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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BI Apr 22.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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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영원성과 사랑의 덧없음 사이



난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시몽을 만났다. 식당 포스기에 서서 새벽 1시까지 일을 할 때도 시몽은 내 곁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시몽을 조용한 곳에서 만날 때면 바흐의 Sciliano를 되도록 들었다. 이 곡은 쓸쓸한 그를 무척이나 닮았다. 


39살 폴 곁에는 오랜 연인 로제가 존재했다. 그들은 서로를 충분히 사랑한다고 여겼으며 충분히 행복하다고 여겼다. 그러다 어떤 의문이 찾아들어도 서로가 만나는 저녁이면 서로의 체취를 맡으며 안심했고, 저녁을 먹고 춤을 추며 안도했다. 


그러다 시몽이 폴의 인생에 나타났다. 시몽이 나른하게 일어나 폴을 쳐다보던 모습을 묘사하던 글은 어딘가 섹시하면서도 나른했다. 그때부터일까. 폴의 곁을 서성거리는 시몽이, 나의 곁도 계속 서성거렸다. 


사랑일까. 폴은 오랜 연인 로제를 옆에 두고 시몽을 밀어냈다. 풋내기의 어설픈 감정이라고 판단했다. 그 사이 로제는 안전된 폴의 생활과 사창가의 여자들을 번갈아 만나며 긴장감을 즐기고 있었다. 


시몽은 그 사이에서 부서졌다가, 다시 세워지고, 다시 뭉개졌다가, 가끔씩 폴을 향해 웃곤 했다. 


사랑의 영원성, 사랑의 덧없음. 

폴과 로제, 시몽. 그들의 관계를 통해 보여주는 사랑의 다양한 모습. 혹은 39살의 여자가 스스로 정의 내리는 사랑의 관계. 결국 익숙한 것이 답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돌아가버리는 폴. 우리가 사회에서 '익숙하다'라고 느끼는 모든 것들에 질문을 던져본다. 


이 책은 단순히 사랑을 하던 여자가 젊은 남자와 바람을 피우는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다. 



+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을 읽다가 시몽을 마주쳤다. 


‘지성은 본질적으로 과장된 표정으로 나타나기에 어느 얼굴에서든 그 얼굴의 조화를 무너뜨리는 법이지. 사람이 앉아서 생각하는 그 순간, 그 사람은 온통 코가 된다든지, 온통 이마가 된다든지, 아니면, 하여간 섬뜩한 모습으로 바뀐단 말이야. 학식을 바탕으로 지적인 직업에 종사하며 성공했다는 자들을 봐. 그 작자들, 소름 끼치는 작자들이야! 물론 교회에 있는 사람들은 예외야. 교회 사람들은 생각을 안 해. 어느 주교는 자기가 열여덟 살 때 들었던 얘기를 여든이 되어서도 계속 말하고 있어. 당연한 결과지만 자연히 그 주교는 늘 유쾌한 표정을 짓고 있다고. 네 친구라는 신비의 젊은이 네가 이름이 뭔지 말해 주지도 않은 그 젊은이의 초상이 나는 정말 마음에 들어. 생각하는 기미가 전혀 없잖아. 확실해. 그 친구는 머리를 쓰지 않는 아름다운 젊은이야, 겨울에 바라볼 꽃이 없어도 늘 이곳에 있을 테고, 우리가 우리의 지성을 서늘하게 하고 싶은 여름에도 이곳에 그대로 있을 테지.’


시몽은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에 등장하는 초상화 같은 얼굴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머리를 쓰지 않는 아름다운 젊은이의 모습을 갖춘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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