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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창완 Mar 02. 2022

사람을 아는 게 세상살이의 기초란다

[대학생이 된 아들에게-들어가며] 먼저 사람을 알았으면 한다

“도대체 1년 동안 저 방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네 엄마는 신기한 듯 말했다. 1년 전 네가 원하는 대학에 불합격했을 때 우리 집의 침울한 분위기를 기억할 것이다. 그런데 1년 만에 너는 그 분위기를 바꾸는 데 성공했다. 너의 큰 성취에 아빠는 우선 진심으로 축하한다.      


1년 전 너를 위해 관리형 공부방을 고르고, 얼마 후 네가 그곳에 적응하지 못했을 때도 우리는 적지 않게 실망했다. 대신에 너는 아빠의 조언을 바탕으로 네 작은 방에서 혼자 공부를 선택했다. 사실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기숙학원은 워낙에 비싸기도 했지만, 너에게 맞지도 않을 듯해서 권할 수 없었다. 종합학원이나 단과학원 등은 권했지만 너는 선택하지 않았다. 학교 다닐 때 하던 과외조차 일절 하지 않고, 네가 부족한 부분을 인터넷 강의로 보강하기로 결정하고 진행했다.      


결국 여름에 있는 국립 특수 대학 우선 선발 고사와 불안해서 치른 수능시험에서 그래도 만족할 만한 성과를 얻어냈다. 작은 방에서 니 인내력과 노력으로 성과를 얻은 너에게 부모로서 진심으로 감사한다. 스물한 살, 다른 친구들보다 한 살 늦은 나이지만 이제 본격적인 성인이 된 너에게 아빠로서 하고 싶은 말을 적기 위해 이 글을 연재한다. 강진에서 유배 중이던 다산 정약용을 비롯해 추사 김정희 등 동서양에 많은 이들이 자식에게 무언가를 들려주고 싶어 했다. 아빠가 그런 분들처럼 고매한 지식을 갖지는 못했지만 아빠의 생각을 주저리주저리 쓰면서 너와 다양한 생각을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 이 연재를 시작한다.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먼저 사람을 알았으면 한다는 것이다. 네가 선택한 분야가 우선은 인문학이다. 인문학(人文學, humanities)은 자연과학(自然科學, natural science)의 상대적인 개념이다. 주로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나 사상, 문화 등을 주로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지식 사전은 정의해 주는구나.      

네가 선택한 고고학이라는 학문도 당연히 인문학의 중요한 범주 중에 하나다. 아빠는 가끔 농담 삼아서 이렇게 말한다. “미래에 머리를 쓰는 일은 인공지능(AI)이 하고, 힘을 쓰는 일은 로봇이 하면 인간이 하는 일은 인간을 돌보는 일 정도일 것이다.”라고. 농반진반이다. 인공지능은 이제 인간과 바둑 두는 일을 접었고, 의사들이 수술까지 로봇에게 맡기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언제일지 모르지만 인공지능과 로봇이 인간의 일을 대체하거나 최소한 협업하는 것은 이제 명확한 미래로 생각한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의 모습은 어떻게 바뀌고, 그 역할은 무엇일까.      

아마 가장 큰 변화는 인간의 소외라고 생각한다. 회계사나 텔레마케터, 변호사 같은 직종은 자신들의 일을 인공지능이나 소프트웨어가 맡는 일을 대신하는 것을 막기 시작하고 있다. 산업혁명 당시 기계를 부수웠던 러다이트 운동의 현대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인간보다 우수한 일처리와 정확성, 속도를 가진 존재의 등장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이런 흐름은 부를 가진 이들에 의해 주도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큰 문제는 사람의 소외가 아닐까 싶다. 아빠는 지금 네 나이 무렵에 빠진 책들이 있다.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나 키에르케고르, 니체의 책들이 유독 눈에 들어와 열심히 찾아 읽었단다. 이들이 어떤 사상가들인지 알 것이다. 실존주의자로, 심하면 염세주의자로 불리는 사상가들이다. 왜 이런 책을 찾아 읽었을까. 다른 이유는 없다. 그런 이들의 말들이 마음에 더 깊게 다가왔다. 나쁘게 될까 봐 걱정할 수 있지만, 사실 이런 책들을 찾아 읽는 이들은 별로 고민은 덜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사실 세분 모두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았거든. 문학에서도 헤세나 솔제니친, 도스토옙스키처럼 좀 우울한 모드의 책을 더 좋아했다.      


그런데 그 과정을 아빠는 지금도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때 아빠는 극단적 선택에 대한 고민을 해본 적은 없다. 다양한 실패를 맛보았지만, 위의 인물들이 그렇듯 꾸역꾸역 가는 게 인생이고, 크게 고민할 것도 아니라 생각할 수 있었거든.      

그리고 이제는 그게 오십 중반인 아빠에게 중요한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장치라고 생각한다. 어찌 보면 마음의 기초라고 할 수 있기도 하다. 이런 고민 위에 소설이나 시 등 문학을 만났고, 인문학들을 채울 수 있었거든. 기초가 있으니, 위에 뭐를 세워도 별로 위험하지 않는 것 같다.      


이제 대학생이 된 네가 어떻게 하면 심리적 기초를 세울 수 있을까. 무엇보다 아빠는 좋은 선생님들을 통해 좋은 책들을 만났으면 한다는 것이다. 대학 1학년이면 인문학 수업들이 많다. 제일 좋은 스승은 좋은 독서 커리큘럼을 주는 선생님이다. 너무 많기보다는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잘 가이드할 수 있는 책을 골라주면 좋다. 아빠는 대학 2학년 때 동아리 학술부장이 돼서, 직접 수십여 권의 커리큘럼을 만들어 후배들과 지속적으로 읽어간 기억이 있다. 1년 내내 방학까지도 1주일에 한 권씩 책을 읽고 토론을 했다. 후배들도 많은 것을 배웠겠지만, 아빠도 다시 한번 더 깊게 책을 볼 수 있었고, 그게 아빠가 이후 살아가는 주요한 자양분이 됐다고 생각한다. 그때의 책을 다 기억하냐고. 이제 제목도 기억나지 않지만, 아빠는 무의식 어딘가에는 그 기억이 있어서 글을 쓰거나, 일상을 살아갈 때, 튀어나온다는 것을 자주 느낀다. 책 읽기에 대한 이야기는 앞으로 구체적으로 다룰 생각이니, 오늘은 여기까지만.      


-더 넓어진 인간관계를 잘 적응해야 한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시간은 좀 늦추어지지만 대학생이 되면 본격적인 인간관계가 시작된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같은 학년이나 선생님, 부모님이 인간관계의 대부분이지만 대학생이 되면 동기들은 물론이고, 많게는 대여섯 살 많은 복학생이나 그보다 더 많은 대학원생까지가 한 공간에서 살아간다. 당연히 더 다양한 인간관계가 있겠지.      

아빠도 늦게 대학에 들어가 나이가 적은 이들이 아빠의 이름을 반말로 부르는 것이 당연하게 생각하는 학창 시절을 보냈다. 그때 아빠는 원칙이 있었어. “호칭이 뭐가 중요해. 상대가 나를 인간적인 관계로 대하면 상관없다.”였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았다. 아무래도 호칭을 쉽게 하는 사람은 이후 인간관계가 잘 유지되지 않았겠지. 그래서 아빠는 가능하면 그런 전통은 버리고, 사적인 자리에서는 1~2살까지도 편하게 말을 하는 친구로 만들려 했단다. 생각하면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더 중요한 것은 인간관계는 적극성이다. 아빠는 대학생 때 교수님이나 선배들과 비교적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다. 수업에 적극적으로 응하고, 솔선해서 일들을 해주는 사람을 싫어할 사람은 없다. 엠티 등의 공동 활동이 있으면 가능하면 음식이나 설거지 등을 솔선해서 했다. 이런저런 잡일들도 가능하면 하려 했지. 음주 자리는 적당히 끼고, 공부하는 선배들과 관계를 많이 해 선배들의 앞날을 좀 미리 볼 수도 있었단다. 인간관계는 가능하면 칸막이를 허물면 좋다. 교수님이나 선배들과 더 어울리는 게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다. 물론 동기들도 당연히 중요하다.      


대학이 네 미래 인맥을 만들어줄 가능성이 많지 않다. 하지만 사람들과의 관계에 기초를 세우는 데 가장 중요한 장소라는 것은 빼놓을 수 없다. 특히 네가 전공분야를 더 계속해서 해나간다면 대학에서 사람 관계는 사회로까지 이어져 더 중요하겠지.      

의외로 세상은 좁단다. 한, 두 사람 거치다 보면 바로 사람에 대한 평판 조회가 많은 게 요즘이란다. 특히 SNS가 발달한 만큼 이 관계의 폭은 더욱더 가까워지지. 좋은 신뢰를 쌓기는 긴 시간이 걸리지만, 나쁜 평판이 만들어지는 것은 한순간이 될 수도 있겠지. 물론 한번 만들어진 것이 영원한 것은 아니라는 것도 당연히 알겠지만.      

사실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모든 생활의 근간에 있기 때문에 앞으로 있을 모든 이야기에도 그 바탕에는 인간관계가 있단다. 네 스스로도 그런 고민들을 많이 해가야 할 거야. 돌이켜보면 네가 살아온 날들에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의 기억도 선명할 거야. 이제 펼쳐질 세상은 그보다 훨씬 다양하고, 넓은 인간관계가 있단다. 


아빠가 가장 좋아하는 인간 관계의 시가 하나 있단다. 바로 정현종 시인의 짧은 시다. 


섬/정현종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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