 단 세줄도 다 채우지 못하는 겁쟁이였다. 무엇이 나를 그렇게 추춤하게 만들었을까. 뭐 그렇다고 지금의 내가 요이땅 하면 A4 4~5장을 아무렇지도 않게 채우는 경지에 올랐냐 하면 그건 아니다. 십 년 후의 내가 또 지금의 나를 떠올리며 후회하고 있을까 봐 이렇게 맥주를 마시면서 마음에 내키지 않지만 남겨본다. 여기까지 써놓고 지운 글이 아마 이번 해만 백개는 넘을 껀데, 아직도 무엇을 쓰고 남겨야 할지는 잘 모르겠다. 근데 하나 확실한 건, 예전의 내 생각이 무척이나 궁금하다는 것. 사회를 바라보는 눈이나, 현실을 바라보는 눈. 같은 거.  


요즘 꼭 챙겨보는 글은 GQ의 '장우철' 에디터 글인데. 뭐랄까. 잡지를 읽는데 소설을 읽는 것 같고, 물건을 설명하는데 시를 읽는 것 같아서 신기해서 자꾸만 찾아보게 된다. 어쩌면, 난 이런 글이 쓰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현실과 동떨어지지 않은 대신 조금은 더 아름답고, 빈틈 사이에 껴있는 그런 순간들을 포착하는 글 말이다. 


'책임감'이라는 단어가 아침에 일어나는 순간부터 가슴을 짓누르는 요즘, 유일한 낙은 글을 쓰는 것인데. 그것 또한 제대로 못하고 있어 바보같이 대상이 없는 화냄만 지속하고 있었다. 사회를 보면 너무 어지럽고, 죄다 이익 다툼에, 모두 서로가 갑이길 바라는 이 시대를 제 정신인 상태로 견디는 것 자체가 약간 더 이상한 게 아닐까. 그러면서 스스로 위로도 해보고 한다. 그런 저녁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난 그런 대화를 사랑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