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바 아르바이트
첫 번째 아르바이트: 와인바 홀서빙
시간: 주 4일 (목, 금, 토, 월) 하루 7시간(단 마감 시 15분~30분 정도 지연가능)
일급: 10만 원 (세후)
당근으로 아르바이트를 구할 때 장점은 단기 아르바이트를 구하기 쉽다는 것, 거창한 이력서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이상한 아르바이트생도 많이 뽑힌다는 건 나중에 알았다.)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입장에서는 다양한 일을 경험해 볼 수 있고, 단기로 구하기 좋다는 장점이 있어서 많이들 이용하는 것 같다. 해방촌 와인바 아르바이트 또한 '지원하기'를 누른 지 30초 만에 답이 왔고 1분 만에 결정이 완료되었다.
"내일부터 일하실 수 있나요?"
다시는 요식업 아르바이트는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주 4일(목, 금, 토, 월)에 7시간 일급 10만 원이면 꽤 괜찮지 않나 싶었다. 저녁에 퇴근한 남편에게 내일부터 와인바에 나가라고 했더니 이게 무슨 황당한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내일?이라고 되려 물어왔다. 내가 워낙 즉흥적인 건 알고 있었지만 일조차 이렇게 구할지는 몰랐다면서. 대체 이상한 곳이면 어떡하냐고 걱정부터 내비쳤다. 생각해 보니 그렇네.
당근 어플을 열어 남편이 걱정한 부분들을 하나씩 물어보기 시작했다.
1. 시간은 오후 5시부터 저녁 12시까지 일까요? 마감까지라고 애매하게 나와있어서요.
2. 단기 알바 일정은 7월 12일까지가 맞을까요?
3. 일급은 10만 원으로 나와있는데 지급은 한 달 후에 지급인가요? 아니면 당일 혹은 주급일까요? 3.3프로 세금 제하고 입금되나요?
4. 한 달짜리 근로계약서를 쓰나요?
요즘은 그런 곳이 거의 없지만 일한 이후 월급을 주지 않는 곳도 종종 있다며 남편은 걱정했다. 답변은 10분 뒤에 왔다.
"시작은 5시 마감이 12시라 마지막 손님 나가시고 정리하면 12:15 정도 됩니다. 다만 만약 막차시가ㅏㄴ이 있으시면 어느 정도 맞춰드릴 수 있습니다. 단기이지만 만약 맘 맞는 분이라면 고정으로 쭉 근무하실 수 있는 티오도 있습니다. 3.3 세후 10만 원이고 매주 한번 지급됩니다. 한 달 계약서 쓰고 만약에라도 계속 근무하시게 되면 수정해서 쓰게 됩니다."
아, 꽤 괜찮은 곳이구나! 답변이 깔끔하구나.
남편도 답변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고 난 다음 날부터 와인바에 출근하기 시작했다.
5시까지 오라고 했지만, 4시 30분에 와인바에 도착했다. 일찍 가서 나쁠 건 없으니깐. (신흥시장에서 가장 핫한 와인바였던 건 나중에 알았다) 브레이크타임인지 텅 빈 가게에는 여자분만 계셨는데 너무 젊어 보여서 사장님인 줄은 처음에 몰랐다. 일하러 왔습니다. 했더니 어머, 일찍 오셨네요 하면서 약간 당황하셨고 커피 한 잔 하실래요?라고 물어보셔서 좋습니다라고 답변했다. 바로 옆옆 가게도 직접 운영하는 카페였고 그곳에서 5시까지 편하게 커피를 마시다 오라고 하시면서 사라지셨다.
난 아이스 바닐라 라테를 마시며 "느낌이 아주 좋군"이라고 생각했다. 40년을 넘게 살면서 기운과 느낌이란 게 있으니깐. 커피는 맛있었고 손님 응대는 오랫동안 했으니 자신 있고 일은 금방 배우면 되니 그렇게 걱정되는 건 없었다.
4시 55분쯤 다시 와인바로 향하니 젊은 직원들이 분주하게 일을 시작하고 있었다. 젊은 직원들이라고 하니깐 벌써 내가 나이 들어버린 것 같지만, 대부분 20~30대 초반이었기 때문에 나에게는 젊은 직원들로 보였고 사장님 부부 또한 나보다 어리셨다... (괜찮아) 더 충격적인 건 주방 설거지 담당하는 방글라데시아 친구들은 딱 봐도 어려 보였는데 20살 21살이었다. 그중에 20살 친구는 엄마의 나이가 85년생 나랑 동갑이라고... 아하. 나는 더 어리게 보인다고 해줘서 고마워. 언니라고 불러줘서 고마워. ㅋㅋㅋㅋ
그렇게 첫날 홀 담당하는 남자 직원에게 메뉴 및 세팅하는 것부터 배우기 시작했다. 메뉴 재료가 생소한 게 많아 약간 어려웠지만 외우면 되고, 세팅은 배운 대로 하면 되고, 오픈 6시까지 정신없이 움직였다. 모두 체계적으로 일하는 모습이 이곳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잘 돌아가는지 보여주는 것 같았다.
캐치테이블로 대부분 예약을 하고 방문했으며 당연히 문을 그냥 열고 들어오는 워킹 손님도 많았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여긴 가장 핫한 와인바였던 것이다. 6시부터 손님들이 밀고 들어오는데 예약을 확인하고, 워킹 손님은 자리를 보고 확인하고 물을 따라드리고 메뉴를 받고. 아직 메뉴며 와인 리스트가 익숙지 않고 메뉴를 받고 주방에 이야기하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메모장을 들고 다니며 모르는 건 적었고 어떻게 축약어로 이야기하는지도 적고, 테이블마다 주문을 할 때도 잊어버리기 않게 적기시작했다.
와인을 계속 오픈해야 되는데 예전에 일하면서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는데 와인 마개를 벗기면서 자꾸 손바닥을 베어 피가 났다. (아무래도 좀 긴장해서 그런 듯) 뭐 대일밴드 찾고 할 시간은 없고 휴지를 피 닦으면서 메뉴를 나르고 손님을 안내하고 그렇게 9시 30분이 되었다. 바쁘면 시간이 굉장히 빠르게 흐르기 때문에 그 부분은 좋았다.
약간 넋이 나가있을 때, 바자리에 앉아 음식 하나를 내어주시면서 맛보라고 해주셨다. 물론 와인도 한 잔 따라주셨다. 맙소사, 천국인가?
와인바에서 판매하는 메뉴 중 하나였고, 와인은 또 왜 이렇게 맛있나요? 다른 직원들은 그때도 다 일하고 있었기에 빠르게 먹고 와인도 원샷하고 일어났다.
이게 끝이 아니다. 10시쯤 셰프님이 옆옆 카페에서 생맥주를 쟁반에 들고 나타나셨다.
엉???
9시 30분에 라스트 오더를 받으면 주방은 마감된다. 그 이후에는 디저트류만 나가기 때문에 더 이상 조리는 하지 않는다. 10시에 고생했다는 의미로 생맥주를 한잔씩 나눠주는 것.
낭만이다.
한 여름 땀 뻘뻘 흘리며 일 한 다음 마시는 맥주 맛은 말해 모해. 그때부터는 나간 테이블을 정리하고 컵과 접시와 와인잔을 닦으면서 12시까지 마무리하면 되는 것.
이렇게 첫 날 아르바이트는 끝이 났다. 일하는 친구들의 관상도 좋고, 일도 심지어 다 잘하고, (이런 인재들은 다 어떻게 뽑으셨나요?) 장사가 잘 되니 공간의 화이팅이 넘치고, 나 꽤 잘 들어온 것 같은데?
그러나 일주일 만에 무릎이 아프기 시작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