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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창완 Feb 27. 2020

시골 초등학생이란

반항한다, 고로 존재한다

난 유순한 아이 같지만 문제아였다.


우선 아버지는 약주를 하고오면 우리 형제를 앉혀 놓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그렇다고 심하진 않았다.

가장 많은 이야기는 우리 집안 이야기였다. 창녕조씨는 어떻게 태어났고, 중시조인 상자치자 어른은 어떤 사람이고 그런 거였다.


한 성씨의 득성신화에서 우리 집안 좀 재밌다. 신라 경순왕(다른 인물이라는 설이 정설)의 딸이 어느날 창녕 화왕산에 있는 연못에서 목욕을 하는데, 거북이가 나타나 겁간을 했다는 것이다. 얼마 후 두 아들을 낳았는데, 한명에는 우리 성씨인 조(무리 조)가 써 있고, 다른 한명에게는 성(이룰 성)이 써 있어서 두 성씨가 그때 생겨났다는 것이다. 그리서 두 성씨는 한 뿌리인 '포족'이고, 전통적으로 봤을 때는 결혼도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밖에도 중시조(조상치) 어른이 단종을 지키던 생육신이란 이야기, 창녕조씨에서 3명의 왕이 나올 뻔 했느나 번번히 실패했다는 것이다.(고려말 조민수, 당대 조만식과 조용수)


뭐 이런 이야기를 들을 만 했지만 재미는 없었다. 반면에 아버지가 중학교 시절 겪었던 빨치산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아버지가 다니던 영광중학교 선배 중에 박막동이라는 전설적인 빨치산 이야기다. 당시 낮에는 경찰, 밤에는 빨치산의 시대였다. 서로 살육전이 진행됐는데, 우리 집 뒷산이 옥가산의 까봉이나 수리봉이 이 박막동의 거점이었다.


낮이 되면 군경은 마을에 진입해 박막동을 추격했다. 그러면 박막동의 소수의 빨치산으로도 번번히 군경을 압도했다. 결국 박막동은 사살되어, 영광읍 중심지에 목이 걸리고 말았다. 우리 현대사가 준 비극이다. 그 가운데 영광은 지역민 대비 민간인이 가장 많이 희생된 지역이다.


지리산의 주변처럼 빨치산 거점도 아닌 낮은 산들이 많은 곳에서 이렇게 희생자가 많다는 것은 영광 사람들이 유독 정치적인 기질이 많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정치만 그럴까. 백제불교 도래지, 원불교 탄생지, 일본에 유교를 전파한 강항을 모신 내산서원, 기독교와 천주교 박해지 등 종교에 유독 흔적이 많은 곳이 영광이다.


내가 문제아라는 것은 유독 호기심이 많아서다. 테엽을 이용해 헬리콥터 같은 것을 만들겠다고, 적지 않은 자명종을 해체했다. 테엽을 이용하면 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라디오도 잘 분해해 이런저런 실험도 했다. 옆집이 이사가면 그집 전기장치를 분해야 뭔가를 만들곤 했다. 한번은 무슨 심보인지 우리 집 콘센트에 쇠톱을 집어넣어 동네 전체를 하루 동안 정전시키기도 했다.


남들이 개구리를 구어 먹을 때, 깨끗하게 해체해 살 부분만 먹을 때도 나는 궁금해 다른 장기의 맛을 보기도 했다.


뭐 그렇다고 심각한 수준의 문제는 아니어서 집안에서는 그저 무난한 말썽꾸러기 였다.


고향 집에서 본 논애기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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