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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BI Jan 14. 2023

배달의 민족, 죄송의 굴레

엽편소설 #3



여보세요

아, 네! ** 식당입니다.

제가 좀 전에 배달 3개를 시켰는데요. 하나를 아예 못 먹었어요.

아 네? 혹시 무슨...


진성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다.


후추를 다 빼달라고 말씀드렸는데요. 새우 알리오 올리오에 고추가 들어가네요? 들어가는 게 일반적이지 않은데. 뭐 아닐 수도 있지만요. 그래서 하나도 못 먹었어요. 아이들이 먹는 건데 고추가 들어가 있어서 하나도 못 먹었어요.

아, 요청사항 확인해 보니 후추만 빼달라고 하셔서 아이들이 먹는 건 줄 몰랐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네, 그래서 하나도 못 먹었어요. 엔쵸비 파스타도 들어가나요? 예전에 시켰을 때 엔쵸비에는 없던 거 같던데.

아네, 엔쵸비 파스타에도 들어갑니다. 들어간 게 페퍼론치노인데요, 오일 베이스 파스타에는 소량으로 다 들어갑니다. 아이들이 먹는 건 요청사항에 얘기해 주시기 때문에 저희가 매운 건 빼서 드리는데 후추만 빼달라고 하셔서 몰랐습니다. 죄송해요.

아, 네. 저 자주 시켜 먹는데. 다음에 서비스 좀 주세요. 아이들이 배고프대요.

아, 네. 요청사항에 남겨주시면 서비스 꼭 드리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도레미파솔라시도 에서 ‘시’ 정도의 목소리를 가진 상대방은 언짢은 기분을 감추지 않는 스타일이었다. 전화를 끊을 때까지도 진성은 잘못한 게 없지만 '3번의 죄송하다'와 '서비스 약속'까지 한 뒤 통화를 끝낼 수 있었다.


*요청사항: 라구파스타 면적게 소스넉넉히. 전복파스타 소스 넉넉히. 후추는 다 빼주셔요.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고 진성은 요청사항을 다시 한번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소스 넉넉히를 요청해서 넉넉히 넣었던 기억과 후추를 뺐던 기억이 선명하다. 아이들이 먹으니 매운 걸 다 빼달라는 요청사항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후추에서 어린이를 유추하기는 힘들다. 요청사항대로만 할 뿐이다. 새우 알리오 올리오에는 소량의 페퍼론치노가 들어간다. 아이를 키워보지 않아 매운 건 언제부터 먹일 수 있는 건지 정확히 모르는 진성은 “아이가 몇 살인데 페퍼론치노 소량도 못 먹는 건가요?”라는 말을 감히 할 수는 없었다. 설사 안다고 해도 아이를 키우는 가치관은 서로 건드리지 않는 걸로 알고 있기에 금기의 말일지도 모른다. 김치보다 맵지 않을 것 같은데, 아이들 김치는 먹이지 않나. 씻어서 먹이나. 그래, 한 입 먹고 맵다고 뒤집어지는 아이 일 수도 있지. 나의 잘못은 ‘후추 빼달라’는 말에서 아이들이 먹을 수도 있다는 생각까지 하지 않은 것. 수많은 생각이 꼬리를 물고 들었을 때 다음 쿠팡이츠 주문이 들어왔다.


진성은 파스타집을 하면서 절대 배달만은 하고 싶지 않았다. 면 요리이기 때문에 면이 불 수 있고, 자신의 공간에서 맛있게 드시는 모습을 보아야만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하나 언제나 인생은 원하는 대로만 할 수 없는 법. 코로나가 터졌고, 매장 매출이 1/3로 줄면서 배달을 시작했다. 배달 용기를 어떤 걸 써야 하는지, 비닐봉지는 어떤 사이즈로, 수저, 포크, 감자수프 그릇, 피클 통까지 통 크기도 다양했고 사이트로만 봐서는 알 수가 없었다. 쉬는 날 배달 용기 샘플을 볼 수 있는 매장을 찾아 직접 용기를 보고 골랐다. 용기 가격은 싸지 않았다. 매장 가격보다 천 원을 올려 그 차이를 메꿔보려고 했는데 수수료를 생각하면 어쨌든 마진은 매장보다 현저히 낮았다. 리뷰가 하나도 없을 때니 처음에는 서비스로 음료수와 감자수프를 무조건 넣었으며 매번 손 쪽지도 잊지 않았다. 가까운 곳에 사는 지인들이 고맙게도 주문을 많이 해주었고, 리뷰도 정성껏 달아줘서 초반 리뷰가 좀 쌓이게 되었다. 그 이후부터 꾸준히 배달이 들어왔다. 코로나 때 배달조차 안 했다면 식당은 이미 폐업의 길을 걸었을 것이다. 벌써 배달을 시작한 2년이 지나고 있다. 덕분에 긴 터널 같던 그 시간을 버텼다. 빚은 더 늘어났지만 식당을 닫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매번 생각했다.


진성이 운영하는 식당은 별점 테러를 당한 적 한, 두 번. 포장이 늦게 나왔다고 화를 내는 손님 한, 두 명 정도. 소히 말하는 진상 손님이 별로 없는 식당이었다. 진성은 사람이 하는 일이기에 좋은 재료로 정성껏 요리한 것을 손님들이 알아주는 거라고 생각했다. 먹는장사를 하는 게 항상 쉽지 않다고 생각했고, 다시 6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요식업은 절대 시작하지 않겠다고 생각하지만 “제일 맛있다고, 여기 파스타만 먹는다"라는 리뷰를 보면 내가 만든 요리로 누군가를 행복하게 하고 있구나 하고 뿌듯한 감정이 든다. 먹고사는 일 때문에 하는 식당이지만, 이런 감정마저 못 느꼈다면 이미 다른 일을 찾았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날은 슬픔, 아니 슬픔보다는 좀 더 깊은 감정인데 무력해지는 기분과 함께 묘한 감정이 찾아온다. 요식업은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아낌없이 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아니, 서비스업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 다 "죄송하다"라는 말에 능숙해야 한다. 컴플레인을 건 사람들은 모두 그 말을 듣기 위해 전화를 한다. 자신의 불편한 감정을 해소시키기 위해 상대방의 비굴한 말을 듣고 싶어 한다. 오늘 같은 일은 그래 아무 일도 아니다. 다음에 서비스 주는 것으로 손님의 마음이 풀렸다면 된 것 아닌가. 나의 죄송함이 부족하여 배달 손님을 잃어버릴 수는 없지 않은가.


진성은 식당 영업을 마치고 배달 앱을 열어 족발을 시킨다. 오늘 같은 날은 소주 한 잔을 해야지 잠을 이룰 수 있다. 매번 시키던 식당이기에 요청사항 란에 '매번 시키는 사람이에요. 양 많이 주세요. 수고가 많으십니다.'라고 적는다. 족발은 20분 안에 도착했고, 마음이 조금 누그러지는 것 같다. 포장을 뜯고 족발을 한입 베어 문다. 진성은 무슨 생각이 난 듯 핸드폰을 몇 번 누르더니 통화 버튼을 누른다.


"아, 사장님. 저 방금 전에 배달 시킨 사람인데요. 저 매번 시켜 먹었는데, 족발이 오늘은 왜 이렇게 짜죠? 하나도 못 먹겠는데요?"

다시 입에 족발을 하나 더 넣고, 소주까지 들이킨 진성은 만족한 듯한 미소를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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