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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BI May 13. 2019

잭 나이프, 엠마뉘엘 베르네임

결핍의 표출

붐비는 지하철, 한 여자가 누군가를 잭나이프로 찌른다. 집으로 돌아와 재빠르게 손을 씻고, 잭나이프의 피를 휴지로 닦은 다음 변기를 내린다. 소리를 지른 사람도 없고, 누군가 그녀를 쫓아오지도 않았고, 피도 사라졌다. 


'피는 사라졌고, 여느 때와 똑같은 하루일 뿐이었다. 아무 일도 이러나지 않은 것처럼.’

하지만 그녀는 그 전의 삶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처음엔 무료한 일상의 일탈 정도로 치부된 사건이지만, 일탈이라고 하기엔 누군가에게 상해를 입혔고, 피까지 본 것. 평범한 여자의 인생 전체를 송두리째 흔드는 큰 사건으로 점점 자리 잡는다. 그 순간 희열을 느꼈던가? 


계속 누군가를 찌르는 사건으로 흘러갈 줄 알았는데, 그녀는 자신이 찌른 남자를 찾기 시작한다. 


'남자의 책들과 레코드판들, 물건들을 보면서 취향을 알게 될 것이다. 통조림 깡통들을 발견하고는 그 남자가 즐겨 먹는 것이 뭔지도 알게 될 것이다. 욕실에는 그 남자의 애프터 셰이브 로션과 비누, 향수가 있을 것이고, 그 남자의 냄새를 맡을 수 있을 것이다.’


집착적일 만큼 그를 찾으면서 그의 삶을 상상한다. 디테일하게. 


하나의 목표가 생기면서 그녀 자신을 360도 바뀌기 시작한다. 처음엔 그가 혹시라도 자신을 알아볼지 모르니 그 전과 달라야 한다는 관점에서 옷을 사고, 구두를 사고, 모든 것을 세팅하고 나니 머리가 거슬리고, 머리를 하고 나니, 화장을 하게 된다. 자신의 모습이 나쁘지 않다. 


하나의 사건으로 삶이 차근차근 바뀌어나가는 과정을 짧은 호흡으로 끌고 나가는 소설. 읽는 재미, 그녀가 변해가는 모습을 보는 재미가 있다. 


결국 자신이 찌른 남자를 찾게 되고, 동거를 하게 되고, 그의 템포에 길들여진다. 그러다 깨닫는다. 그가 그녀를 알고 있었음을. 


잭나이프. 소설의 제목. 


잭(jack)은 남자, 강하다, 크다 등의 뜻을 가진 말이라고 한다. 한 손에 잡히는 잭나이프. 10년 동안 엘리자베스가 들고 다닌 이유는 뭘까. 호신용? 그러다 그걸 찌르게 된다. 남자에게. 


한 여자가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잭나이프를 가지고 다녔고, 그러다 그 물건으로 남자를 찔렀고, 그 남자를 찾아다니고, 결국 그에게 빠져들었고, 빠져나올 수 없는 굴레로 스스로를 몰아넣는다. 


+ 꾸미지도 않고, 혼자 지내는 걸 좋아했던 한 여자가 극단적인 방법으로 타인과 연결 고리를 만들고, 그 안에서 집착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모습. 그 안에서 극도로 불안해하는 모습, 그가 떠나갈까봐 안절부절하는 모습, 모든 걸 밝히지도 물어보지도 못하는. 한 인간의 결핍 -> 공격적으로 욕망을 표출 -> 잘못된 관계로 안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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