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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권투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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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BI Jan 11. 2023

39살, 권투를 다시 시작하다

1월 11일 


작년 11월부터 잠시 쉬었던 권투를 오늘 다시 등록했다. 그때 두 달을 다녔으니, 두 달을 배우고, 두 달을 쉰 셈이다. 12월이 가장 바쁜 식당 일 때문에 운동을 미루기도 했고 여러 가지 핑계를 대기에 좋은 날들이었다. 새해가 되었으니 다시 시작하기에 또 좋은 이유가 생긴 것이다. 1월 시작하자마자 다니자 해놓고 차일피일 미루다 11일이 되어버렸다. 운동도 몸에 습관처럼 베어야 하는데 매번 참 그게 힘들다. 운동을 하면 도파민 분비와 함께 기분이 좋아짐을 알면서도 가기 전까지는 왜 매번 이렇게 힘이 드는지. 운동을 밥 먹는 것처럼 책 보는 것처럼 몸에 습관이 배었으면 하는 2023년이다.

권투장에서는 권투 장만의 열정이 있다. 모든 스포츠에 각자의 스타일이 있는 것처럼. 열정도 그렇게 각기 다른 모습이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권투장은 관장님이 미트를 잡아줄 때의 둘의 합, 그리고 혼자 샌드백을 칠 때의 리듬감, 각자 이 나뭇 바닥 위를 쿵쿵 뛰지만 근접거리에서 서로에게 주는 좋은 기운, 나는 아직 잘 못하지만 잘하는 다른 회원을 보며 나도 곧 저렇게 멋지게 샌드백을 쳐야지. 나도 줄넘기를 안 쉬고 4세트 하고 싶다. 이런 바람들이 서로를 보며 생기는 것이다.


오후 2:45분쯤은 햇빛이 창문을 관통하는 시간이다. 나뭇 바닥을 가르는 햇빛과 사람들의 숨소리, 글로브가 샌드백에 부딪히는 소리만 선명하다.



러닝머신 5분, 자전거 5분, 일립티컬 5분. 후, 다음 줄넘기 4세트다. 그전에 간단하게 스트레칭을 하고 줄넘기 시작. 체력이 얼마나 떨어졌는지는 줄넘기를 해보면 바로 티가 난다. 줄넘기는 3분, 30초 휴식 x 4세트를 하면 된다. 두 달 동안 당연히 3분을 풀로 채운 적은 한 번도 없으며 그래도 한 번에 200~300개를 할 수 있게 되었고, 뭔가 이제 줄넘기 리듬을 알아가는 것 같은데? 하는 단계에서 멈춰버린 것이다. 몸은 얼마나 솔직한가. 몸을 움직이지 않은 만큼 굳어지고 근력이 떨어져 바로 티가 난다. 오랜만에 붙잡은 줄넘기는 호락호락하지 않았고, 그래도 시간은 흐르니 쉬다 하다를 반복하며 4세트를 겨우 채웠다. 이제는 안 쉬고 4세트를 한다는 문장을 적을 때까지...


복싱 스트랩을 꺼내 한 손씩 정성껏 감는다. 이때만큼은 잘하는 권투 선수가 된 기분이야. 주황색 권투 글러브를 들고 와 잠시 몸을 풀려고 했지만 오랜만에 온 우리를 반기는 관장님이 미트를 대기 위해 성큼성큼 걸어오셨다. 두렵다. 얼마나 버벅댈 것인가.


두 달 쉬기 전에는 스텝 + 원, 투를 같이 나가고 있었는데 오랜만에 왔으니 스텝은 일주일 뒤부터 시작하자고 하셨다. 얼마나 다행인지. 양 발을 사선으로 잘 놓고 미트 시작.


원, 투 네 번!

원, 투 훅 투

원, 투 양 훅

원, 투 어퍼

원, 투 쓱 투 훅 투

무한 반복


팔을 뻗어 글러브가 제대로 들어갔을 때의 경쾌한 소리가 귓가에 울린다. 기분 좋은 소리. 오랜만이지만 몸이 기억하고 있다.


원, 투 무빙


무빙부터 버벅.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시선은 정면을 바라보고 아래로 내려갔다가 오른쪽으로 이동 후 일어서고, 다시 아래쪽으로 갔다가 왼쪽으로 이동 후 일어선다. 반복했을 때는 무사히 통화.


원, 투 더킹 어퍼 훅 투

버벅. 더킹, 무빙 오랜만이구나 ^^


이후 원, 투 훅 투 무한 반복


마지막 원, 투 10개를 종이 칠 때까지 10개가 이미 지났지만 30개째를 지나고 있고 팔이 점점 내려간다. 땡.

체력이 많이 약해지셨네요.

관장님의 한마디로 오늘의 미트 끝. 감사합니다. 저도 느껴지네요. 저의 나약한 체력이. 팔이 후들거리고 약간 현기증까지 와 잠시 앉아있다가 물을 연거푸 마시고 정신을 차린다. 역시 짜릿하게 힘들어.


모든 것을 불태운 뒤의 나 자신


한 시간 짧고 굵게 운동을 하고, 집에 와서 강아지 산책으로 한강을 한 바퀴 돌고, 집에 와서 빨래를 돌리고, 청소를 하고. 이러면 딱 지쳐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데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 노트북을 들고 카페로 나왔다. 수, 목, 금 저녁은 식당에 나가지 않기에 시간 활용을 잘 해야 한다. 블로그 / 권투 일지 / 글쓰기를 한 시간씩 잘 배분해서 일단 도전해 보기로 계획을 세웠다. 권투 일지는 매번 길게 쓸 수 없을지라도 사진과 함께 기록을 계속 남기려고 한다. 실력은 미세하게 늘겠지만 나중에 돌이켜보면 큰 차이로 보일 것이다.


2023년은 무엇이든지 기록, 기록, 기록하려고 다짐. 다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시간 배분을 통해 철저하게 지킬 수 있도록 하려고 한다. 일단 아침 시간은 8시에 일어나는 것으로 습관을 들이고 있다. (4,5시 미라클 모닝 하시는 분들이 보면 웃겠어.) 점점 당겨 7시에 일어나는 게 일단은 목표. 남과 비교하기 보다 내 체력에 맞춰 천천히 습관을 들일 것이다.


12월 21일부터 8시 일어나기 시작했으니 1월 21일부터는 7:30분으로 30분 당길 것이다. 그러면 한 시간 독서 + 한 시간 글쓰기 시간이 확보될 수 있을 것 같다. 권투도 처음에는 원, 투 기본 스텝부터 시작해 하나씩 늘려간다. 삶의 습관도 한꺼번에 바꾸려고 하면 분명 실패에 맞닥뜨린다. 원, 투부터 하듯이 하나씩 단계별로 습관을 들이면 된다. 권투를 배우는 것처럼 인생도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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